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 조경인이 그려야 하는 미래

김정윤 오피스박김 소장
라펜트l김정윤l기사입력2017-06-27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Series No.25



조경인이 그려야 하는 미래




김정윤 오피스박김 소장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운영위원




‘Landscape gardener’라는 명칭이 주는 한계가 답답했던 옴스테드는, 마침 센트럴파크의 ‘수석 건축가(architect-in-chief)’로 임명된 후 유럽의 공원선진사례를 답사했다. 그 중 특히 파리의 불로뉴숲(Bois de Boulogne)을 2주 동안 8차례 방문했고, 여기서 그는 ‘Larchitecte-paysagiste’라고 불리는 전문가들이 전통적 정원사의 업무를 넘어 인프라스트럭처의 개선, 도시화 작업, 대규모 공공프로젝트의 유지 관리 등의 업역을 넘나들며 불로뉴숲을 만들었음을 알게 되었다. 뉴욕으로 돌아온 옴스테드는 스스로를 Landscape architect―우리가 ‘조경가’라고 번역하는―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그 후 처음 수행하게 된 용역은 맨해튼 북부의 도시 설계였다. 이렇듯, 이 직업의 시작은 도시에 목가적 피난처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도시 자체를 만드는 일이었다.
⒤ Charles Waldheim이 Harvard Design Magazine 제36호에 기고한 ‘Landscape as Architecture’에서

미국 조경의 시초에 옴스테드라는 개인이 있었다면, 우리나라 근현대 조경의 시작엔 박정희라는 개인이 있었다. 건축·도시·조경의 지식지형을 그리려는 시도를 한 책 ‘건축도시조경의 지식지형’을 보면 우리나라 건축과 조경 모두 배형민이 이야기하는 ‘불안한 역사와 그로 인한 언어의 파편성’을 공유하긴 하지만, 그래도 건축은 현상설계지침서들을 통해 건축언어의 발전을 추적하는 일이 가능할 정도의 지식과 실행의 축적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책에서 배정한은 한국조경의 태동과 발전을 박정희 개인의 관심사와 그에 맞물린 시대적 요구를 통해 설명한다.

개인의 역할이 지대했던 것은 비단 한국조경만의 현상은 아니다. 어쩌면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이라는 학제 자체의 후발성과 관계적 특성이 내포하는 태생적 한계이자 가능성에 기인한다 할 수도 있겠다. 근현대 조경의 학제 및 업역의 견인차 역할을 한 미국 조경 또한 몇몇 개인의 지대한 공이 컸다. 그러나 다른 점은, 옴스테드에서 시작된 여러 차원의 노력이 그 후 계속 쌓여 왔고 이것이 현재 미국을 비롯한 서구 조경 프랙티스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조경교육을 받았고 스스로를 조경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대규모의 워터프론트 설계와 도시설계마스터플랜 등 현상설계에 초대되고 당선되며 수행하고 있다.

‘동탄2신도시 워터프론트 설계공모(2010)’는 우리나라 조경이 건축과 도시의 미래까지 지시할 수 있었던 획기적인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당시 현상설계 지침서는 “주거용지, 상업업무용지, 지원시설용지, 공원녹지용지, 공공시설용지 등의 면적구성비는 개발계획 승인내용과 동일하게 제안해야 하며, 창의적 계획을 위해 필요한 경우 각각의 시설 용지별 경계 조정은 가능하다”라고 명시함으로써 워터프론트와 그 주변을 조경가의 리더십 하에 설계함에 있어 이미 토지이용계획으로 인해 정해 져 버린 도로의 선형, 공원부지의 모양과 인접부지와의 관계 설정 등 폭넓은 변경을 허용한 것이다. 도시-건축-조경의 순으로 이미 정해져 있는 설계절차 내에서는 조경설계자의 개인기만으로 자연환경과 공원이 뼈대가 되는 도시공간을 만들어내는것이 불가능 하기에, ‘조경가가 반드시 컨소시엄의 대표자가 되어야 한다’는 항목과 함께 이러한 지침은 분명 미래에 큰 획을 그을 수 있는 ‘판’을 우리 조경계에 만들어 준 것이었다. 아마도 당시 공모운영팀은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그러한 지침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같이 생각해보고 싶은 점은, 조경이 도시를 지시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기회가 만들어졌었으나 과연 그러한 과정이 소모되지 않고 쌓였는가, 그리고 현재 조경직제의 위치와 ‘프랙티스’의 생산물들은 이를 반영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설계사무실에서 하는 일의 대부분은 클라이언트가 제시한 대상지와 문제점을 연구하여, 합당한 금전적 대가를 지불 받고, 그 결과물로서 공간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따라서 우리가 하는 일은 예술이 아니다. 질문이 없으면 답을 할 기회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질문이 없는데 설계자의 개인기로 좋은 답을 만들기는 매우 어렵다.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조경의 미래는 더 이상 한 영웅적 리더의 개인기로 만들어 질 수 없다. 판을 만들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판을 만들어 주고, 답을 내는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은 판이 만들어 졌을 때 좋은 답을 만들어 내야 한다. 실제 짓는 일을 하는 사람은 답지를 받아 들었을 때 최선을 다해 지어야 한다. 각자의 역할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기회가 오더라도 소모되기 쉽고 과정은 쌓이기 힘들다. 이 모든 역할자들이 각자 자리에서 함께 미래를 그렸으면 한다.



라펜트는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과 함께 조경의 미래방향을 모색하는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를 매달 1회씩 게재하고 있습니다.  

 

미래는 현재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향방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조경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논의의 장으로서 조경인 모두의 관심과 함께 연재가 이어가기를 기대해봅니다.

 

*7월 필자는 백운해 LH토지주택대학 교수입니다.


_ 김정윤  ·  오피스박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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