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지식공유와 집단지성

유병혁 논설위원(국립공원공단 사회가치혁신실 과장)
라펜트l유병혁 과장l기사입력2022-03-10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지식공유와 집단지성




_유병혁 국립공원공단 과장


필자는 기술 블로거다. 지도 제작과 관련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사용법을 블로그에 11년째 올리고 있다. 공직생활 중에 틈틈이 하는 자기 계발이었는데, 감사하게도 그간 150만 명 가까이 블로그를 다녀갔다. 방문자 중 상당수가 조경학 전공자이다 보니 자연스레 조경인 분들과 소통하고 관련 대학, 학회와도 교류하고 있다. 라펜트와의 인연 또한 그러했다.

필자가 블로그에 올리는 지식 콘텐츠는 크게 두 가지 동기가 있다. 하나는 현재 학습하고 있는 지식을 정리해 가며 익히는 것, 다른 하나는 콘텐츠 공유를 통해 누군가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내 전공 분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와 기쁨을 느끼곤 한다. 지난 10년간 습관적으로 콘텐츠를 이어나갈 수 있었던 계기도 여기에 있다.

때로는 소박한 블로그 활동만으로 나와는 다른 레벨의 실력자를 만날 기회도 있었다. 한 예로 필자 블로그에는 조경학 출신 개발자 장비(아이디)의 응원 어린 댓글이 존재한다.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아래 이미지만 봐도 공감이 갈 것이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사귀면서, 나는 지난 10년을 행복하게 보냈다. 이제는 개인의 지식공유를 넘어 집단지성을 어떻게 하면 이롭게 발휘할지 가벼운 고민과 실험을 반복하는 중이다.


가장 최근의 도전으로 2021년 ‘파크랩(ParkLab)’을 개설했다. 전공, 소속, 나이 무관하게 누구나 참여 가능한 국립공원공단의 공식 학습조직으로, 여러 유닛 중 GIS와 AI 기술을 배워가는 DSLab(데이터사이언스 랩)을 수개월째 운영 중이다. 처음에는 공단 직원 비율이 높았는데 점점 더 외부기관 참여가 늘어 현재는 한국관광공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립생태원, 경기연구원, 한국국토정보공사 5개 기관 직원들도 함께하고 있다. 또한 SK임업, 한국공간정보통신, 샘물터, 세트렉아이 직원분들과 강원대, 경상국립대 연구자분들, 그리고 미국 메헤리의과대와 영국 더럼대까지 추가로 가입했다. 교수, 교사부터 NGO활동가까지 다양한 직업, 전공자분들이 56분 활동 중인데 개설해 놓고도 얼떨떨하면서 감사한 부분이다. 학습은 2주에 한번씩 화상회의로, 리더인 필자가 실습을 일부 진행하고 구성원들이 번갈아 가며 본인의 연구나 활동을 발표 공유하는 형태로 유지하고 있다.



아직은 배워나가는 시점이라 집단지성보다는 소정의 교육 내용을 함께 해보는 것이 주를 이루고 있다. 아쉽지만 참여 중인 전 구성원을 만족시키는 것은 필자의 능력 밖이다. 20여년 정도 데이터를 다뤄보니, 당신이 알베르트(아인슈타인)가 아니라면 이 분야 역시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2주에 한 번씩, 그것도 한 두시간 참여만으로 데이터 활용 능력이 단기 향상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조경학 전공자가 그 정도 시간만으로 생물 동정을 기가 막히게 할 수 있다고 가정해 본다면 공감이 갈 듯 하다.

필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나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며 느끼는 무형의 긍정적 자극과 그리고 일정 주기로 뭔가를 배워나가는 학습하는 습관, 학습력 그 자체에 있다. 나이가 들수록 ‘학습은 덜 하면서, 평가는 잘하는 나쁜 습관’을 늦추는 게 또 다른 목적이기도 하다. 모르는 것을 계속 배우다 보면 스스로 겸손함을 유지할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파크랩을 통해 나름 뜻깊은 학습 성과들이 나타나고 있다. 파크랩 중 일부 참여자들은 서로 독려하며 180시간의 교육과 평가를 거쳐 Google 데이터 분석 자격증을 취득했다. 뜻이 맞는 연구자들은 집단지성으로 자연공원의 관리 현황을 위성영상으로 분석했고, 유의한 결과는 논문으로 정리되어 터키에서 개최된 비대면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되었다. 참여 연구자들은 현재 학술지 논문 투고를 준비 중이다.

올해 파크랩은 집단지성으로 ‘(가칭) 국립공원 관리를 위한 GIS, AI 활용 실무교재’를 발간할 예정이다. 구성원이 각자 원고를 작성하고 서로 교정해가며 한 권의 책, 집단지성의 결과물을 만들어보고자 한다. 우리의 학습과 성장은 아직까지 현재 진행형이다.



이러한 지식공유와 집단지성은 모두 오픈소스 소프트웨어가 있기에 가능했다. 오픈소스 개발 커뮤니티야말로 집단지성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오픈소스 생태계에 기여하고자, 파크랩 구성원 두 분과 뜻을 모아 영국에서 개발한 모바일 현장조사 앱 Input의 한글화 작업을 마쳤다. 덕분에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도 현재 앱스토어에서 한글화된 앱을 바로 이용할 수 있다. 처음이다 보니 번역이 미숙한 부분이 있어 부끄럽지만 더 나은 버전을 기대하며 너그럽게 바라봐주면 감사하겠다.



가장 최근에는 파크랩 스터디 주제로 종 분포 모델링(SDM)을 다뤘다. 실습과정에서 필자는 미국 UC 버클리의 다니엘 퍼먼이라는 연구자가 공유한 오픈소스를 고쳐서 사용했다. 다니엘의 소스코드 수정본은 다시 한글로 된 내 블로그와 유튜브를 통해 재공유되었다. 필자는 뵌적은 없지만 그분의 기여에 고마워서 진심을 받아 감사 메일을 썼다. 이튿날 아침에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링크드인에서 나는 꽤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메일에 감동한 다니엘이 필자의 메일과 내용을 SNS에 공유해서 UC 버클리를 비롯한 데이터 사이언스 관계망에서 해당 정보가 알려지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다니엘 또한 본인의 주 전공이 아닌 종 분포 모델링 소스코드를 작성하기 위해 생물학 전공 교수님의 자문을 구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한국과 미국에 있는 우리를 연결해준 건 역시나 장벽 없는 지식 생태계에 있었다.


때때로 우월감의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을 만나기도 한다. 필자가 가급적 피하는 사람들이다. 우월의 착각은 지식의 죽음을 불러온다. 지식의 죽음은 소멸이 아닌 지식의 고립(isolation)이다. 지식은 공유되어 여러 사람을 거쳐 다듬어질 때 비로소 완성되며, 그 안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나보다 우리가 똑똑하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여 알게 된다. 홀로 성장하던 시대는 끝났다. 나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며 함께 성장하는 길을 택했다면,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첫걸음은 어렵지 않다. 작은 것부터 시작해 보자.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_ 유병혁 과장  ·  국립공원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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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hyu@knp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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