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운의 곤충記] 가을철 풀벌레소리 정취에 숨은 과학

글_이강운 오피니언리더(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라펜트l이강운 소장l기사입력2018-09-16
가을철 풀벌레소리 정취에 숨은 과학



_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사)한국환경복원기술학회 부회장




귀뚜라미 노래 소리가 귀를 적신다. 가을의 전령 귀뚜라미라더니 이름값을 한다. 매미 울음 잠잠해지고 귀뚜라미 소리 들려오자 아침저녁으로 소매 긴 옷을 챙겨 입는다. 시원한 바람소리와 ‘차르르르’ 울려퍼지는 왕귀뚜라미 노래소리가 잘 어우러져 가을 정취 물씬하다.


소리는 공기의 파장이다. 보통 동물들은 공기를 들어 마시면서 성대의 근육을 조절해 소리를 내지만 곤충계 ‘소리의 달인’ 귀뚜라미는 마찰을 이용해 소리를 낸다. 도대체 어떻게 티끌 하나 없는 맑고 깨끗한 소리를 낼까?


귀뚜라미는 오른쪽 앞날개를 가로지르는 뾰족하고 오톨도톨한 작은 돌기가 튀어나와 톱날같이 생긴 줄(File)을, 왼쪽 날개 위 쪽 가장자리 마찰편(Scraper)에 비비면서 소리를 내고, 동시에 유리같이 투명하고 넓은 경판(Mirror)을 떨어 증폭시킨다. 경판은 소리 증폭을 위해 극도로 진화한 발성 기구로, 날개 형태를 지지하는 핏줄 같은 시맥(翅脈)을 한 쪽으로 몰고 투명하고 얇은 판으로 된 넓은 막(膜)을 만들었다. 소리를 증폭시키기 위해 날개 시맥이 변화한 것이다.


왕귀뚜라미 소리 내는 방법(날개를 긁어 소리를 낸다)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Mirror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귀뚜라미가 주로 사는 곳은 돌 틈이나 굴 같은 곳인데 이 또한 울림을 통해 소리를 증폭하기 위함이다. 소리를 멀리 퍼뜨리기 위해 신체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의 공간을 잘 활용한다.  


왕귀뚜라미의 File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왕귀뚜라미의 File과 Teeth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왕귀뚜라미의 Scraper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나무 귀뚜라미(Tree cricket)로 불리는 긴꼬리쌕쌔기는 나무나 가는 풀에 매달려 노래한다. 줄을 마찰편에 비비며 소리를 만드는 메카니즘은 동일하지만 귀뚜라미와는 반대로 왼쪽 앞날개에 있는 줄을 오른쪽 날개에 있는 마찰편으로 긁어 소리를 낸다. 


긴꼬리쌕쌔기 소리 내는 법(날개를 펼치면서 소리를 낸다)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양 쪽 날개를 마찰시켜 소리를 내는 종류를 크게 여치아목으로 분류하는데 날개를 어떻게 겹치느냐에 따라 여치과와 귀뚜라미과로 나눈다. 오른쪽앞날개가 위로 올라와 있는 왕귀뚜라미같은 놈들은 모두 귀뚜라미과, 왼쪽앞날개가 위로 올라와 있는 긴꼬리쌕쌔기 같은 종들은 여치 종류에 속한다.   


긴꼬리쌕쌔기의 File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긴꼬리쌕쌔기의 Scraper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귀뚜라미의 소리는 작고 낮은 소리부터 시끄럽고 높은 소리까지 다양하다. 우리가 듣는 대부분의 소리는 유인하는 노래이지만 상황에 따라 소리가 달라진다. 멀리 있는 암컷을 부를 때는 크게, 곁에 있는 암컷에게 사랑을 구할 때는 부드럽게, 정적이 나타났을 때는 요란하게 소리친다. 45도~90도 사이로 날개를 벌리고 줄이면서 각도에 따라 음색과 파장을 다르게 해 의사표현을 할 수 있다. 


6종 곤충의 소리 주요 주파수 Spectrogram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6종 곤충 소리의 주요 주파수 비교표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리를 내니 당연히 듣는다. 음파가 귀에 들어와서 고막(鼓膜)을 울리고, 그 울림이 청각 신경을 자극하면 음파를 느끼는 사람의 귀처럼, 귀뚜라미도 고막으로 소리를 모으고 변환한 다음 그 주파수를 분석한다. 단지 고막이 얼굴이 아니라 앞다리 종아리마디에 있을 뿐. 메뚜기 얼굴은 너무 작아 씹어 먹어야 할 큰 턱과 더듬이 그리고 커다란 눈으로 더 이상 공간이 없다. 게다가 청각 기관은 이들에게 생명과 같으므로 돌출 보다는 숨기는 게 나은 방법이다. 얼굴에 있던, 다리에 있던 목적은 같다. 왕귀뚜라미나 긴꼬리쌕쌔기의 고막은 양쪽 앞다리에 있다. 


긴꼬리쌕쌔기의 고막기관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왕귀뚜라미의 고막기관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가수와 모창자가 불러 진짜 가수를 찾는 TV 프로그램을 보면 스튜디오라는 제한 된 공간임에도 원곡의 가수를 구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열린 공간인 자연에서는 동시에 많은 종들이 노래하므로 소리가 섞이기 일쑤이고 제 짝 찾는 일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우수한 청각 기관을 갖고 있는 귀뚜라미가 동종의 독특한 음색과 파장으로 자기 짝을 찾는 일은 누워서 떡 먹기다.


메뚜기목 3종 주파수(담색방울벌레, 알락방울벌레, 긴꼬리쌕쌔기는 각기 다른 소리를 내지만 자기 짝을 찾아 가는 데는 문제가 없다)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반딧불이의 암컷과 수컷은 불빛으로 교신하고, 암컷 나방은 페로몬으로 수컷을 유인한다. 낮에 활동하는 나비들은 눈으로 직접 보면서 짝을 찾고, 더듬이를 맞대어 접촉하며 정보를 공유하는 개미도 있다. 귀뚜라미는 소리로 교신한다. 소리를 내는 가장 큰 목적이 이성을 유인하기 위함인데 암컷이 유인하는 다른 종류들과는 달리 수컷이 암컷을 유인한다. 수컷 귀뚜라미 노래는 한 밤에 창문을 열고 애절하게 부르는 ‘사랑의 세레나데’가 맞다. 후각이나 시각 혹은 직접 접촉하는 종류들보다 힘은 들지만 청각으로 신호를 보내는 일은 방해물을 피해가며 멀리 전파할 수 있고 어둠도 상관없으니 나름 강점이 많다. 


곤충의 교신방법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가을 색 깊어가는 이즈음, 귀뚜라미를 벗 삼고, 그들의 연주능력을 인정해 볏짚으로 여치집을 만들어 아름다운 소리를 들으려했던 옛 사람들의 정서가 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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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wari, C. and Diwakar, S. (2018). Singers in the grass: call description of conehead katydids (family: Tettigoniidae) and observations on avoidance of acoustic overlap. Bioacoustics,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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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cock J. (1984) - Animal behavior. An evolutionary approach, Third Edition. Sinauer Associates, Inc. Sunderland, Mass, 596 pp.

- https://species.nibr.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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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동아사이언스의 동의를 얻어 발췌한 기사이며, 이강운 소장의 주요 약력은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 한국환경복원기술학회 부회장 / 한국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 / 국립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겸임교수 / 저서로는 <한국의 나방 애벌레 도감(Caterpillars of Moths in Korea)>(2015.11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캐터필러>(2016.11 도서출판 홀로세)가 있다.
이메일 : holoce@hecri.re.kr       
블로그 : http://m.blog.naver.com/holoce58
글·사진 _ 이강운 소장  ·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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