‘골목길’ 왜 보존하고 재생해야 하는가?

한국건축가협회 도시재생위, ‘골목길’ 주제로 도시재생세미나 개최
라펜트l전지은 기자l기사입력2020-02-05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행태로 살아가는 ‘골목길’은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과 사회를 공유한다. 이는 개인의 삶의 선택의 폭을 넓히고 타인의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프라이버시, 편리한 행태가 중요시되는 공간형태는 살인과 자살이라는 사회 병리적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귀찮은 일일지라도 사람과 사람이 부대낄 수 있는 ‘골목길’과 같은 공간이 필요한 이유다”

한국건축가협회 도시재생위원회(위원장 김선아)는 지난 30일 KB청춘마루에서 ‘골목길’을 주제로 [도시재생세미나: 깨우는 건축, 살아난 도시]를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김선아 SAK건축사사무소 대표가 ‘골목길 재생, 일상성 vs. 수익가치’를, 김영욱 세종대 건축학과 교수가 ‘Space Syntax를 활용한 골목길의 이해’를 발제했다. 발제 후 질의응답 시간도 가졌다.

김 대표는 골목길재생의 필요성에 대해 “골목길은 최소주거의 역사가 깃든 도시조직과 서민의 기억이 체화된 따뜻한 공간이나 정주여건은 매우 열학하기 때문에 골목길의 보존과 활성화가 요구된다”고 역설했다.

모두의 장소로 인식되어 주민들간 커뮤니티가 일어나던 과거의 골목길과 달리 작금의 골목생활은 삶의 질을 담보하지 못하며, 삶의 기반으로서 도시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지 않아 위험요소가 많다. 이러한 취약한 삶의 기반을 재생으로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골목길내 공공/공용공간, 시설의 부재로 소통이 단절된 폐쇄적 양상을 띠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람이 만나는 개방적인 공간으로 재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뉴 노멀(New Normal) 시대에는 더 이상 소비가 미덕이 아닌, 소비자들이 브랜드의 ‘경험’을 사는 만큼 그들의 니즈를 파악한 ‘경험 만들기’로 진솔하게 다가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로컬이 재발견됨으로써 로컬 크리에이터가 생겨나고 있고, 청년들이 로컬을 책임지도록 하는 분위기이나 골목에는 청년들만 있지는 않다. 골목길을 장소로서만 보지 말고 다양한 사람, 연령, 욕구, 삶의 시간들을 포용하는 방안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아울러 일상공간에서 상업공간으로 변화하는 골목길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시사하기도 했다.

골목길재생 관련 이슈로는 폭 4m 미만 도로의 건축제한과 주차문제, 쓰레기문제 등이 언급됐다. 김 대표는 “폭 4m 미만의 차도와 접해있지 않은 골목길 지역은 건축법상 근본적으로 건축행위가 크나큰 제한으로 작용한다”며 “단편적 정비사업에서 벗어나 통합적인 재생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축법상 ‘도로’는 보행과 자동차 통행이 가능한 너비 4m 이상의 도로로 규정돼 있다. 1962년 ‘폭 4m 이상’으로 규정한 것과 1975년 ‘자동차 통행이 가능’ 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개정됐다. 따라서 4m 이하의 도로에서 신축을 할 경우 4m 도로를 확보해야 한다. 건축선을 후퇴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건축행위 제한으로 골목길 인접 소규모 필지의 개발은 위축되고, 노후화가 가속화되고 있으며, 소규모 필지의 합필에 의한 개발촉진으로 주거에서 상업용 도로로 전환되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골목길이 사라지고 있는 이유이다. 자동차 중심의 도시관리계획으로 지구단위계획이 수립되고, 대규모 단지개발로 단지내 도로가 만들어지면서 외부인 출입 제한 주택지(Gated community)를 형성함으로써 골목길은 사라진다. 정비구역 지정해제로 인한 빈집이 증가하고 방치돼 빈집에 접한 골목길 또한 여러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차량통행이 불가능한 골목길에 대해서는 ‘주차문제’가 불거질 수 있으나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주차공간이 없으면 비용을 들여가며 스스로 책임져야한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100~120m 떨어진 공용주차장을 이용하도록 하고 택시나 거주민 이외의 외부차량은 통행할 수 없도록 강력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또한 ‘쓰레기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골목길관리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과거의 골목길은 모두의 장소로 인식됐으나 현재는 누구의 공간도 아니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각종 쓰레기들이 넘쳐나는 버려진 공간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깨끗한 골목길을 만들기 위해 공공에서 관리예산을 마련해 소규모 상업권역이나 골목길을 유료로 관리하는 시스템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김선아 SAK건축사사무소 대표, 김영욱 세종대 건축학과 교수



김영욱 세종대 건축학과 교수는 공간사회학적 관점에서 “우리나라의 심각한 사회병리현상은 공간적 조건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골목길의 해체는 단순한 공간적 사건이 아니라 공동체를 거추장스럽게 인식하는 시장우선주의적 사고의 결과”라며 골목길의 해체가 사회병리현상을 야기하고 있다고 피력했다.

김 교수는 “층간소음으로 인한 살인은 단순히 슬라브 두께만의 문제가 아닌 공동체 해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이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도 심각하다. 자살은 개인이 속한 집단의 사회적 통합 정도와 관련성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저소득층주거지와 영구임대아파트단지의 자살률을 비교 연구한 결과 10만 명당 각각 29.84명, 39.08명으로 영구임대아파트의 자살률이 더 높았다. 핀자촌은 이웃만남을 촉진하는 골목공간을 공유하고 있으며 가사공간을 골목까지 확장하고 의자를 설치해 간이쉼터를 마련하는 등 단절된 영구임대아파트와 공간의 구조가 다르다.

르 꼬르뷔지에의 ‘빛나는 도시’로부터 기원한 초고층 주거단지가 Gated community를 형성하고, 골목길보다는 화려한 오픈스페이스를 강조하고 있다. 통제불가능한 사회로부터의 방어 또는 보호를 위해 스스로를 격리하는 공간적 역전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미셸 푸코의 ‘판옵티콘’은 공간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원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으며, 빌 힐리어는 ‘도시공간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사회를 소통이나 분열로, 혹은 공동체를 증진하거나 해체시킬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기성세대는 시골이든 도시든 골목길을 통해 공동체적 생활을 즐겼고 때로는 강요당해오기도 했으나, 이를 통해 사회적 교류, 이웃관계, 이타주의 등 건전한 사회를 형성할 수 있는 사회적 규범을 학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래세대에게는 이러한 공간환경을 시장주의적 관점에서 상품화를 볼모로 거세하고 있다. 프라이버시, 우월감, 차별화를 통해 도시공간을 만들어가는 부정적 학습환경이 사회 구성원에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질서의 핵심은 ‘sidewalk’의 이용의 친밀성과 그로 인한 시선의 지속성”이라며, “골목길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어디에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가 중요해졌다. 골목길의 가치를 공간에 어떻게 녹여낼 것인가가 우리시대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골목길재생계획시 활용 가능한 Space Syntax를 소개했다. Space Syntax는 공간배치를 분석해 사회, 경제, 문화적 행태를 분석하는 방법론으로, 공간구조와 보행량, 지가, 임대료, 매출 등을 설명하는 방법론으로 입증됐다. 공간분석을 통해 길의 중요도와 연결성, 구조 등을 파악해 보다 효과적인 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
글·사진 _ 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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