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조경 시공 교육의 기본에 대한 소고(小考)

김호걸 논설위원(청주대 조경도시계획전공 교수)
라펜트l기사입력2023-04-27

조경 시공 교육의 기본에 대한 소고(小考)

- 측량학 수업을 사례로 -




_김호걸 청주대 조경도시계획전공 교수



각 분야에는 소위 바이블(Bible)이라 불리는 교재들이 있다. 필자에게 처음으로 바이블로 다가왔던 교재는 고등학교 시절에 접했던 정석이라 불리는 수학 교재였다. 전공 학문에서도 마찬가지로 기본이 되는 교재들이 존재한다. 개인적으로는 'Landscape ecology'가 경관생태학의 바이블로서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Forman and Godron, 1986). 이러한 기본이 되는 교재들은 발간된 지 오래되어도 여전히 빛을 발한다. 교재가 담고 있는 내용이 기초적이기 때문인지, 유명한 저자의 문체와 실력 때문인지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필자가 경관생태학의 바이블이라 생각하는 Landscape ecology의 표지

필자는 조경 시공 교육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측량학 수업을 진행하면서 최근에 여러 가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현재 드론 한 대를 대상지 위에 날리면 측량을 완수해주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느 날 문득 필자가 강의하는 측량학 수업의 커리큘럼을 돌이켜보니, 약측량, 평판측량, 수준측량, GPS 실습, 드론 실습, 토탈스테이션 정도로 구성되어 있었다. 커리큘럼 중에서도 특히, 이제는 현장에서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평판측량이 눈에 띄었다. 한편으로, 최근 판매되는 토탈스테이션은 GPS 기기도 포함되어 있고, 통합적인 측량이 가능하므로 수준측량이나 GPS 실습도 꼭 필요한 것인지 고민이 되었다. 









평판측량으로 실습을 하는 학생들의 모습(출처 : 본인)

현재 커리큘럼에도 드론 실습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드론을 이용한 정밀 측량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드론 조작 및 사진 촬영의 기초적 실습과 활용사례 소개 수준으로 구성하고 있다. 최근에는 드론으로 측량의 정확도도 점점 높아지고 있고, 측량 시간과 비용도 크게 줄일 수 있기에 효율적인 측량 방법으로 활용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측량학 수업에서도 드론만 여러 대를 구매하고, 사진 촬영을 통한 측량 방법만 가르치면 되지 않을까? 측량학이 아니라 드론 측량이라는 수업으로 명칭을 바꿔 진행하면 어떨까? 이러한 의문이 마음속에서 점차 커졌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오픈AI(OpenAI)의 챗GPT(ChatGPT)는 방대한 양의 웹 자료에 대한 학습을 통해서 분야를 막론하는 다양한 질문에 놀라운 수준의 대답을 보여준다. 과거 알파고가 최정상의 기량을 갖는 바둑기사를 이겨서 인공지능의 높은 수준에 대해 놀라움을 주었다면, 챗GPT는 더욱 다양한 분야와 생활에 강력한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오픈AI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기술 연계로 인해서 구글이 잔뜩 긴장하고 있는 등 전 세계의 이목이 챗GPT에 쏠리고 있다. 올해 초에는 윤석렬 대통령이 챗GPT에 신년사를 써달라고 요청했더니 멋진 답변을 받았다는 기사와 함께, 정부 부처에서 챗GPT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조선일보, 2023.01.28.).

필자도 영어로 작성한 연구논문을 챗GPT에게 교정을 시켰더니 단순 교정이 아니라 문장의 선후 관계까지도 고려한 답변을 받아서 적잖이 놀랐다. 또한, 연구주제 관련 자료에 대해 질문해봤더니, 직접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더라도, 추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출처들을 알려주는 등 섬세한 기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2021년 9월까지 구축된 정보에 대해서만 답변할 수 있고, 질문을 잘못 이해한다거나, 이용자가 많은 경우에는 답변받지 못하는 등의 한계도 함께 확인할 수 있었다. 이처럼 빠른 인공지능 발전 속도를 봤을 때, 앞으로는 대상지 영역을 설정하고 실행 버튼 하나만 누르면 드론이 알아서 모든 것을 측량하는 시기도 분명히 올 것 같다.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실제 기술을 이용하는 것은 사람일 것이다. 챗GPT의 편리함처럼, 우리는 기술 발전으로 많은 혜택을 받는다. 하지만 개발된 기술을 어떻게 이용하고 활용하느냐는 결국 기술을 이용하는 사람에게 달려있다. 최신 기술 분야는 첨단 기술을 다루지만, 전공 영역의 세부적인 지식에 대한 이해도는 낮은 경우가 많다. 전공을 구성하는 세부 분야는 매우 다양하고, 글자로는 배울 수 없는 경험적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전문 분야에서 첨단 기술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전공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할 때야말로 유용한 활용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모든 것을 “알아서” 해주는 기술은 없다. 음식을 주문하거나 배달할 때,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알아서” 시키라고 부탁받았을 때, 매우 난감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불명확한 부탁은 기대하지 않았거나 잘못된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스마트 기술과 인공지능 기술은 무엇이든 “알아서” 해주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조경 시공, 측량과 같이 현장에서 많은 것들이 진행되는 전문 분야에서 모든 것을 알아서 해주리라는 기대를 하기는 어렵다고 판단된다. 기상 조건, 대상지 특성, 이용자 의도, 자료활용방안에 따라서 다른 기술과 데이터가 요구될 것이며, 그에 적합한 측량기법 적용이 필요하다. 똑똑하다고 평가받는 챗 GPT도 수학에 관련된 질문에는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질문의 명료함에 따라서 답변의 질도 크게 달라지는 경향을 보면, 모든 것을 “알아서” 한다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렇다면, 왜 측량학 수업에서는 기초적이면서도 오래된 이론과 실습 방법들을 가르쳐야 하는 것일까? 조경 분야에서 학생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격증은 조경기사이다. 조경기사 시험에는 여전히 평판측량이나 수준측량과 같은 오래된 이론과 실습에 관한 내용이 출제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이 출제되고 있는 이유는 전공 학문의 기본과 기초는 변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기본과 기초를 이해하지 않고, 새로운 기술만 습득하고 의존하는 것은 수박 겉핥기식의 교육이 될 가능성이 있다.

조경 측량을 배우는 학생들은 과거에 사용되었던 도구를 이용하여 측량에 대한 기본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 평판측량에서는 방사법, 전진법, 교회법 등의 측량 기술들을 배우고 실습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현장을 직접 뛰어다니면서, 평판 위에 선을 긋고, 줄자로 거리를 재어가며 측량 기술들을 몸에 익힌다. 이를 바탕으로 토탈스테이션에서도 같은 기술들을 적용해서 실습을 진행한다.

일부 학생들은 평판측량을 배우지 않았다면 토탈스테이션으로 실습을 할 때, 어떤 원리로 측량이 이루어지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배운 측량기법을 종합하여 수행하는 기말과제에서는 대상지의 지형적, 환경적 조건에 따라서 무거운 장비의 설치가 불가능하거나 직접적인 측량이 어려운 경우에 간접적인 측정 방법이 필요했는데, 이때 보측과 같은 간이 측량 방식, 평판측량 도구들이 유용했다는 평도 있었다. 여러 기술을 통합하여 활용할 수 있는 기기가 있더라도, 오래된 평판측량이 측량 기술의 적용 원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었다.

조경설계 담당 교수들도 이와 비슷한 고민을 토로한 것이 생각났다. 종이 한 장 없이도 2차원과 3차원의 가상 공간 설계가 가능한 현재에도, 손으로 하는 도면 작업과 다양한 방식을 이용한 공간 측량의 경험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다양한 공간에 대한 현장답사와 측량을 통해서 몸으로 직접 익히는 공간 감각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시던 것이 생각났다. 이처럼 조경설계 분야에서도 오래된 커리큘럼이라고 할 수 있는 제도, 색채 등의 교과목들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른 모든 교육과 같이, 조경시공 교육 방법의 정답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자들은 정답이 없더라도, 최적의 교육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본 기고문에서 필자는 기술발전 속도가 무섭게도 빠른 시대에 적합한 조경 시공 교육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자 한다.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교육에 도입하는 것은 학생들이 전공 분야에 빠르게 적응하고 취업에 대응하기 위해서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다만, 새로운 기술 습득 노력만큼이나, 학문의 기초적인 원리와 배경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기술 발전은 계속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조경 시공의 기본에 대한 이해는 항상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조경 시공 교육에서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의 균형이 필요하고,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변화하는 사회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교수의 역할이라고 생각된다. 필자는 언젠가 조경 시공의 바이블이라 불릴만한 교재를 집필할 때까지, 최적의 조경 시공 교육 방법을 찾는 노력을 계속하고자 한다.


[참고문헌]
Richard T. T. Forman, Michel Godron, 1986, Landscape Ecology, Wiley, ISBN: 978-0-471-87037-1
조선일보, 2023.01.28. “챗GPT에 신년사 써보게하니 훌륭… 잘 연구해보라”(링크)

글·사진 _ 김호걸 교수  ·  청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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