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DMZ에도 새해아침 평화의 서광이 비추길

이원호 논설위원(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명승·전통조경·천연보호구역 담당)
라펜트l이원호l기사입력2019-01-02
DMZ에도 새해아침 평화의 서광이 비추길




_이원호(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명승·전통조경·천연보호구역 담당)

 

얼마 전 남북 철도 연결을 위한 착공식이 거행되었다. 한반도 평화를 향한 남북의 움직임은 복잡한 국제정세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나가고 있는 듯 보인다. 

남북한 합의 분위기 속에 요즘 세간의 관심사는 단연 DMZ(비무장지대)다. 남북은 비무장지대에 우리 문화유적을 공동으로 조사하는데 합의했었다. 이는 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평화통일의 이행을 위한 상징적 사업이라 할 수 있다. 

DMZ는 남‧북 분단의 역사적 산물로 70여년간 시간이 멈춰선 한반도의 허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총연장 248km, 폭은 남북을 합하여 4km로 한반도의 250분의 1에 달하는 907㎢의 면적을 지녔다. 서로 임진강 하구에서 동으로 강원도 고성지역에 이른다. 

1950년 6.25 전쟁의 흔적이 남아있는 기억유산(Site of Memory)으로 가치가 높은 고대 역사유적과 근대의 문화유적이 중첩된 장소이기도 하다. 기억유산이란 과거에 그 장소에서 일어났던 일로 인해 역사, 사회, 문화적으로 중요성을 지니는 장소를 말한다. 이 장소들은 한 공동체나 국가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준 곳들이다.

DMZ의 중요한 문화재로는 궁예가 건설한 철원도성, 고려고분, 병자호란 전적지와 베티고지, 경원선 등 철도지, 도라산 봉수지, 삼국시대 포곡식 산성인 성재산성, 창화사지와 기곡리사지, 김화의 충장사지가 있다. 등록문화재로는 구 장단면사무소, 구 장단역 터가 파주에 있다. 그밖에 김화현치소, 조선시대 홍세공 묘가 있으며 천연기념물로는 한강하류 재두루미 도래지가 위치해 있다.


구 장단면 사무소 / 문화재청 제공


구 철원 제2금융조합 건물 터(등록문화재 제137호), 철원 수도국 터 급수탑(등록문화재 제160호) / 문화재청 제공


철원 농산물검사소 (등록문화재 제25호) / 문화재청 제공


철원 승일교(등록문화재 제26호), 철원 얼음창고(등록문화재 24호) / 문화재청 제공


철원 노동당사(등록문화재 22호) / 문화재청 제공

DMZ하면 판문점과 철원의 노동당 당사 건물이 대표적이다. 특히 노동당 당사는 마치 전쟁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분단을 상징하는 폐허의 장소다. 철원읍 관전리에 있는 이 건물은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지어졌는데 러시아 건축양식이 부분적으로 쓰인 무근 콘크리트 벽돌조 건물이다. 당시 연합군의 공격으로 현재는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과 비슷하게 골격만 남았는데 사뭇 다른 깊은 아픔이 느껴지는 곳이다. 이재 국방문화재위원장에 따르면 DMZ는 최초 설치 때부터 완충지대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수많은 GP를 설치하고 남북이 경쟁적으로 중화기들을 전진배치하면서 실제 비무장지대의 면적은 당초보다 줄어 들게 되었다고 한다.

DMZ지역의 최초 조사는 한국자연보존협회에서 1966년부터 계획되었으나 서울대 강영선 단장을 필두로 23명의 학계 전문가들이 모인 1974년에야 문화재청의 전신인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의 관리 하에 미국 스미소니언 연구소 학자들과 함께 이루어졌다.

이제는 낡은 당시 보고서를 읽다 보니 연구진에 당시 강사 신분이였던 이은복 전 문화재위원의 이름도 새롭다. 감회를 적은 책의 머리에는 “원래 6.25 동란에 의한 군사적 정치적인 남북한의 경계에 지나지 않지만 이것이 최근에 이르러 학술적으로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줄이야 아무도 몰랐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인간의 간섭이 전혀 없었던 것만은 아니다. 휴전의 상황 속에서도 DMZ 내에는 남북 대치의 긴박함이 지속되었던 것이다. 수많은 산불과 소음 등 끊임없는 인간간섭을 받고 있어 교란된 생태계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1970년대 이후의 괄목한 만한 연구로는 문화재청에서 자연유산보존협회를 통해 2005년에서 2007년까지 3년간 실시한 군사접경지역 자연유산 기초자원 조사 연구다. 

이인규 전 문화재위원장을 책임 연구원으로 하여 경관자원 분야에 김학범 전 천연기념물분과 위원장, 지형‧지질에 이광춘 전 문화재위원, 식물 분야에 이은복, 조도순 유네스코 MAB 한국위원회 위원장, 동물분야에 이흥식 전 문화재 위원 등 문화재분야에 낯익은 대형급 전문가들이 이 조사에 참여했었다.

무장지대는 백두대간, 도서 연안 지역과 더불어 한반도의 삼대 생태 핵심축을 이루며 동쪽은 백두대간과 서쪽은 한강 하구와 강화갯벌에서 시작되는 도서‧연안 생태 축과 연결된다. 비무장지대 일원의 민간인 통제지역은 산림 유전자자원 보호구역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이 많다(김보현,2013). 비무장지대의 식물은 최근 1,926종에 달한다고 한다. 그밖에 포유류는 47종, 조류는 277종, 양서‧파충류가 34종, 육상곤충이 2,954종, 어류가 136종, 저서성대형 무척추동물 417종, 거미가 138종에 달하는 생태계의 보고이다. 이곳은 경관도 빼어나다. 김학범 전 천연기념물분과 위원장은 DMZ 내 대교천 협곡, 소청도와 연평도의 바위들, 두타연 등을 명승자원으로 추천하기도 했다.

사실, 그동안은 군사적 상황으로 인해 비무장지대 내에 전체적 조사가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생명이 위협받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나마 이제껏 조사를 해온 연구진에게 경의를 표한다.

최근에는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DMZ 문화재 보존 및 조사연구 발전방안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하여 고고학, 자연유산, 근대문화재 전문가들이 모여 남북공동조사 방향과 활용방안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들을 나눈 바 있다. 국제사회의 관심은 남북 화합의 분위기 속에 DMZ가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남북 분단의 상황 속에서 오히려 보존하게 된 생태계요, 지금에 와서는 6.25 전쟁이 준 단 하나의 선물이 된 셈이다. 이는 남북의 협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 사업은 지뢰제거 등 안전조치 후 과학적인 방법으로 발굴해야 한다.

지난 12월, 자연유산 전문가 라운드 테이블 세미나에서 자연유산 분야 전문가들이 DMZ에 대해 내놓는 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DMZ 자연유산을 주제로 한 실질적 연구에는 대단히 많은 제약이 따르며, 장기적인 조사, 발굴, 복원, 활용을 위한 Road Map 작성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동물·식물·지질·문화경관 등 각 세부 분야별 전문가 집단 구성을 통해 장기적인 안목의 조사가 시행될 수 있는 기틀 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 현존 식생뿐만 아니라 진화되는 식생 경관으로서의 경관구조나 기능에도 주목해야 하며, 전문가들을 구성하여 지속적인 회의를 걸쳐 가장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 조사방법으로 진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DMZ의 동물상 조사는 민통선 지역 동물과의 상호 이동, 증식을 위한 조사가 병행되어야 하며, 무인카메라 설치는 동영상 촬영이 가능한 고성능 장비를 사용해야한다. 특히, 예비 조사시에는 지뢰 등의 위험성과 진입시 어려움을 고려해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라이다를 장착한 드론을 이용해 DMZ 지역내의 전체지형과 지형 지물 등에 대한 베이스맵 작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연유산분야의 전담팀도 꾸려져야 하고 이를 통제하는 허브는 문화재청이 되어야 한다. 

남한의 DMZ는 소유권 관계가 복잡하다. 현재 북한이 금강산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중이라 북한과 협의가 빠를수록 좋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이마저 어렵게 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

세계유산 분야에서 기억의 유산 등재를 위해서는 그 기억이 등재 국가나 다른 국가에 있는 공동체에 고통을 주는 기억이라면, 등재 당사국이 이해당사자들과 대화하고 중재하여 상호 동의하는 해석을 만들어내야 하며 최소한 유산을 해석함에 있어 다른 관점이 존재한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DMZ가 간직하고 있는 문화재는 남북한이 만나게 되는 좋은 계기이자 통일을 앞당기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새해 새아침! DMZ 지역에 자연이 원래대로 회복되고 야생동물들이 마음놓고 뛰노는 모습! 이곳이 비추는 따뜻한 햇살! 마치 영화의 에필로그 같은 평화로운 장면을 곧 만나게 되길 새해 소원으로 빌어본다.


최초의 비무장지대 조사 보고서(문화재청) / 
문화재청 제공


서부지역의 경관(문화재관리국,1975) / 
문화재청 제공

참고문헌
국립문화재연구소(2018), DMZ 문화재 보존 및 조사연구 발전방안 학술심포지엄 자료집
김보현(2013), 보호지역(Protected Areas), 한국보호지역포럼
김정동(1998), 하늘 아래 도시 땅 위의 건축, 가람기획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1975), 비무장지대 접경지역 종합학술조사보고서
이코모스 코리아(2018), DMZ의 유산적 가치, 2018년 4차 이코모스 포럼 자료집
외교부, 문화재청, 유네스코 한국위원회(2018),유네스코 세계유산협약 가입 30주년 국제세미나 자료집

 

_ 이원호  ·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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