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2016년, 대한민국 공공디자인이 불편하다

진승범 논설위원(이우환경디자인(주) 대표)
라펜트l진승범 대표이사l기사입력2016-04-12
2016년, 대한민국 공공디자인이 불편하다



글_진승범 대표(이우환경디자인(주))

지난 2월 3일 제정·공포되어 8월 4일 시행을 앞두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공공디자인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 있다. 이 법은 ‘공공디자인의 문화적 공공성과 심미성 향상에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국가 및 지역 정체성과 품격을 제고하고 국민의 문화향유권을 증대하는 데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제정되었음을 법 제1조에서 밝히고 있다. 또한 국가, 지방자치단체, 지방공기업 및 공공기관이 일반 공중을 위하여 조성·제작·설치·운영 또는 관리하는 공공시설물을 디자인하는 행위 및 그 결과물을 “공공디자인”이라 정의 내리고, 일반 공중이 이용하게 될 대중교통 정류소, 자전거 보관대 등 대중교통시설물을 비롯하여 보행안전시설물(차량 진입 방지용 말뚝, 펜스 등), 편의시설물(벤치, 가로 판매대, 파고라 등), 공급시설물(맨홀, 소화전, 신호등 제어함 등), 녹지시설물(가로수 보호대, 가로 화분대, 분수대 등), 안내시설물(안내표지판, 현수막 게시대, 지정벽보판 등) 등을 “공공시설물”로 규정하고 있다. 나아가서 이러한 공공시설물을 구현하기 위한 기획·조사·분석·자문·설계 및 제작·설치·관리 등의 행위의 전부 또는 일부를 대통령과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인정하는 대학, 연구기관, 관련 단체 및 공공디자인전문회사에 용역으로 발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법률의 출발은 2015년 6월 16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새누리당 소속 이종훈의원이 대표발의 한 「공공디자인문화 진흥법」이다. 당시 이 발의안은 디자인업계에 대한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떠밀리다시피 하여 졸속으로 법안이 만들어져 체계적 정합성 없이 기존 법률과 충돌되거나 중복되는 이중규제 법률안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필자가 소속되어 있는 (사)한국조경사회에서도 2015년 8월 5일 국회에 공문을 통해 이 법안에서 규정하고 있는 공공시설물 중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및 「경관법」 등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시설물과 중복되는 것이 있음 등의 사유를 적시하며 법안의 제정을 강력히 반대함을 밝힌 바 있다. 또한 건축분야의 공공디자인 영역의 개념 불필요 의견은 물론 일부 디자인분야에서도 「산업디자인진흥법」 상의 정의와 특별히 차이점이 없음을 이유로 반대의견이 대두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의 후 무엇에라도 쫓기듯 공청회마저 생략한 채 그 해 11월 24일 국회 제9차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상정되었고, 관계부처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타 법률과 중복될 우려가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수석전문위원의 검토의견이 있자 당초 원안에 대한 수정법안으로서 「공공디자인의 진흥에 관한 법률」로 바뀌어 2015년 12월 31일 국회 본회의 가결을 거쳐, 2016년 2월 3일 공포 후 8월 4일 시행을 위한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입법예고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해묵은 이론을 다시 꺼내야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디자인이란 주어진 목적(目的)을 조형적(造形的)으로 실체화(實體化) 하는 것’이 사전적 정의다. 합목적성(合目的性)에 기반을 둔 조형·의장(意匠) 활동이 곧 디자인인 것이다. 목적에 부합하기 위한 제1의 덕목은 ‘기능(機能)’이다. 기능을 무시한 의장은 결코 좋은 디자인이 될 수 없다. 이러한 교과서의 기초지식 조차도 무시하고 만들어진 법안이 허점과 오류로 점철되어 있음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이 법에서 장황하게 자기들의 소관분야라고 정의 내리고 있는 대부분의 공공시설물은 이미 조경을 비롯한 건축, 경관, 도로, 교통, 전기, 통신 및 소방분야 등에서 다루고 있는 각자 고유의 기능을 가진 시설물들이 대부분이다. 「건설산업기본법」 상 전문건설업의 한 분야인 조경시설물설치공사업의 사업영역에 야외의자(벤치)·파고라·분수대 등의 설치공사가 명시되어 있으며, 통계청 발표 ‘한국표준직업분류’에서도 벤치·울타리·분수 등의 디자인을 개발하고 제도작성을 준비하고 감독하는 것을 조경기술자의 주요업무 중 하나로 명시하고 있다. 이들 시설물의 기능을 가장 잘 아는 전문분야가 바로 조경임을 해당 부처에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펜스, 맨홀, 소화전, 신호등 제어함이 고유의 기능보다 의장에 더 치중하여 만들어지고 설치될 수 있겠는가? 더욱이 이들 시설물은 그 시설물이 설치되는 공간의 장소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환경시설물이다. 도시공원을 설계하다보면 공원시설로서 자전거 보관대, 차량 진입 방지용 말뚝(볼라드), 펜스, 벤치, 파고라, 가로수 보호대, 가로 화분대, 분수대, 안내표지판 등의 도입이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이 설계는 조경설계사무소와 공공디자인전문회사 중 어디에서 해야 하는가? 도시공원 중 소위 이 법에서 말하는 공공시설물은 공공디자인전문회사가, 그 밖의 부분은 조경이 설계하는 웃지 못 할 촌극을 예상함은 기우이길 바란다.

법안의 제정을 막지 못 한 뒤늦은 후회의 넋두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으나 ‘공공’과 ‘디자인’은 각각 관련 있는 내용을 관련법에 분산 적용할 일이지 별도로 떼어 법안으로 정할 사안은 결코 아니다.

법에도 지켜야 할 매너가 있다. 그래서 「공공디자인의 진흥에 관한 법률」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_ 진승범 대표이사  ·  이우환경디자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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