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노벨상을 받은 정원사를 아십니까? - 3

김태경 논설위원(강릉원주대 교수)
라펜트l김태경 교수l기사입력2018-09-12
노벨상을 받은 정원사를 아십니까? - 3


글_김태경 논설위원(강릉원주대 교수)

 

헤세의 시간은 크게 둘로 나뉘어 있던 것으로 보인다. 잠에서 깨어 햇빛이 비치는 테라스로 나와 연장을 들고 정원을 헤집고 다니다가 그 해의 열기가 누그러져 피로를 느끼는 시간이 되면 집안의 그늘 속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찾아온 어둠은 그의 집필 공간이 되고 그 하루는 온전한 헤세의 시간이 된다. 집필을 위한 실내의 공간을 빼면 대부분의 삶은 정원을 일구는 행위로 가득하다. 그 자신이 생각했듯이 정원이 관찰과 그림의 대상에서 경작과 재배를 통한 행복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노벨문학상이라는 결실을 맺게 해주었던 실내에서의 작업이 과연 정원에서의 활동과 나뉘어진 별개의 행위였을까? <유리알 유희>라는 제목을 생각해낸 그는 참 멋진 착상이라고 자평을 하면서 그 작품의 시작을 기억해낸다. 평소에 불을 지펴 쓸모없는 것을 태우기를 좋아했던 그가 재가 된 흙을 체에 흔들며 흥얼거리다 생각한 이름이 모차르트였다고 한다. 결국 최고의 상을 수상한 그 작품의 골격은 음악이었고 그 기초는 정원에서 이루어진 명상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음악을 들으며 지난날의 사람들과 미래의 사람들을 떠올린다. 현자와 시인, 탐구가와 예술가가 한마음으로 수백 개의 성문을 지닌 웅장한 정신의 사원을 세우는 것을 본다. 나중에 언젠가는 나는 그것을 글로 묘사해야겠다.

거장들은 늘 그런 것인가? 헤세 역시 시간이 흐를수록 시력이 나빠져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눈 주위에서 일어나는 경련과 신경통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눈을 쓰는 일을 줄여야 했고, 틈틈이 그림을 그리는 행위도 어느정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도 눈을 써야 하는 일이었으니 점차 피로감이 커져갈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있어 정원은 먹거리를 생산하는 공간을 넘어 치유의 공간이었다. 특히 눈과 머리에 통증이 심할 때에는 신체적 리듬을 바꿈으로써 긴장이 완화됨을 알고는 정원으로 나가 일거리를 찾거나 숯을 굽는 일을 했다고 한다. 이렇듯 일상을 뛰어넘어 자신의 정신력을 키우고 신체적 치유의 공간이 되었던 정원에서의 하루에 대해 일기장을 들춰보듯 재구성해보면 어떨까?


아침 7시 어제는 죽은 복숭아나무를 처리했더니 몸이 조금 피곤했는지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얼마전에 생각해낸 주제를 가지고 늦은 시간까지 긁적이느라 눈이 아팠다. 그래도 늘 해왔던 것처럼 테라스로 나와 상쾌하게 햇볕을 받으니 기분이 상쾌해진다. 난간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은 햇빛이 무화과나무에 그늘을 드리운다. 어제 일을 마치고 난간 위에 두었던 호미와 바구니를 들고 앞뜰로 나가 잡초를 캔다. 이제는 제법 꽃들이 제모습을 갖추고 있다. 패튜니아, 붉은오랑캐꽃, 재스민 등이 만발해있다. 어디선가 날라와 제멋대로 피어난 클로버는 옆에 있는 것들과 친구처럼 보여 그냥 놔두기로 한다. 정원도 그렇지만 집주변을 더 깨끗하게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몇 차례의 비질을 하고 나니 출출하다. 눈의 통증도 많이 가라앉았다. 아침을 먹자.


아침 8시 그간 수확하여 저장해두었던 완두콩과 강낭콩 그리고 텃밭에서 자라난 양배추와 당근, 파슬리, 토마토를 재료로 넉넉한 식사를 한다. 식사를 마치면 꽃이 떨어지고 포도송이가 붙기 시작한 포도나무를 점검해야겠다. 내 삶을 지탱해주는 나무이니까... 아무래도 오늘은 그림을 그릴 시간이 없겠는걸.


9시 포도밭으로 나가면서 옆을 보니 딸기밭 넝쿨 주변으로 잡초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벌써 꽃까지 피웠으니 그냥 놔두면 무수한 씨앗을 퍼뜨릴 것이다. 즉시 뽑자. 어느 새 1시간이나 지나버렸네. 포도밭으로 가보니 작년에 이웃집 외양간에서 얻은 소거름을 잘 주었던지 올해의 수확은 기대를 해볼만 하다. 좀더 실한 결실을 위해서 시원찮은 송이와 필요 없는 덩굴손을 떼어내고, 늘어진 덩굴은 묶어주고... 옆을 돌아보니 친구인 고양이가 나를 쳐다보고 있어 손을 내미니 내게 다가와 제 몸을 비벼댄다. 그렇게 많은 일을 한 것같지 않은데 벌써 배가 고프다.


12시 빵과 커피(?)


13시 며칠 전부터 눈에 밟히던 정원 한 구석의 빈자리에 무언가 심어야겠다. 조금은 척박한 듯하니 퇴비를 뿌려야겠다. 마침 아랫집 아낙네가 퇴직 후에 심심했던지 토끼 분뇨와 재를 가지고 만들었다는 퇴비가 있다. 콩과 양배추 그리고 딸기를 심었다. 다행히도 주변에 핀 금어초와 오랑캐꽃이 새로 만든 텃밭을 잘 가려준다. 비록 땅은 작지만 이 작은 땅이 지닌 가치와 유익함은 결과 작지 않다.


16시 아래쪽 벽면에는 재작년에 만들어놓은 묵은 퇴비가 검은 색의 보물처럼 빛나고 있다. 그 빛을 조금 가라앉히려고 몇 그루의 해바라기를 심었는데 이제는 꽤나 큰 키를 자랑하고 있다. 한여름의 해바라기는 도도하리 만큼 기운찬 모습으로 태양을 마주하지만 가을이 되면 태양빛에 굴복하듯 땅을 향해 몸을 구부리고 마침내 자신도 잘 알고 있던 죽음을 향하여 간다. 잠시 쉬는 틈에 해바라기의 일생이 스쳐 지나간다. 어느 새 바람이 시원해진 것을 보니 하루해가 다된듯하다. 이제는 본업을 수행해야 할 시간이다.


17시 오늘 썼던 삽과 호미, 쟁기 그리고 물뿌리개를 제자리에 두고 나니 좀전에 긁어 모았던 나뭇잎과 묵은 가지가 보인다. 태워야지. 태우는 것은 자연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것이니까.


18시 저녁을 근사하게 먹고 가장 안락한 자리를 찾아 낮에 생각해보았던 그 주제를 떠올린다. 그런데 생각이 나질 않는다. 아하! 그때 흥얼거렸던 음악이 뭐더라? 제목은 모르겠지만 모차르트는 생각이 난다. 이제 실마리를 잡았으니 몇자 적어보자. 내용은 차차 쓰기로 하고 제목부터 우선... ‘유리알유희’ 꽤 괜찮은데.


어린 시절의 정원에 대한 경험이 그의 생활을 지탱해주었던 인프라 수준을 넘어 집필을 위한 최고의 공간이었음은 물론 한 순간도 놓칠 수 없기에 화가가 되기에도 넉넉한 곳이었다. 청년기까지의 방황과 몇 차례의 이혼 등 즐겁지만은 않았던 시간 속에서도 그의 주변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던 정원은 그의 영혼에 활력충전을 넘어 윤기까지 제공해주었던 발전소였음에 틀림없다. 매일 그리고 매년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그는 무엇을 느꼈을까? 3회에 걸친 정원사 헤르만 헤세의 이야기를 삶의 철학처럼 정리한 그 자신의 말로 맺으려 한다.



謙虛 이념으로부터 역사를 만들어 내려는 그 열정, 저 격렬한 쾌락을 사람들은 자제해야 한다. 이 세상은 이 고귀한 정신들이 지닌 충동이 다른 모든 사람의 충동을 결국에는 피와 폭력과 전쟁으로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허해지자.
 현명하다는 것은 현자들에게는 세계가 거칠고 격렬한 충동으로 지배되는 동안에도 연금술이자 유희이다. 충동으로 가득찬 시대의 흐름에 고요함으로 맞서자.
 옛사람들이 칭찬하고 노력했던 그 선한 것을 따르자. 세계를 변화시키지 않으면서도 함께 생각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치 있는 것이다.


_ 김태경 교수  ·  강릉원주대학교 환경조경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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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kkim@gw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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