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론] 나무단상(樹木斷想)

김영민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라펜트l기사입력2021-04-01
나무단상(樹木斷想)


_김영민(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





느릅나무

교수님은 아직도 사람들이 조경을 나무 심는 것 정도로 알고 있다고 분개하셨다. 조경은 종합과학예술인데. 나도 대학 시절 내내 조경은 나무 심는 것이 아니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미국에 유학을 갔더니 교수님이 조경은 나무 심는 것이라고 하셨다. 나무의 아름다움을 알아야 제대로 된 조경설계를 할 수 있다면서 첫 시간에 우리를 하버드 야드(Harvard Yard)로 데리고 나갔다. 아직 가을이 온다는 것을 인정 못하는 늦여름의 더위와 녹음의 짙은 그늘이 만들어낸 긴장감이 팽팽했다. 교수님은 눈을 감고 지금 본 풍경에서 나무만 지워보라고 했다.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하버드의 건물로만 채워진 풍경이 얼마나 볼품없는지 보이냐고. 하버드 캠퍼스의 아름다움은 사실 나무가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1980년대 병이 퍼져 하버드의 오래된 느릅나무들이 모두 죽었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교수님에게 황량해진 야드의 재설계를 의뢰했다. 교수님은 아무것도 손을 대지 않고 나무가 잘 자랄 수 있는 흙으로 교체하고 다시 나무만 심었다고 한다. 이제 구할 수 없는 미국 느릅나무를 대신해 참나무, 단풍나무, 팽나무, 주엽나무, 은방울 꽃나무로 가득 채워진 섞은 새로운 야드를 만들었다. 그의 하버드 야드의 조경설계는 나무 심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마이클 반 발켄버그(Micheal Van Valkenburg)가 재설계한 하버드 야드가 가장 위대한 조경설계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조경은 나무 심는 것이라는 단순한 진리가 내가 대학원에 배운 가장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였다. 


옴스테드가 설계한 20세기 초의 하버드 야드 ⓒHarvard Crimson


MVVA가 재설계한 2000년대의 하버드 야드 ⓒHarvard College


버즘나무

가로수 심의위원회에서 한 지자체가 가로수 교체 계획을 발표하였다. 오래된 버즘나무를 제거하고 다른 나무로 대체하겠다고 했다. 사진 속의 제거될 플라타너스는 배려 없는 여러 차례의 강전정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자라나 훌륭한 녹음을 드리우고 있었다. 반면, 계획안의 나무는 포토샵으로 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형편없어 보였다. 임학을 전공하신 노교수님께서 당황한 듯 질문을 했다.

"저 큰 나무들을 없앤다고요? 왜 그래야 합니까?“
"규정입니다. 흉고직경 25cm 이상의 나무는 가로수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정말 규정이 그러했다. 흉고직경 25cm 이상의 나무는 오래되고 제법 훌륭히 자란 나무이다. 그런 나무는 가로수로 적합하지 않다. 너무 큰 나무는 간판을 가려 민원이 생기고, 전신주 전선과 간섭되고, 보행환경을 저해하며, 보도를 융기시킬 수 있으며, 태풍에 2차 피해를 줄 수 있다. 나는 그런 이유로 저 아름다운 플라타너스들을 베어버려야 한다는 주장에 결코 동의할 수 없었다. 하지만 큰 나무는 가로수로 적합하지 않다는 규정을 만들어낸 수많은 논리들을 부정할 용기도, 전문성도 없었다. 이미 심의 시간은 지나 있었고, 처리해야 할 안건들이 남아있었다. 제안은 서둘러 가결되어 처리되었다. 오래된 플라터너스는 그렇게 베어지도록 서둘러 처리되었다. 


파리 샹젤리제의 버즘나무 가로수 ⓒBevalde


뉴욕 브라이언트 공원의 버즘나무 ⓒOLIN


은행나무

광화문 광장에는 은행나무가 심겨 있다. 이 은행나무들은 일제가 1933년 심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 광화문 광장을 만들 때 중앙분리대에 심어진 은행나무를 보존해야 할지 논쟁이 많았다고 한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원래 육조대로에는 나무가 없었고, 이는 일본이 조선의 축을 일부러 왜곡하기 위해 심었기 때문에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경의 상징목이 은행나무이며, 장수하는 은행나무는 일제의 식민통치가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상징이기 때문에 베어져야 마땅하다는 논리였다. 다행히 서울시는 29그루의 은행나무를 베지 않고 주변에 이식했다.

광화문 광장을 다시 설계하면서 은행나무는 새로운 딜레마가 되었다. 설계를 진행하면서 나는 한국적 풍경을 재구성하고 싶었는데 일제가 심은 은행나무는 개념적 걸림돌이 되었다. 나는 동궐도, 경기감영도와 같은 옛 관청을 그린 그림의 나무들을 광화문에 가져왔다. 은행나무 사이에 감나무, 때죽나무, 단풍나무, 산수유, 회화나무를 심어 은행나무만이 지배하는 것이 아닌, 우리의 옛 그림처럼 서로 다른 나무가 어우러져 북악에서 도시까지 이어지는 녹의 흐름을 만들었으면 했다. 2년 동안 늘어진 설계 기간 동안 공모전 원안은 많은 부분 바뀌었지만, 식재의 개념을 그대로 유지되었다.

광화문 광장 공사가 시작되었다. 유물이 새로 발굴되었고 시장이 곧 바뀔 예정이다. 광화문 광장에는 여전히 많은 변수가 남아있지만 100년 된 은행나무와 크고 작은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녹색의 흐름만큼은 북악에서 한강까지 흘러가면 좋겠다. 


세종대로의 은행나무 가로수 ⓒ중앙일보


광화문 광장 공모전의 식재개념 ⓒCA조경기술사사무소


단풍나무 

”오늘날 영화가 잃어버린 것은 나무를 흔드는 바람의 아름다움이다.“ 

영화감독 그리피스(D.W. Griffith)의 비판에 응답하듯이 애니메이션 <소울>에서는 바람에 흔들려 떨어지는 단풍나무의 씨앗이 너무나 아름답게 그려진다. 우연히 떨어진 단풍 씨앗에서인생을 살아가야 할 가치를 발견하는 주인공 조의 여정은 먹먹한 울림을 준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단풍나무는 크게 자라는 나무가 아니라서 우리나라에서는 가로수로 흔하게 쓰지는 않는다. 북미의 자생 단풍들은 대형목들이라 뉴욕을 포함한 동부의 길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가로수들이다. 그만큼 <소울>에서 단풍 씨앗은 피자, 베이글 조각, 지하철 표처럼 너무나 흔해서 아무도 소중히 생각하지 않는 일상의 소품이다. 그런데 나무에 대한 지식이 없는 영화평론가들이 꽃잎으로 착각하기도 하는 단풍 씨앗은 평범하게 생기지는 않았다.

단풍 씨앗은 날개가 달려 바람이 불면 모체로부터 멀리 날아가 발아하도록 진화한 시과(smara)라는 특수한 형태를 하고 있다. 어느 가을날 바람이 불 때, 거대한 북미의 단풍나무들은 팽그르 돌아가는 수많은 요정 같은 아기 단풍들을 세상에 보내는 장관을 연출한다. 사실 흔한 나무나 꽃은 없다. 나는 트렌디하지 않다고 이제 잘 심지 않는 개나리의 노란색만큼 이른 봄의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색을 본 적이 없고, 촌스럽다고 젊은 정원디자이너들이 기피하는 진달래와 철쭉의 선홍색만큼 초현실적인 감각의 색을 알지 못한다. 너무 흔해서 싸구려 취급받는 회양목보다 다채로운 모양을 만들어내며 활용도가 높은 관목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일상적이라고 해서 특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의미가 없는 삶이란 없듯이 특별하지 않은 나무는 없다.


영화 Soul의 장면 ⓒPixar


북미의 자생 단풍나무 Acer rubrum ⓒFamartin


히어리

”나는 이 나무가 참 좋아. 얘 하나가 중심만 잡아주어도 정원이 살거든.“

내가 식재를 배우려고 따라다니던 선배님이 좋아한다는 나무는 히어리였다. 이름이 예뻐서 라일락처럼 외국에서 건너온 나무인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순수 우리말 이름을 가진 나무라고 한다. 이른 봄에 나뭇잎이 나기 전에 노란 꽃이 조랑조랑 조그만 종들처럼 매달린 듯 피어난다. 선배님은 나무의 잔가지를 전정하면서 투덜거렸다.

”그런데 조경가는 이런 나무들 때문에 좀 곤란한 점도 있어. 굳이 애써 식재 설계를 잘 안 해도 이런 애들이 잘 자라나면 정원이 예쁘거든. 뛰어난 조경가랑 형편없는 조경가가 설계한 정원의 차이가 나중에는 잘 보이지 않아. 못 봐줄 지경인 건물은 있어도 못 봐줄 지경인 나무나 꽃은 없으니까.“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처럼 솜씨 없고 우매한 조경가도 그 자체로 아름다운 나무와 꽃 때문에 그럭저럭 괜찮은 설계를 할 수 있어서. 

히어리 ⓒ세명고등학교 김태원
_ 김영민 교수  ·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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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mkim@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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