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운의 곤충記] 기생충의 두 얼굴

글_이강운 오피니언리더(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라펜트l이강운 소장l기사입력2019-06-23
기생충의 두 얼굴



_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사)한국환경복원기술학회 부회장



기린초에 낳은 붉은점모시나비 알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반투명한 모시 날개에 붉은 빛 원형 무늬가 화려한 붉은점모시나비가 배 끝을 기린초에 대고 열심히 알을 낳고 있다. 지금 낳는 알이 다음 세대를 이끌 씨앗이므로 특별한 생존 전략으로 지켜야 한다. 우글거리는 수많은 포식자를 피해 알 속 애벌레(Pharate 1st Larva)로 천적을 피하는 특별한 생존 전략을 택한다. 다른 종류의 알보다 훨씬 두껍고 올록볼록해 더위는 물론이고 추위에도 견디는 탁월한 구조이면서 아무도 볼 수 없는 은밀한 곳이라 생각했는데 완벽은 없다.
 

붉은점모시나비  알 속 애벌레와 알껍데기 확대 (SEM촬영)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귀신같이 막 낳은 알 냄새를 맡고 잽싸게 달려든 먼지같이 작은 알벌이 거의 모든 알에 알을 낳았다. 두꺼운데다 매끈하지 않아 알을 낳기는 불편해도 사이즈가 큰 알은 많은 자식을 배부르게 먹일 수 있는 좋은 재료다. 좀벌은 붉은점모시나비 알만을 특별히 숙주(host)로 택했다. 더위, 추위와 포식자 등 온갖 악 조건을 다 극복했지만 가장 진화한 곤충, 기생 좀벌은 피하지 못했다. 고도로 세분화 된 생명 현상인 기생이 붉은점모시나비를 멸종의 길로 들어서게 했는지 모른다.


붉은점모시나비 알에서 나오는 알벌류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맵시벌에 쏘인 산호랑나비 애벌레는 온 힘을 다해 침을 빼려고 몸부림치지만 들어온 알은 막을 수 없었다. 닥치는 대로 당귀 잎을 먹어 치우며 몸집을 불려 다음 단계인 번데기를 만들었지만 기생벌의 손아귀에 들어간 번데기는 결국 나비가 아니라 벌을 만들어냈다.


산호랑나비 기생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포식과 기생으로 대변되는 천적의 한 축인 기생의 보편적인 개념은 다른 생물에 달라붙어 영양분을 빼앗아 먹는 나쁜 생물을 이른다. 사람을 포함한 척추동물의 기생충은 기생하는 생물을 죽이는 경우가 드물지만 곤충의 경우는 기생포식(Parasitoid)라 하여 기생생물을 모두 죽여 버린다. 가장 높은 생물다양성을 자랑하는 곤충은 기생 형태도 다양해 체내에 기생하는 내부기생자와 체외 기생을 하는 외부기생자가 있다.


청띠신선나비 외부기생과 흑백알락나비 내부 기생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함께 산다는 ‘공생’은 좋고 한 쪽만 이익을 챙기는 ‘기생’은 나쁘다는 편견이 있다. 그야말로 인위적인 시각일 뿐, 모든 생물들이 촘촘히 연결 된 생태계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하며 훌륭하게 잘 짜여 있어 좋고 나쁨으로 단순하게 재단할 수는 없다. 식상한 이야기지만 불필요한 생물이란 있을 수 없고 자연과 단절되는 인간의 삶은 불가능하므로 다른 생물들과 잘 협력하는 게 도움이 된다.


기생벌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인간 위주의 경제적 관점으로 기생을 이해하고 긍정적으로 활용한 분야는 농업이다. 천적을 이용한 생물학적 방제가 그 것인데 기껏 몇 마리 잡아먹는 포식보다 전부를 몰살시킬 수 있는 기생을 주로 사용한다.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운영되는 먹이 사슬인 기생을 이용한 생물적 방제로 사람도 살리고 자연 환경도 덜 파괴해 그나마 다행이다.

 
생물학적 방제에 쓰이는 무당벌레와 풀잠자리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기생충하면 보통 회충과 편충을 떠올린다. 내 몸속에 같이 살고 있는 벌레를 인정하지 않고 완전히 박멸함으로써 찝찝함을 없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공생에 가까운 기생충을 없애 오히려 인간이 불편해 졌다는 결과가 밝혀졌다. 알레르기성 질환인 아토피성 피부염이나 천식, 알레르기 비염은 몸속에 기생충이 있는 한 애초에 극복이 가능한 반응이었으나 해악을 끼치는 존재로 생각해 박멸하면서부터 ‘알레르기’가 완치가 어려운 흔한 질병이 되었다.


회충과 편충 / 위키미디어 제공

알레르기는 기생충을 절멸시키면서 기생충과 면역세포 사이에 유지되던 항상성을 깨뜨려 면역 반응이 과도하게 일어나 자신의 조직을 손상시키는 것이라 한다. 기생충은 사람 뱃속에 들어와 염치없이 몸만 축내는 존재가 아니었고 알레르기성 질환을 잡아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기생충을 알레르기 잡는 길 앞잡이로 적당히 살리는 것이 건강을 되찾는 좋은 방법이라는 뜻인데, 터무니없다 생각하겠지만 어쨌든 결과는 그렇다. 나빠 보여서 처리했지만 얼마든지 좋은 것이 숨어 있었다.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기생충의 두 얼굴이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보면서 곳곳에 숨겨진 다양한 의미를 제대로 해석해 내지는 못했지만 느낌은 복잡했다. 공생에 가까운 우리 몸 속의 기생충처럼 꼭 필요한 기생충들의 존재 이유는 없이 기생 생물을 죽임으로써 자신의 흔적을 거부하려는 기생 인간 부류가 너무 강조된 듯하다. 마지막 장면인 피비린내 나는 난장판만 자꾸 생각나 서글프다.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기생은 실체이며, 작고 턱도 없어 보이는 ‘기생’을 붙들고, 기댈 수 있는 생명으로 묘사했으면 어떨까? 물론 욕심이다. 이렇게 이야기가 전개되었으면 황금종려상은 받지 못했겠지!

하지만 설국열차, 괴물,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봉준호 감독의 곤충에 대한 시각은 독특해 보인다. 기회를 만들어 벌레 이야기는 한 번 해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참고문헌
-K. W, Lee., and J. R, Lee (2016). Development and Effects on Heat Shock Stress of Phrate 1st instar larvae of Parnassius bremeri Bremer (Lepidoptera: Papilionidae) in Korean Peninsula. Korean Society of Applied Entomology. p.37.
-K. W, Lee., and J. R, Lee (2016). Microstructure and viability of chorion of Parnassius bremeri Bremer (Lepidoptera: Papilionidae) in Korean Peninsula. Korean Society of Applied Entomology. p.93.
-K. W. Lee., and J. R, Lee (2015). Egg Viability of Red-spotted Apollo Butterfly, Parnassius bremeri (Lepidoptera: Papilionidae) in Korean Peninsula. Korean Society of Applied Entomology. p.154.
- 박성웅 외(2014). 기생. M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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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동아사이언스의 동의를 얻어 발췌한 기사이며, 이강운 소장의 주요 약력은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 한국환경복원기술학회 부회장 / 한국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 / 국립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겸임교수 / 저서로는 <한국의 나방 애벌레 도감(Caterpillars of Moths in Korea)>(2015.11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캐터필러>(2016.11 도서출판 홀로세)가 있다.
이메일 : holoce@hecri.re.kr       
글·사진 _ 이강운 소장  ·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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