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꽃 흐드러진 배롱나무들의 향연, 담양 명옥헌원림(鳴玉軒園林)

[조경명사특강]이재근 교수의 ‘한국의 별서’ 23회
라펜트l기사입력2014-08-15


“吾黨有吳君明仲本寒介也 守志丘園無求於世
遷於後山支麓築數間 小屋後有一道寒泉淨淨
侔籬以入其聲 如玉碎珠迸令人聽
之不覺堠檅之消滌而淸凉之來襲也 “

“우리들 무리 중에 오명중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분은 본래 가난하지만 깨끗이 사는 사람이었다. 자기의 곧은 뜻을 지키기 위해서 시골에 묻혀 살며 세상에서 출세하려는 욕심 없이 후산 기슭으로 거처를 옮겨서 몇 간 되지 않는 조그마한 집을 지었다. 그 집 뒤에는 한줄기 찬 샘물이 있고 콸콸 물내려오는 소리가 울타리를 따라 힘차게 들려온다. 그것은 마치 옥이 부서지고 구슬이 흩어지는 소리와 같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러한 소리를 듣고도 더러운 것을 씻어내지 못한다. 맑고 서늘함이 내 몸에 젖어 들어와도 사물의 올바른 이치를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 정홍명(畸翁 弘溟:1582-1674)의 명옥헌기_중에서-


명옥헌의 봄원경


명옥헌의 여름원경2(강충세.2009)

명옥헌은 인조 때 문신 장계 오이정(藏溪 吳以井, 일명 明仲: 1619-1655)의 별서이다. 명옥헌의 역사는 명곡 오희도(明谷 吳希道: 1583-1623)가 어머니를 따라 이곳 후산마을에 기거하면서 시작되었다. 후산마을은 담양군 고서면 산덕리에 위치한다. 오희도는 1602년 생원을 선발하는 사마시(司馬試)l를 패스하고 1614년 (광해군6년)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광해군 치하(1608-1622)의 어지러운 세상일을 개탄하며 “망재(忘齊)”라는 조그마한 집을 짓고 학문을 닦았으며, 장계골(藏溪谷)의 자연을 벗하며 살았다. 그는 효성도 지극하여 어머니를 극진히 모셨으며, 모친상을 당한 후에도 10 여년 동안 후산리에서 지내며 사람들에게 많은 덕을 베풀었다고 전한다.


명옥헌의 겨울(강충세.2010)


명옥헌의 본제(망재)터와 은행나무

오희도의 넷째 아들인 장계 오이정(藏溪 吳以井:일명 明仲 1619-1655)은 1639년 사마양과(司馬兩科)에 합격하였고 1650년 성균관에 들어갔으나 사정이 여의치 못하자 벼슬할 뜻을 버리고 고향에 내려왔다. 귀향 후 그는 아버지 오희도가 자연을 벗 삼아 즐기던 도장고을에 터를 잡아 정자를 지었고, 계류를 따라 위 아래로 연못을 파고 꽃나무를 심어 원림을 구성하였다. 그는 자연 속에서 뜻을 지키며 살 것을 결심하여 건물의 당호를 명옥헌(鳴玉軒)이라 이름 짓고 못다한 학문에 정진하였다. 


명옥헌의 겨울근경(강충세.2010)


명옥헌의 봄근경

명옥헌 공간의 구성은 진입부-연못주변-누각주변-상지위의 공간 등으로 구분된다. 정자건물은 호봉산(300m) 북서쪽 기슭의 소계류가에 위치하며, 정면3칸 측면2칸의 팔각지붕으로 중앙 뒷편에 방이 하나있고 좌우 전면에는 마루를 설치하여 사방이 탁 트이게 하였다. 그리고 전면의 연못과 주위경관을 바라보며 계류에 흐르는 물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정자의 자리를 잡았다. 이 건물에는 또한 명옥헌(鳴玉軒), 장계정(藏溪亭), 삼고(三顧)란 현판(懸板)이 걸려 있어 그 의미를 더욱 깊게 한다. 명옥헌 건물 뒤편에는 제단부(祭壇部)가 있는데 1825년에 창건했다가 1868년에 헐어버린 도장사(道藏祠)의 옛 터로, 이 지방출신의 양산보(梁山甫), 오희도(吳希道), 김인후, 정철 등의 제현을 제사지내던 곳이다.

연못은 20x40m의 장방형으로 쌓아놓은 둥근섬이 있어 일종의 방지중도형(方池中島型)을 이루었다. 여기에는 자연경관과 함께 주위의 수목과 정자가 연못에 투영되어 못 속에 담긴 아름다운 영경(影景)을 볼 수 있다. 못 주변의 언덕 위에는 배롱나무 노거수들이 다량 심어져 있어 초여름에서 가을까지 분홍빛 꽃바다를 이룬다. 못의 서남쪽 원로가에는 노송이 열식되어 있는데, 나무 사이로 과수원과 소택지(小澤池), 멀리 무등산이 차경(借景)되어 보인다.


명옥헌 평면도


명옥헌 내원도(김영환.2014)

명옥헌의 동남쪽 비탈면에 조성된 상지는 6x11m 규모의 방지로 계류에 인접되어 있다. 못 안에는 높이 1.3m, 지름 4.7m의 바위가 수중암도(水中岩島)를 이루고 있는데 호봉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받아 섬을 돌게 하고 계류로 떨어지게 한 후 다시 하류로 진입시키는 구조이다. 그동안 흙이 쌓여 연못으로 들어오는 물길이 막혔던 것을 2013년 담양군이 쇄굴하고 정비하여 그 기능을 일부 회복시켰다.


명옥헌의 상지


명옥헌 건물내부에서 본 외원

상지연못의 북쪽과 서쪽 언덕에 배롱나무가 심겨져 있었으나 태풍에 몇 주가 고사하였다. 계류 위쪽으로 우측 바위에는 “명옥헌 계축(鳴玉軒 癸丑)” 이라는 글씨가 각자되어 있는데 우암 송시열(尤岩 宋時烈: 1607-1689)의 글씨로 전해지고 있다. 이는 “이곳 계류에 흐르는 물소리가 마치 구슬이 구르고 깨어지는 소리와 같이 들린다”는 뜻이다.

명옥헌의 경관은 1) 진입하면서 나타나는 경관, 2) 보행하면서 감지되는 경관, 3) 정자에 서서 느껴지는 경관으로 구분된다. 또한 명옥헌에서는 자연계류를 이용하여 상하로 방지형태의 지원(池園)을 꾸민 점, 계류의 물소리를 들으며 연못의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볼 수 있도록 정자를 지은 점, 송림과 배롱나무를 대단위로 배식한 조원기법 등이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도연명의 무릉도원(武陵桃源)과 불로장생의 신선세계(神仙世界)를 연출하려는 작정자의 의도가 숨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명옥헌의 여름 연못풍경


명옥헌의 여름 원경2(강충세.2010)

명옥헌(鳴玉軒). 이곳은 생각만 하여도 기분이 좋고 가슴을 설레게 하는 별서이다. 이곳을 가려면 담양읍내에서 고서면으로 가는 지방도를 따라 가야 한다. 지방도에서 마을로 1km 정도 들어가다 보면 좌측으로 후산부락의 마을숲이 나타난다. 이 마을숲은 소택지와 후산마을의 입구를 가로막아줌으로써 마을의 좋은 기운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외부의 강한 바람을 막아주는 수구막이 역할을 한다.


명옥헌 외원도(김영환.2014)


명옥헌 위치도

마을로 조금 들어가면 좌측으로 노거수인 은행나무와 명옥헌의 본제인 망재터가 있고 우측으로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오이정의 별서인 명옥헌이 있다. 명옥헌에 가려면 마을 끝 쪽에서 나지막한 언덕을 넘어야 한다. 예전에는 이 언덕등성에 대나무 숲이 펼쳐져 있어 경관상으로 운치도 있었고 명옥헌을 마을과 격리해주는 역할을 담당했었다. 이 언덕을 오르면 비로소 펼쳐지는 별천지의 세상, 그 곳이 바로 명옥헌 원림이다.

이곳은 후산마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안동네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경관을 가진다. 봄이면 온갖 산과 들, 나무마다 연두색 세상이 펼쳐진다. 여름에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배롱나무 꽃이 장관을 이룬다. 특히 6월에서 8월까지 피는 배롱나무 꽃의 행렬은 환상 그 자체이다. 배롱나무 꽃은 가을로 접어들면서도 못내 아쉬운지 9월까지도 만개해 있곤 하다. 그리고 이어서 전개되는 가을 단풍의 색깔 또한 곱기 이를 데 없다. 1월에서 2월까지 겨울의 명옥헌 정자와 연못, 그리고 소나무와 배롱나무 위에 눈이 내리면 그 경관이 마치 동화에 나오는 설국을 방불케 한다.

하지만 사실 명옥헌은 계절에 관계없이 언제나 그립고 가보고 싶은 곳이다. 나는 전국의 많은 별서 중에서도 명옥헌을 각별히 좋아한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경승지로 자신 있게 추천도 하며, 학생들을 이끌고 일 년에 몇 번이고 찾아가곤 한다.


명옥헌의 여름원경1(강충세. 2009)


명옥헌의 겨울원경2(강충세.2010)

이렇듯 나는 명옥헌을 너무 사랑함으로 지속적으로 아름답게 보전하기 위해서 몇 가지 사항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부족한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소택지를 시설해야 한다. 현재는 물이 부족하여 계류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정원에서 계류 상류 쪽 제방 안쪽에 소택지를 만들어 혹서기에도 물이 흘러내릴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언제나 경쾌하고 시원한 물이 흐르는 정원, 물 흐르는 소리가 옥구슬 굴러가듯이 넘치는 역동적인 정원이 되게 해야 한다.

둘째, 정원 좌측 공간에 소나무와 배롱나무를 추가 보식해야 한다. 정원 좌측의 소로길에는 소나무를 열식하여 경계를 이루게 하고 그 사이 평탄지에는 배롱나무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이곳은 어차피 배롱나무와 소나무가 주제가 될 수밖에 없는 독특한 정원이다. 그러므로 두 나무의 보식을 통해 명옥헌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도록 해야 한다.


명옥헌의 겨울원경(강충세.2010)

셋째, 산림경관을 개선하기 위하여 주변 사유지를 조금 더 구입해야 한다. 과수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부지는 물론 주변 사유림들이 영농의 목적으로 많이 훼손되었다. 과일나무를 받쳐주고 있는 지주목과 과수열매의 봉지 싸기 등의 경관은 순수할 수는 있지만 별서경관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별서환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차원에서 주변 사유지를 국가에서 사들여야 한다. 옛날 오희도나 그의 아들 오이정이 살았던 당시의 산림과 들녘을 회복시킨다면 이곳의 장소적 의미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누정원림의 고장 담양의 가치도 배가되고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는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아무쪼록 명옥헌의 종합정비계획의 수립과 실천을 통해 향후 명옥헌의 합리적인 보전 복원과 원림의 확대, 주변 산림경관의 아름다운 회복을 기대해본다.


연재필자 _ 이재근 교수  ·  상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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