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원, 형태가 아닌 정서에 주목했다

[인터뷰] 이주은 정원디자이너(팀펄리L&G 대표)
라펜트l기사입력2020-12-24
한국정원은 그 본질이 중요하기에 외형만 복원이 된다면 그 의미가 보다 잘 전달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외국인들에게도 한국의 정서를 전달할 수 있어야 경계를 허물고 한국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제2회 LH가든쇼’에서 이주은 정원디자이너(팀펄리L&G 대표)의 ‘청초 : 자세히, 오래 보아야 하는 정원’이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번 대상작은 한국인의 ‘정서’에 주목한 한국정원으로, 내년 독일 에르푸르트에서 열리는 ‘독일연방정원박람회(BUGA)’에 조성될 예정이다.

그들에게 이 정원이 어떻게 다가가길 바라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주은 작가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현대에 살면서 우리는 항상 시간에 쫓기고 머리는 복잡하기만 하다. 그러나 정원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하게 있다 보면 어느 순간 위로가 찾아온다. 이 정원이 정신적으로 쉼을 얻고 한 사람의 내면을 치유하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또한 예전 우리나라 선비들이 자연을 바라보면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았던 것처럼 홀로 조용히 앉아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정원이길 바란다. 한국이 겉모습만 화려한 것이 아니라 내면적으로도 성숙한 나라라는 걸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주은 정원디자이너(
팀펄리L&G 대표)


대상을 수상했다. 소감 한 마디 부탁드린다.

이번 정원을 조성하는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나무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구했고,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할 수 있었다. 상의 유무를 떠나 만족스러운 정원이기에 스스로에게 떳떳하다.

수상 이후 처음에는 마냥 좋았지만 지금은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다. 한국을 대표해서 독일에 정원을 조성하는 것이라는 점과, 식물 수종이나 수형이 우리나라와 달라 정원이 제대로 구현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 그 이유다. 한국수종이 독일에서 어느만큼 적응할 것인가를 알 수 없고, 현지에서 구하지 못하는 수종의 경우 비슷한 느낌의 독일수종을 찾고, 생육조건을 따져서 선정하는 과정도 남아있다. 아마도 이것이 가장 어려운 작업이지 않을까 싶다.


한국정원의 형태가 아닌 정서에 주목했다.

주제가 ‘정원, 경계를 품다’인 만큼 ‘경계’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한국과 세계의 경계를 생각했고, 한국정원에 대해 고민했다. 한국정원은 그 본질이 중요하기에 외형만 복원이 된다면 그 의미가 보다 잘 전달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외국인들에게도 한국의 정서를 전달할 수 있어야 경계를 허물고 한국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컸다.

‘한국정원기행’이라는 책을 보면, 한국인들이 어떻게 정원을 즐겼고, 선비들이 어떻게 정원을 산책했는지 등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사료로 남아있는 글과 그림들을 보면 우리 선조들은 개울가에 그늘진 곳에서 휴식을 취했다. 과거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해가 쨍하게 드는 곳보다는 그늘을 조금 더 편안해 하고 안락함을 느껴왔던 것 같다. 스스로도 그늘정원을 좋아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늘정원이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정원의 본질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그늘정원을 조성하기로 했다.

정원은 양지식물도, 음지식물도 잘 자라는 우리나라 숲속과 닮아있다. 좁은 공간에 다양한 수종이 함께 살면서 생태적으로도 안정될 수 있도록 반그늘을 만들고 싶었는데 마침 수고가 높고 잎이 작은 아기단풍을 구할 수 있게 돼 최적의 생태적 환경을 구현할 수 있었다. 식재된 아기단풍은 잎이 작아 햇빛 투과율도 좋으면서 그늘도 생겨 해가 비칠 때도 예쁘고 그렇지 않을 때도 예쁘다. 해가 어느 위치에 있든 상관없이 다 예쁘게 보이더라. 교목의 선택이 탁월했다. 원하는 정원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식물소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새삼 깨달았다.

정원식물은 우리나라 산의 이미지를 반영해 푸른색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계절마다 같은 푸른색도 조금씩 차이를 보이듯 이 정원도 그렇다. 모든 꽃이 한 번에 만개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조금 폈다 지고, 저기서 살짝 폈다가 지면서 정원이 푸름은 계속 유지된다. 그래서 정원의 이름이 ‘청초(靑草)’이고, 변화를 알아채기 위해 ‘자세히, 오래보아야 하는 정원’이다. 자세히, 오래 보면 친숙해지고, 친숙함은 경계를 허문다.

한국인들은 경치가 좋은 곳에 정자를 세워서 아름다운 산수를 바라보는 정서가 있으니 이 정원에도 바라볼 수 있는 정자를 만들기로 했다. 정자는 프레임으로서의 역할도 할 수 있도록 심플하고 모던하게 디자인했다. 구조물이 심플해야 식물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이번 정원은 한국정원인 만큼 한옥의 목조건물을 연상토록 나무의 물성이 강하게 드러나야 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프레임의 형태 또한 한옥의 ㄱ자 형태에서 영감을 얻었다.





식물소재가 중요하다고 하셨다. 식물에 대한 공부는 어떻게 하셨고, 식재설계는 어떻게 하시는지?

서울여대 원예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조경 2년 석사과정을 밟고, 오이코스에서 1년 정도 근무했지만 출산을 하고 바로 배우자의 유학길에 함께 오르게 되면서 12년간의 공백이 있었다. 귀국 후 설계를 손으로 그려주는 정도의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우연히 식물에 대한 강의 기회가 생겨 수업 준비 겸 10개월간 매주 한택식물원을 가서 식물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계속 지켜봤다. 원예학 전공이었기에 기본적인 식물분류에 대해서는 지식이 있었고, 실제 식물을 보면서 과별 특성에 대해 자연스럽게 체득했다. 그때의 경험이 정원을 만드는데 가장 힘이 됐다.

정원 일을 할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었다. 식물을 심는 게 좋고 설계할 때도 이 식물과 저 식물이 함께 있으면 예쁘겠지? 하고 생각하는 게 재미있었다. 정원을 만들어보고 싶어서 동네 있는 작은 화훼단지 내 비닐하우스 하나를 계약하고 바닥에 돌을 깔고 식물을 심어본 것이 시작이었다. 들어놨던 보험 해지하면서 정원을 만들어본 것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 원래 성격이 소극적인데 정원에 한해서만큼은 적극적으로 변하더라. 그러다 보니 겁도 없이 달려들었다. 교수님들, 한택식물원 이사님, 세월이 흐르며 사회의 요직에 계신 선배와 동기들의 도움이 컸다.

오이코스에 근무할 때 고주석 박사님과 함께 다녔던 서너 개의 정원이 정원을 만드는 기준이 됐다. 정원을 만들 때마다 그 기준은 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설계할 때는 공간구성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동선이나 주변과의 관계를 보고, 일반 주택정원이라면 건물 내장재에 따른 식물 수종을 선택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그늘정원’을 좋아한다. 그늘에서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많이 느낀다. 그래서 정원에 해가 드는 곳, 그늘진 곳을 마련해 바라보는 정원, 쉬는 정원으로 구분한다. 클라이언트의 성향에 맞게 양지나 음지의 비율을 조절해간다. 

식재는 설계대로 되는 게 아니기에 물량을 산출하는 정도로 러프하게 설계한다. 식재의 디테일은 현장과 식물의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그늘인 줄 알고 그늘수종을 선정했어도 실제 현장에서는 미세한 환경차이가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 보고 배치를 다시 해야 한다. 이러한 방식을 취하는 이유에는 책상에 앉아서 집중하는 것보다 현장에서의 집중력이 더 좋기 때문도 있다.

식재할 때는 ‘식물도 살아있는 생물이니 나랑 똑같다’라고 생각한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먹으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내가 싫어하는 것은 이 식물도 싫어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목 말라 보이거나 아파보이면 안타깝다.


여러 공모전에 당선하시기도 하셨고 다양한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계신다. 디자인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본인만의 방법이 있다면?

정원은 감성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잘 그려진 이미지만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정원을 이해할 수 있는 디자인 스토리, 시나 서문을 작성한다. 이 정원이 어떤 느낌이며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에 대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쉬운 단어를 사용해 열 줄 정도의 글을 쓰는 것이다. 이것이 제 디자인을 이해하고 공감하시는데 큰 도움이 된다.

태화강국가정원에 조성된 ‘강으로 돌아온 아이들’(2018년 태화강정원박람회 쇼가든 부문에서 대상작)의 경우도, 태화강의 생태와 함께 추억을 복원해야한다는 스토리를 먼저 보여주고 디자인에 대해 설명했더니 많이들 공감해주셨다. 이번 정원같은 경우도 프롤로그식의 글귀를 먼저 보여드렸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익숙하지 않고 낯선 것에 대해 늘 경계해왔다. 경계를 없애는 방법은 물리적으로 담이나 울타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잘 모르는 것에서 오는 심리적 불안을 없애는 것이다. 친숙해지면 경계는 사라진다. 이 정원은 한국의 아름다움(한옥, 자연의 숲, 단아함, 수려함, 청초함)을 담고 있다. 한국 정서에 친숙해짐으로써 한국에 대한 낯섦과 어색함은 사라지고 한국과 세계와의 경계도 허물어진다. 이해하고 친숙해지기 위해서는 자세히, 오래 보아야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당초 올해 10월에 독일로 가는 일정이었으나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내년 1월부터 4월 전까지 시공하는 것으로 일정은 잡혀있다. 코디네이터이신 고정의 박사님께서 일을 진행해주고 계신다. 구조물은 도면대로 제작이 가능하니 현지 업체에 미리 맡겨두고, 식물 수급도미리 진행될 것 같다. 마지막 식재 디테일은 직접 해야 할 것 같아 3월쯤 출국해 식재하고 4월 오픈식을 보고 돌아오는 일정으로 계획하고 있다.

이제는 저를 많이 알아봐 주셔서, 제가 하고 싶어 하는 정원을 조금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기회들이 생길 것 같아 기대가 된다.

일 외적으로는 저희 집에 저를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저를 대변하는 정원을 만드는 게 꿈이다. 이를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글·사진 _ 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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