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경지로 유토피아 실현, 윤선도의 부용동 정원

[조경명사특강]이재근 교수의 ‘한국의 별서’ 22회
라펜트l이재근 교수l기사입력2014-08-08




“내 벗이 몇인가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구나.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 하리.
구름 빛이 맑다하나 검기를 자주한다.
바람소리 맑다하나 그칠 적이 하노매라.
맑고도 그칠 뉘 없기는 물 뿐인가 하노라.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쉬이 지고 풀은 어이하여 푸르다가 누르는가.
아마도 변치 않음은 바위뿐인가 하노라.
더우면 꽃이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느냐?
구천(九泉)에 뿌리 곧은 줄을 그로 하여 아노라.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키며 속은 어이 비었느냐?
저렇게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을 다 비추니, 밤중의 광명이 너 만한 것 또 있느냐?
보고도 말 아니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


세연정 외원도(김영환,2014): 어부사시사의 주무대인 장사도, 황원포, 노화도를 비롯하여 옥소대, 보길초등학교 등 세연정 주변 외원의 모습을 진경산수화적 기법으로 그렸다.



보길도 세연정의 여름원경(강충세.2009)


부용동은 고산 윤선도(孤山 尹善道: 1587-1671)의 체취가 남아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별서이다. 주변 자연이 너무도 아름답고 스케일이 큰 정원이다. 전남 완도군 노화면 부용리 보길도에 있다. 보길도는 섬 둘레가 24km쯤 된다. 섬 가운데 제일 높은 봉은 격자봉(格紫峰: 430m)으로, 보길도로 진입하여 부용동에 들어가면 마치 속세와 격리된 별천지에 들어선 기분이 든다. 비록 바다 가운데의 섬이지만 보길도 땅의 기운이 맑고 청초하여 부용동에 들어서면 산 너머에 바다가 있는 줄을 잊게 되기 때문이다.


윤선도는 1587년(선조20년) 6월 22일 한양 연화방에서 태어났다. 그의 호는 고산(孤山) 또는 어초은사(漁樵隱士)이다. 그는 체격이 왜소하나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글을 좋아하여 경사백가(經史白家)에 능하였고, 의학, 음양지리에 정통하였으며 시조에 뛰어났다. 26세 때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1628년(42세)에는 별시, 초시에 등과하고 이조판서가 되었다. 그러나 집권파인 서인들의 압력으로 관직이 좌천되자 벼슬을 버리고 향리인 해남으로 돌아왔다.


1636년(인조14년) 병자호란이 일어난 이후 윤선도는 우연치 않게 보길도에서의 별서생활을 향유하게 되었다. 강화도가 함락되고 인조가 청 태종에게 항복했다는 비보를 들은 윤선도는 세상에의 뜻을 버리고 은둔생활을 결심하여 배를 띄워 제주도로 향했다. 그러나 가는 도중에 해안선이 수려하고 내륙의 공간이 깊숙하여 숨어 살기에 제격인 섬을 발견하고 들어갔으니, 그곳이 바로 보길도였다.


보길도 부용동정원 위치도(김영환.2014): 부용동은 격자봉을 중심으로 낙서재,곡수당,동천석실,세연정권역 전체가 하나로 어우러진 정원이요, 고산이 꿈꾸던 이상향의 낙원이다. 부용동에 영향을 미치는 주변섬들을 포함하여 위치도로 그렸다.


동백꽃 핀 보길도 세연정의 겨울(강충세.2009)


고산은 1637년 2월 보길도에 이르자마자 격자봉 아래쪽에 낙서재를 짓고 생활의 본거지로 삼으면서 섬 내부의 평지를 개간했다. 낙서재에서 볼 때 좌측에는 낭음계(朗吟溪), 미전(微田)과 석전(石田), 오른쪽으로는 하한대(夏寒臺)와 혁이대(爀以臺)가 있고 그 아래에는 학문하면서 수양할 수 있는 곡수당(曲水堂)을 지었다. 건너편으로 안산 역할을 하는 봉우리가 있는데 반쯤 핀 연꽃 같은 지세를 형성하고 있어 이 지역을 부용동(芙蓉洞)이라 이름지어 불렀다.



무민당터쪽에서 본 낙서재와 서재및 소은병



하연지쪽에서 본 곡수당 원경(강충세.2011)


낙서재 건너편의 산등성이에는 동천석실(洞天石室)을 짓고 못을 파서 휴식공간으로 삼았으며 우측으로 승룡대(昇龍臺)의 바위승경을 즐겼다. 부용동 원림 입구에는 계천이 흐르고 넓은 담이 있으므로 정자를 세워 세연정(洗然亭)이라 했다. 낭음계에서 발원한 맑은 계류는 3.5km쯤 흘러내려 바다에 이르는데, 세연정(洗然亭)에 이르면 아름다운 호소(湖沼)를 이룬다. 격자봉에서 북으로 뻗은 산세는 옥소대(玉所臺)를 이루어 세연정의 계담 위에 그림자를 거꾸로 비춘다.


고산 윤선도는 14년의 귀양살이와 19년의 은둔생활에도 불의와 권세 앞에 타협하지 아니하였으며 출세에 대한 미련도 가지지 않았다. 이곳에서 그는 오로지 학문과 수양, 휴식에 관심을 두어 천석(泉石)의 선경을 즐겼으며 어부사시사(漁夫四時詞)와 같은 시작(詩作)을 낳있다. 고산은 이곳에서 8년을 은일하며 지냈고 마지막 일생도 이곳에서 마쳤다.



격자봉에서 본 부용동 외원도(김영환.2014): 격자봉쪽에서 본 부용동 전체 외원및 영향권원의 모습을 진경산수화적 기법으로 그렸다.



세연정내부에서 본 외원차경(강충세.2009)


보길도의 조원유적은 크게 4개의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낙서재(樂書齋), 곡수당(曲水堂), 동천석실(洞天石室), 세연정(洗然亭) 지역이 바로 그것이다.


① 낙서재


고산의 거처지이며 생활의 중심지인 낙서재 공간은 뒤로는 소은병이 있고, 그 주위로는 수림이 우거져 있으며 앞은 훤히 트여서 부용동 일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1748년 보길도지를 쓴 윤위(尹偉:1725-1756)에 의하면, 보길도에 도착한 고산은 격자봉 밑에 낙서재를 초옥으로 짓고 살다가 잡목을 베어 거실(居室)을 만들었다. 낙서재는 삼간집이지만 남쪽으로 외침(外寢)을 짓고 사방으로 퇴를 달아 주변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였다. 고산은 이곳에 거처하면서 세상을 등지고 산다는 뜻을 담아 무민당(無憫堂)이라는 편액을 달았다. 이곳에 앉아 골짜기를 내려다보면 아름다운 주변의 모든 봉우리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었다.


낙서재 뒤편에 위치한 소은병은 한 변이 5.7m*9.7m로 약 16평 정도인데 4-5인이 앉을 만한 넓이이다. 높이가 2.5m의 바위 윗부분에는 장방형으로 홈이 파여 있어 물이 고이게 되어 있고 U형의 배수구를 파서 물이 흘러내리게 되어있다. 여기에 앉아 있으면 한 골짜기의 크고 작은 것부터 모든 것이 눈앞에 펼쳐진다. 고리처럼 두른 병풍의 지세와 소은병을 에워싼 장송(長松), 단풍나무, 잣나무들은 포근하게 마음의 안정감을 갖게 한다. 비록 엄동설한이라 하더라도 북쪽을 향해 앉아 있노라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가슴이 활짝 열리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낙서재 외원도(김영환.2014): 동천석실,승용대,하한대,조산,곡수당등 낙서재 주변 외원의 모습을 진경산수화적 기법으로 그렸다.



소은병과 서재 뒷편에서 본 외원


② 낭음계와 곡수당 공간


낭음계와 곡수당은 격자봉의 ‘계류 물소리를 구슬 구르는 소리’에 비유하여 이름붙인 듯하다. 낭음계의 동쪽 언덕에 자연사면을 이용한 남서방향의 곡수당(曲水堂)과 장방형지(長方形池)가 원형대로 남아있고 상당부분 정비를 한 상태이다.


보길도지(甫吉島誌)에 의하면 곡수당은 초당으로 된 한 칸의 건물인데 사방에 퇴를 달았다. 정자는 세연정보다 다소 작지만 섬돌과 초석은 정교함을 더했다. 초당 뒤에는 평대(平臺)를 만들고 삼면으로 담을 둘러 좌우에 작은 문을 두고 있다. 담 밑에 흐르는 물은 낙서재 우측 골짜기에서 작은 연못에 흘러내리게 했다. 이곳에 일삼교(日三橋)가 설치되어 있고 다리 밑으로는 곡수(曲水)가 흐른다. 초당 앞에는 반석위에 떨어지는 물이 깊지도 않고 넓지도 않으면서 아름다운 월하탄(月下灘)을 만들고 있다. 후면에는 두어층의 작은 계단을 만들어 꽃과 괴석을 심었으며, 동남쪽에는 방대(方臺)를 높이 축조하고 대위에 암석을 쌓아 가산(假山)을 만들었다. 산허리부분에는 구멍하나를 뚫어 석통(石筒)을 끼웠고, 홈통으로 물을 끌어들여 연못 속에 쏟게 하니 이것을 비래폭(飛來瀑)이라 했다.


곡수당 내원도(김영환.2014): 우측 상류계곡에서 흘러들어오는 물을 끌어들여 만든 상연지와 하연지, 일삼교와 월하탄, 비구(飛溝)등을 곡수당과 사당 건물과 함께 사실적으로 그렸다.



곡수당과 홍예다리로 복원된 일삼교


③ 동천석실(洞天石室) 공간


동천석실은 낙서재로부터 정북 쪽 약 1km거리 안산 중턱, 해발고 약 100m 지점에 위치해 있다. 주로 자연의 암석으로 이루어졌으며 암반위에 소옥(小屋)을 짓고 아래에는 지당과 석실을 축조하여 수경하고 있다. 기묘하고 괴이하게 생긴 자연암석이 다양하게 분포해 있고, 샘 주변에는 “석문(石門), 석제(石堤), 석정(石井), 석천(石泉), 석교(石橋), 석담(石潭)”등의 특성 있는 이름을 붙였다. 동천석실은 인공구조물 유적으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동천(洞天)이란 신선이 산다는 뜻으로 석실공간(石室空間)의 서쪽에는 암대와 석벽사이에 부등변 삼각형의 연못이 있고 수련이 자라고 있다. 그 남쪽에는 인접해서 “방지(方池)”가 축조되어 있다. 동쪽의 암벽 가까이 10개 석계단을 내려가면 “지하석실(地下石室)”이 나오는데 여름철 무더울 때 시원한 휴식처의 기능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동천석실의 공간면적은 약 700평 정도로 부용동 유적 중 가장 절승의 경관이며, 자연에다 인공을 가하여 조성한 선원(禪園) 중의 으뜸이라 할 수 있다. 고산은 이곳을 부용(芙蓉)제일의 절승이라 하였다. 고산은 이 위에 집을 짓고 수시로 찾아와 주변 골짜기와 격자봉 아래 낙서재 건물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을 감상하였다. 또 도르래를 설치하여 무민당에서 기를 달아 연락하기도 하고, 부식물을 공급받기도 하였다.


동천석실이 있는 안산(案山)의 동쪽 기슭에는 거대한 암석이 깎아내린 듯이 서있는데 그 위는 평평하여 수십 명이 앉을 수 있는 정도이다. 이를 승용대(昇龍臺)라고 하였으며 이 또한 경치가 수려한 동천석실 권역의 절승지라 할 수 있다.



동천석실 내원도(김영환.2014): 용두암,석담,희황교, 계단, 도르레등 동천석실 주변의 모습을 현재의 추정도로 그렸다.



동천석실에서 본 외원(강충세.2011)


④ 세연정 공간


세연정은 부용동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약 5000㎡ 정도의 방대한 연못정원이다. 세연정의 공간구성은 낭음계 계곡의 흘러내리는 물을 이용하기 위해 제방을 막은 남쪽의 자연 계담과 계담 북쪽에 조성한 인공적인 방지, 그리고 동쪽 평지 상에 축조한 2개의 누석단이 있는 세연정 등 3개의 부분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인공방지의 중앙에는 방형섬이 축조되어 있고 노송 한그루가 정자 앞에 있어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세연정은 계담과 방지를 동시에 바라 볼 수 있게 세연지 중앙에 위치해 있다. 세연지 중앙섬에 있는 대는 자연석 3단으로 축조하였고 인공방지 속의 섬도 자연석으로 축조한 방형이다. 대가 있는 남북의 섬들에는 송림과 동백나무가 서있고 못가에는 대나무가, 연못 주변에는 느티나무, 노송, 동백, 버들, 단풍나무 등이 청결한 수석과 어울려 자연스러운 공간을 이루고 있다.



보길도 세연정의 여름근경



세연정 내원도(김영환.2014)


이곳은 주변의 자연, 그 중에서도 계곡의 물을 잘 이용하여 경관처리를 수려하게 한 점이 특징이다. 자연성을 고려해서 인공부분을 축소했고 필요한 부분에는 인공적 요소를 가미하여 신선정원을 꾸미려 했다.


부용동 정원. 부용동은 한 개소의 점의 공간이 아닌 여러 개소의 면의 공간으로 이루어진 대규모의 별서공간이다. 낙서재(樂書齋)와 곡수당(曲水堂) 지역이 기거와 학문하는 공간이라면 동천석실(洞天石室)은 속세를 떠난 선인의 관조 공간이며, 세연정(洗然亭)은 자연 속에 동화되어 유희하는 위락의 공간이다.


이곳은 발전 방향에 있어 느림의 미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최근 주변에 보길도를 소개하는 관광안내 전시관이 생기더니, 고산문학관도 생겨나고 또 다른 관광시설들도 늘어날 채비를 하는 중이다. 요즘은 보길대교가 생겨서 접근성도 매우 높아졌다.



세연정과 판석보


이제 조금 천천히 갔으면 싶다. 더 이상의 편리함과 인위적인 개발은 지양되어야 한다. 좀 더 천천히 생각하고 천천히 개발하며, 조금만 느리게 가자. 그리하여 이 지역이 고산이 펼친 순수한 이상세계로서 국민들 마음속에 오랫동안 기억되고 활용되는 복합문화유산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연재필자 _ 이재근 교수  ·  상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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