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도시숲의 법제화 추진 과정을 바라보며

글_진승범 논설위원(이우환경디자인(주) 대표)
라펜트l진승범 대표이사l기사입력2019-12-18
도시숲의 법제화 추진 과정을 바라보며



글_진승범 대표(이우환경디자인(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도시숲 등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이하 ‘도시숲법’)’이 국회 소관 상임위(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통과하였으나 결국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제동이 걸려 올 연말 통과가 어려워질 전망이다. 내년은 아시다시피 4월 총선이 있어 금번 20대 국회 회기내 통과 또한 불투명한 실정이다. 조경계로서는 우선 급한 불은 끈 셈이다. 도시숲법의 불합리성을 각계에 알리고 이 법 제정의 저지를 위해 온힘을 다하여 성과를 일궈낸 한국조경협회(회장 노환기)와 국토교통부 녹색도시과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법률의 제정(개정)을 통해 산림의 영역확장을 꾀하는 산림청의 놀라운 추진력과 집요함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으면서도 8년 전 국회통과가 무산되었던 법안이 기사회생(?)하는 데에는 조경계의 분열도 한 몫 하였음에 영 뒷맛이 개운치 않다. 나아가서 도시숲법의 제정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조경인을 조경의 변화와 발전을 가로막는 수구세력쯤으로 여기거나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공원녹지법)’이 별 볼일 없으니 도시숲법에 힘을 싣자는 주장이 공공연하게 들리고 있음에 우려와 통탄을 금할 수 없다.

이 시점에서 팩트를 논하려면 2011년 국회 김효석 의원이 대표발의했던 ‘도시숲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실제로 필자가 갖고 있는 자료에 의하면 현재의 도시숲법과 당시의 법안 내용이 도시숲, 생활숲, 학교숲, 가로수(숲) 등의 정의 및 도시숲지원센터의 지정과 운영 등 주요부분에서 거의 일치함을 볼 수 있다. 당시 조경계와의 사전협의도 전혀 없이 기습적으로 발의된 법안에 대하여 조경계는 법체계의 중복에 다른 혼란 등을 주요 이유로 이 법이 제정되어서는 아니 됨을 주장하였고 법제정 반대 토론회 개최, 국회 항의방문 및 양홍모 당시 한국조경학회장 겸 환경조경발전재단 이사장의 상임위 긴급발언 등의 노력으로 법안 통과를 무산시킨 바 있다. 법제정 반대 논리의 증거로 2011년 11월 한국조경신문에 실린 당시 조경학회 수석부회장으로 후에 조경학회장과 환경조경발전재단 이사장을 역임한 김한배 서울시립대 교수의 글을 일부 소개한다.


(전략) 숲은 아름답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숲을 싫어할 리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숲’이라는 말의 낭만적 환타지를 이용해 국민 대중을 현혹시키는 것이다. (중략) 자연환경에 대한 인류문명의 역사는 야생의 숲에서 길들여진 정원으로, 개인의 정원에서 시민대중의 공원으로 진보해 온 역사이다. 특히 공원녹지는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도래에 따라 발명된 도시의 기반시설로서 도시민의 다양한 여가공간과 생태적 환경, 풍요로운 경관을 제공해 온 계획된 자연환경이다. 이 공원 속에는 그 구성요소로서 조성된 숲도 있고 들도 있고 물도 있을 수 있지만, 임업의 기술과 논리에 의해 조성된 숲이 아닌, 조경의 미학적, 기능적, 생태적 논리에 의해 조성된 숲인 것이다. ‘숲’은 ‘들’과 ‘내’ 등 자연현상의 한 분류용어이지 제도적 용어도 아니고, 도시계획상의 공간시설의 분류도 아니다. 즉, 환경계획의 용어가 아닌 도시숲 조성을 위한 법률이라는 명칭은 언어논리상 허구성이 현저하다. 특히, 공원녹지는 시대가 진전될수록 창의적 도시공간이라는 문화예술적 접근과 공동체 참여의 장이라는 사회환경적 접근이 더욱 요구되는 등, 다양하고도 실험적인 도시환경으로 진화해가고 있다. 아무리 ‘숲’의 이미지가 친환경적이고 낭만적이라 할지라도 접근의 기본방식이 ‘산림’의 임업적 사고에 기반하고 있다면 이러한 진보적 시대정신을 충족시키기는 어렵다.(후략)

독일의 문학가이며 철학가인 프리드리히 폰 실러(Friedrich von Schiller, 1759~1805)는 “지식인은 대중이 듣고 싶어 하는 얘기가 아니라, 들어야 할 얘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실러의 말에 가장 부합하는 지식인의 글을 묻는다면 주저 없이 위의 인용된 글을 꼽을 것이다.

이제 현재의 도시숲법 추진과정을 보자. 법안 발의는 2019년 7월 30일 김현권 의원의 대표발의로 상정되었지만 산림청의 준비는 이보다 앞선다. 2018년 법안의 제정을 위해 법무법인에 용역을 발주하고 산림청 담당부서와 학계, 조경계, 시민단체, 지자체 등이 함께하는 가칭 도시숲관리법 제정 추진협의회를 구성하게 된다. 필자도 추진협의위원으로 참여한 이 협의체의 구성 취지는 산림청의 표현 그대로 옮기면 ‘도시숲관리법 법안체계와 조문 구성 용역과 관련, 분야별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법안 주요 내용 및 쟁점 협의를 위’함이다. 얼마나 근사하고 합리적인 협의체 구성 취지인가? 실제로 이 협의회는 2018년 말까지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회의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법안발의 전에 조경계와 협의한 법안이 반대의견에 부딪히는 것은 어떤 연유일까? 

팩트는 이렇다. 여섯 차례에 걸친 회의에서 거론되고 논의되었던 ‘주요 내용 및 쟁점‘이 거의 아니 전혀 수정되거나 보완되지 않은 채 국회 발의가 일어난 것이다. 기정 법의 개정이든 신법의 제정이든 특정 분야의 조성과 관리를 위하여서는 새로 규정하려는 분야에 대해 기존의 다른 법률과 상충하는지 아닌지를 따져보는 것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이다. 즉, 법에도 에티켓과 매너가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법에서 규정하려는 분야의 용어정의 문항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실제 법조문의 구성에서도 제1조 목적 다음의 제2조에서 정의를 내리고 있음을 본다. 법의 에티켓이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산림청이 침범하려하고 일부 조경인이 마땅찮아 하는 공원녹지법 제2조에 있는 ‘도시녹화’의 정의를 보면 ‘식생, 물, 토양 등 자연친화적인 환경이 부족한 도시지역의 공간에 식생을 조성하는 것’이라 하며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른 ‘산림’은 제외함을 명확히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법의 매너 사례 한 가지. 조경계의 숙원이던 조경진흥법 제정 당시의 일이다. 당초 국회에 발의된 법안에는 제13조(조경박람회 등의 개최 및 지원)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로 하여금 조경 관련 박람회(전시회)는 물론 정원 관련 박람회(전시회) 등을 직접 개최하거나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있었으나 부처간 의견 수렴과정에서 정원은 산림청의 업무분야이니 국토부 소관의 조경진흥법에서는 삭제하라는 산림청의 주장에 의해 정원 관련 조항은 단 한 줄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기존 법에 관련 내용이 있으니 신법에서는 제외하라는 주장을 불과 몇 년전 했던 그들이 이제 입장이 바뀌자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산림청이 하면 로맨스요, 조경이 하면 불륜인가? 이런 측면에서 보면 도시숲법상의 도시숲의 정의는 여러 문제점을 지니고 있으니 도시숲의 정의를 제대로(올바르게) 규정하여 추진함이 바람직함을 필자는 회의 내내(1년 동안) 주장하였으나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주요 내용 및 쟁점을 협의’하겠다며 만들어진 협의체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렇다면 도시숲의 정의를 한 번 들여다보자. 현재 발의된 도시숲법에서 도시숲의 정의는 ‘도시에서 국민의 보건·휴양·정서함양 및 체험활동 등을 위하여 조성, 관리하는 산림 및 수목을 말하여 면지역과 자연공원법에 따른 공원구역은 제외한다’고 되어있다. 이는 ‘도시지역에서 도시자연경관을 보호하고 시민의 건강·휴양 및 정서생활을 향상시키는데 이바지하기 위하여 설치 또는 지정’되는 공원녹지법 제2조 ‘도시공원’의 정의와 거의 일치하지 않은가? 따라서 이는 올바르고 적확한 도시숲의 정의가 아니다. 법체계상으로 보아도 타법의 규정에 있는 자연공원을 제외하였다면 도시공원 또한 제외하는 것이 법질서의 혼란을 막을 수 있다. 이 정의대로라면 서울 강북지역의 도시민들에게 매우 훌륭한 도시의 숲 역할을 해주고 있는 북한산 국립공원은 도시숲이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는 아이러니를 어찌할 것인가?

도시숲의 정의에서 공원녹지법상 도시공원을 제외하자는 필자의 주장에 산림청은 곧 닥칠 도시공원일몰제를 한 핑계로 들며 받아들이지 않았고, 일부 조경인들 조차 그간의 공원녹지법이 시원찮게 작동되었으니 도시숲에 힘을 실어 공원을 보자는 의견을 내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단언컨대 작금의 도시숲법은 법제화가 된다 해도 도시공원일몰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될 수 없다. 도시공원일몰제의 근본원인은 공원 사유지에 대한 보상이 제때에 이루어지지 않아 발생한 문제인데 도시공원을 비롯한 도시계획시설의 토지 매수를 위한 행위에는 단돈 1원도 집행할 수 없는 도시숲 예산으로 어떻게 도시공원을 매입하여 일몰제를 막겠다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국민을 위해 공원녹지법보다 도시숲법이 우선이라는 논리 또한 법체계의 근간과 질서를 흔드는 위험천만한 생각이다. 기존 법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 법을 보완하고 법 집행의 요구를 지속적으로 하여 효율적인 법률이 되도록 모두가 노력할 일이지 그 법을 무력화시키는 다른 법을 또 만드는 행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법이 마음에 안 든다고 비슷한 법을 자꾸 만들어 작동시킨다면 국가의 법질서는 어떻게 되는가? 무법천지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또 하나의 팩트. 지금의 도시숲법에 반대의견을 표하는 조경인의 소리는 도시숲의 법제화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님을 명확히 하고 싶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도시 평균기온의 급진적인 상승, 날로 심각해지는 미세먼지의 피해 등 2011년 도시숲법 상정 당시와는 예상치 못한 기상 및 기후 변화(악화) 문제에 직면해 있는 우리에게 도시의 숲을 잘 만들고 가꾸어서 시민에게 제공해야 하는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음을 볼 때 도시숲의 법제화는 필요하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런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도시숲의 기능, 역할, 적정 규모 등을 명확히 해줄 올바른 정의를 내리는 작업이 학술적, 제도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이런 주장마저 치졸한 밥그릇 싸움으로 몰고 가는 분위기가 개탄스럽다.

산림청에 호소한다.
지금의 도시숲법은 진정한 도시숲을 위한 법이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산림자원, 조경, 도시환경문제 등 전문가와 머리를 맞대고 제대로 된 도시숲의 정의를 구명하는 일에 나서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그래야 도시숲이 혼란 없이 바로 설수 있다.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도시숲의 적정규모와 조성기법은 무엇인가? 외곽의 찬 공기를 도심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바람길숲은 어디에 어떻게 조성해야 하는가? 법제화보다 앞선 문제들이 부지기수다. 도시숲 사업의 이름으로 옥상녹화에 ‘옥상숲’, 벽면녹화에 ‘입체숲’이라는 웃지 못 할 황당한 이름붙이기가 일선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보고 있지 않은가? 진정으로 도시공원일몰제에 대비한다면 2020년 7월 이후 불가피하게 도시공원에서 해제될 수많은 도시 산림과 녹지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이에 대한 내용을 도시숲법에 담으라. 애꿎은 도시공원만 쳐다보지 말고. 이것이 진정한 산림과 조경의 파트너십이다. 

분열을 조장하는 일부 조경계에 묻는다.
도시숲의 법제화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법과 상충되지 않는 올바른 법을 추진하자는 주장이 조경의 변화와 미래지향을 저해하는 수구적 발상인가?
도시숲의 올바른 정의만 확립된다면 그 업의 설계, 시공, 감리를 누가 하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전혀 아니다. 산림이든 조경이든 잘 할 수 있는 곳이 하는 것이 국민을 위해 좋은 일이다.

마지막으로 8년 전의 일기를 꺼내듯 지나간 자료를 뒤적이다 발견한 빛바랜 사진 한 장으로 글의 마무리를 대신한다(화질이 매우 좋지 않음을 양해하시길).
이 사진속의 인물들이 조경의 발전을 가로막는 수구세력인가? 적폐세력인가?



PS_녹색시론의 마지막 논설이다. 그간 천학비재(淺學菲才)한 필자의 글을 인내심을 갖고 읽어주신 독자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모두 강건하시고 안녕하시길….
_ 진승범 대표이사  ·  이우환경디자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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