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청와대 전면개방과 공원화

이창환 논설위원(상지대학교 명예교수)
라펜트l이창환 명예교수l기사입력2022-04-25
청와대 전면개방과 공원화



_이창환 논설위원(상지대학교 명예교수)



최근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따른 논쟁이 뜨겁다. 전통 조경 전문가로써 몇 자 적어본다.

경복궁 뒤편 북악산 끝자락에 자리잡은 청와대는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대통령과 현 문재인 대통령 등이 국민과의 소통을 들어 집무실 이전을 주장하거나 추진해 왔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경복궁 밖으로 집무실 이전을 시도하고 있다. 청와대를 공원화하여 국민들에게 돌려준다니 7만 6천여 평(약 253,505㎡) 공원을 만끽할 수 있어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이러한 역사적 공간의 공원화 운동은 18~19세기 영국의 계몽·낭만·자연주의 운동과 함께한다. 공원화 운동은 산업화·공업화로 인한 많은 도시인구 집중화로 인한 도시문제의 해결을 위해 영국왕실이 궁전 등을 공원화하면서 시작되었다. 대표적으로 런던의 하이드(Hyde) 파크가 있다. 이러한 공원들에서 누구든 왕실의 실정을 평가하고, 토론하면서 영국의 민주주의가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영국인 브라운(Brown)이 설계한 파고다 공원이 그 시초이다. 이렇게 공원은 소통과 휴식의 장으로 주어져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공원(公園)은 글자에서도 나타나듯 공적인 정원이다. 남녀차별, 신분계급에 관계없이 누구나의 휴식을 위한 시민 모두의 정원인 것이다.

원래 청와대 터는 고려의 하절기 궁궐이었던 남경(南京)의 후원 터로 조선시대에는 경복궁 후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1392년 조선 창건 이래 1896년 고종이 경운궁으로 아관파천하기까지 조선 법궁의 후원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교태전 등 많은 건축물을 철거 훼손하여 박람회장, 조선총독부 등으로 사용하면서 궁궐의 기능을 왜곡 망실하였다. 경복궁의 500여 년간 후원의 경관과 건조물 등은 사라지고 임류각 정도만 남아 있는 형편이다. 경복궁 후원은 조선총독부 관사인 경무대 등으로 쓰이면서, 근대 통치자 집무실로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우리 민족의 말살 정책으로 경복궁내 길지(吉地)인 아미산 앞 최고 길지인 교태전을 철거하고, 궁궐 앞에 조선총독부 건물(1995년 김영삼 대통령 때 철거)을 지으면서 우리 민족의 정기를 끊으려 했던 곳이다. 이후 1948년 미군정의 관저로 쓰이다가 1948년 8월 이후 이승만 대통령의 관저로 쓰이며 지금까지 74년동안 우리나라의 대통령 관저로 쓰이고 있다. 

돌이켜 보면 청와대는 일제강점기와 광복 그리고 6.25 전쟁 등의 아픔의 역사와 민주화, 경제성장 등을 거친 번영기의 통치·정치적 공간이었다. 청와대 경내에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같이해온 유적과 유물이 많은 중요 역사 공간이다. 구체적으로 8-90년대 우리 건축의 특징인 콘크리트를 이용한 전통 한옥형 건축인 본관 건물과 영빈관, 춘추관 등이 있다. 또한 「주례고공기」에 근거한 동아시아의 궁궐의 후원에 설치하여 백성들의 농사현황을 살피도록한 친경전(親耕田)이었던 팔도배미가 있으며 수궁터, 절병통(節餠桶)과 같은 역사 유적들이 있다. 이 밖에 청와대 각종 야외 행사로 쓰였던 녹지원과 본관 앞 큰 뜰(대정원) 등 8만여 평의 근현대의 정원 등이 근대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더하고 있다. 더욱이 74년간 역대 대통령과 영부인의 생활공간이며 정치적 공간으로 역대대통령의 숨결의 있는 곳이다. 청와대 직원들 또는 국무위원들과 함께 살아온 각종 수목과 꽃들은 많은 애환의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다. 특히 수령 750년의 주목과 상춘재 잔디광장의 반송은 청와대 개방 이후에 국민들의 사진 속에 가장 많이 노출될 주인공이다. 이들에 대한 국가유산 및 보후수 지정도 요구된다.

결론적으로 청와대는 고려와 조선을 잇는 역사적 공간이며 우리 민족의 근현대 74년 동안 통치자의 공간으로 근대유산으로서 역사적 가치를 갖고 있다. 따라서 이곳은 일반 근린 공원화보다는 역사공원으로 지정하여 가치를 보존하면서 일반에 공개되어야 한다. 아울러 경내에 있는 본관 건물 등 근대건조물 과 천하제일복지 각자, 임류각 등은 연접한 명승 등을 고려하여 국가 사적 및 유산 지정 등의 행정절차가 요구된다.  그리고 대통령과 영부인들의 애환을 같이하고 있는 수목과 꽃 등도 보존 가치를 갖고 있어 이들에 대한 기록작업도 이루어져야 한다.

우려스러운 것은 미군정 때 급히 도입된 공원제도로 인해 역사공원을 근린공원 등으로 관리 보전하는 우를 범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지금도 서울의 많은 역사공간이 근린공원으로 지정되어 관리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물론 전면 개방시 지속가능한 공원(유산)의 보전과 관리를 위한 사회적, 물리적, 생태적 수용력의 점검과 이용자 편의를 위한 시설 확보도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청와대라는 명칭의 대(臺)자는 누사대각정(樓舍臺閣亭)의 원림건축의 용어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현대적 용어로는 적합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누(樓)는 2-3층 구조의 높은 건조물에 붙이는 이름이며 정(亭)자는 1-2층 구조의 단순 휴식용 공간에 각(閣)은 온돌 등의 방이 배치된 곳에 대(臺)는 높은 절벽과 언덕 등의 높은 곳에 붙이는 이름이다. 봉건적 통치자적인 이름으로 현대적 민주화된 국민적 눈높이의 용어는 아닌듯하다. 중국의 현 통치자 접무실 뒤의 후원 역할을 하는 곳인 조어대(釣魚臺), 북한의 만수대(萬壽臺) 등의 용어도 왠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통치하고자하는 봉건국가적 건물명칭인 것 같아 현대적 감각의 명칭은 아니다. 조선시대의 지방관청(강원감영등)의 후원에 언덕을 만들어 방장대(方丈臺)라 칭하는 것도 높은 언덕에서 백성을 다스리려 했던 곳을 칭하고 있어 대(臺)라는 용어의 의미를 새겨 볼 일이다.


조선시대 초기 백두대간의 정기가 경복궁의 후원을 통해 아미산을 거쳐 교태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삼성박물관 소장)


청와대 본관과 잔디마당


청와대 상춘재 앞의 정원인 녹지원, 반송은 많은 청와대 관람객들의 기념촬영 배경이 되었다.
 
글·사진 _ 이창환 명예교수  ·  상지대
다른기사 보기
55hansong@naver.com

네티즌 공감 (0)

의견쓰기

가장많이본뉴스최근주요뉴스

  • 전체
  • 종합일반
  • 동정일정
  • 교육문화예술

인기통합정보

  • 기획연재
  • 설계공모프로젝트
  • 인터뷰취재

커뮤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