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폭염 대책의 분수령 : 도시공원 일몰 vs. 화장장 증설

안승홍 논설위원(한경대 조경학과 교수)
라펜트l안승홍 교수l기사입력2018-09-28
폭염 대책의 분수령 : 도시공원 일몰 vs. 화장장 증설




_안승홍(한경대 조경학과 교수)



올해 여름 연간 전국 평균 폭염 일수가 31.2일로 1994년 기록을 추월하여 역대 최다로 기록되었다. 1994년 1년 집계한 폭염 일수보다 8월 현재까지 폭염 일수가 더 많아 2018년은 가장 무덥고 긴 더위의 해로 공식 기록됐다. 폭염으로 인한 갖가지 폐해가 속출하기도 했다.

40도를 넘나드는 폭염은 침묵의 살인자였다.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장례문화진흥원이 전국 60여 화장장의 화장 건수를 집계한 결과 올해 7월 사망자수는 2016-17년에 비해 1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폭염은 석탄, 깻묵, 고철이 쌓인 재활용 더미에 자연발화를 일으켜 잿더미로 만들었다. 살인적인 더위에 냉방기를 풀가동하자 변압기가 말썽을 일으켰다. 아파트 정전 건수가 지난 해 같은 기간에 비해 3배나 늘었다. 이웃 일본에서는 폭염 생존 대책으로 전기료 걱정보다 에어컨 사용의 생활화를 권장하였다.


상상 이상, 지구온난화의 불편한 진실

폭염의 일상화는 예견된 지 오래다. 2005년 영국 왕립학술원 로버트 메이 원장은 지구온난화는 대량살상무기만큼이나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국의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인류 멸망의 7가지 원인 중 단연 지구온난화를 손꼽았으며 멸망을 원하지 않는다면 200년 안에 지구를 떠나라고 했다. ‘사피엔스’의 저자이자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는 현대인들은 석기시대에 비해 의식주 해결을 위해 57배에 달하는 기하급수적인 에너지를 사용하여  “인류가 200~300년 내에 멸망할지도 모른다”고 예언하였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올해 여름 대표단어 중 하나로 '온실'을 선정했다. 지구온난화가 임계점을 넘어서 인간이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CO2) 배출을 더 이상 하지 않더라도, 지구가 온실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연구가 나왔기 때문이다. 나아가 호주 국립대 윌 스테펜 교수를 비롯한 동료학자들은 최근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 논문을 통해 핫하우스 지구(Hothouse Earth)라는 개념을 소개하고 지구온난화는 각종 자연현상에 연쇄 반응을 일으켜 그동안의 안정된 질서를 교란시킬 가능성을 경고했다. 실례로 지구 온난화는 제트 기류를 흐려지고 약하게 하고 있다. 제트 기류는 북극의 찬 기운과 남쪽의 따뜻한 기운이 섞이지 않게 ‘차단막’ 역할을 하는데 이 기류의 약화는 세계 도처에서 이상기온 현상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이다. 폭염이 지나면 우리에게 찾아올 미세먼지의 공습도 제트 기류의 약화로 인한 대기 정체의 빈도를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는 산업혁명 이전보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2도 아래로 유지하되 1.5도를 넘지 않게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현재까지 지구 기온이 1도 상승되었지만 전 세계는 폭염, 가뭄, 홍수와 강력한 태풍 등의 발생 빈도와 강도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재치재(以災治災) : 폭염은 태풍으로 다스린다?

한반도는 중형 태풍 솔릭의 습격으로 초긴장 상태에 막 벗어났다. 폭염이 지속되던 8월 들어서며 더위에 지친 국민들은 에어컨보다 태풍이 찾아와 더위를 식혀주기를 바라기 시작했다. 태풍이 몇 차례 한반도를 비켜가자 실망을 감추지 못 했다. 폭염을 식히기 위해 엄청난 재앙이 따르는 태풍을 기다리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일어났다. 가뭄과 채소값 폭등, 하천과 해양의 녹조와 적조현상이 발생하는 재난 수준의 폭염 대신 인명과 재산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차라리 태풍은 바람과 비로 뜨거워진 땅을 적셔 줄 반가운 손님으로 생각했다. 한반도는 폭염을 다스릴 대안으로 태풍을 기다렸다.

기상청은 태풍 솔릭이 빠져나가면 9월 초까지 폭염주의보 수준의 무더위와 열대야는 계속될 것이라고 예보했다. 기상학적으로 하루 평균 기온이 20도를 넘으면 여름이라고 정의한다. 1900년 초반만 해도 여름은 6-8월 3개월이었다. 최근 여름은 5월 21일부터 9월 28일까지 4개월로 늘어났으며 50년 뒤인 2070년은 5월 12일에서 10월 10일, 5개월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수퍼 폭염시대의 도래는 이제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되었다.


유일한 폭염 대책, 공원녹지

서울 최고기온이 기상관측 111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지난 8월 1일, 폭염의 고장인 ‘대프리카(대구 아프리카)’에 이어 ‘서프리카(서울 아프리카)’가 등장하였다. 기상청 자동기상관측장비(AWS) 측정 기온에 따르면 서울 시내 30곳의 지역별 온도는 5.7도까지 차이나는 것으로 관측되었다. 도심에서 가까운 강북구 수유동은 무려 41.8도를 비롯해 서초구 서초동, 송파구 잠실동, 강남구 삼성동은 40도를 웃돌았다. 반면 산지에서 가까운 북악산 기슭 평창동은 36.1, 관악구 신림동, 강서구 화곡동, 은평구 진관내동은 38도선을 유지했다. 도심이지만 남산 기슭의 중구 예장동은 38.4도였다.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이 지난 2년 동안 경기도 수원시를 분석한 연구 결과, 도로나 상업지구처럼 ‘회색 인프라’가 많은 지역은 여름의 기간, 평균기온, 열대야 횟수가 모두 높았다. 숲이나 공원 같은 ‘녹색 인프라’가 많은 곳은 봄과 가을이 길어지는 효과가 있었다. 같은 도시여도 공원이나 녹지와의 근접성에 따라 여름 길이가 2달가량 차이가 났다. 도심의 고층건물들은 열을 머금고 복사열을 내뿜어 ‘열섬현상’의 원인이지만 숲은 수분 증발과 그늘을 만들어 온도를 낮추고 지면을 식혀 주기 때문이다.

2013년 질병관리본부와 기후변화건강포럼이 주최한 '제5차 기후변화 건강포럼 종합학술대회'에서 고려대학교 조용성 교수는 “주변에 넓은 공원이나 산이 있는 것이 병·의원 등 의료기관이 있는 것보다 폭염 사망률을 낮추는데 효과적”이라고 발표했다. 결국 공원녹지를 확충하는 것이 기후변화로 급증할 폭염 재난에 대비할 유일한 방법이며 나아가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길이라는 것은 이제 온 국민의 상식이 되었다.


지자체의 도시공원 일몰 대책 : 해제, 민간공원, 사유지 매입

헌법재판소는 1999년 10월 ‘지자체가 개인 소유의 땅에 도시계획시설을 짓기로 하고 장기간 이를 집행하지 않으면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도시계획법(4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도시공원 일몰제는 도시계획시설상 도시공원으로 지정만 해놓고 20년간 공원 조성을 하지 않을 경우 토지주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도시공원 지정을 해제하는 것을 말한다. 2020년 7월 1일 이후에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제48조에 근거하여 미집행 도시공원은 자동으로 실효된다.

국토부는 2009년 민간공원 특례제도(이하 민간공원)를 도입하여 민간이 5만m2 이상 공원을 대상으로 공원:비공원 시설을 8:2로 조성하여 기부채납 하도록 하였으며 2013년 법 개정을 통하여 7:3으로 비공원시설을 상향 조정하였다. 사유지 매입 예산 확보가 어려운 지자체 입장에서는 이 제도가 도시공원 일몰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뒷받침이 되었다. 현재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수원, 천안, 진주 등 전국적으로 추진되고 있지만 특혜 시비, 시민단체와의 갈등 등 상당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2018년 4월 서울시는 2020년 7월 도시공원에서 풀리는 95.6㎢(여의도의 33배) 가운데 사유지 40.3㎢(여의도의 14배)를 모두 매입한다고 밝혔다. 사유지를 보상하려면 13조7,122억원이 든다. 지방정부가 미집행 도시공원의 사유지 전체를 사들이는 것은 국내에서 처음이며 공원에서 해제되는 서울의 도시공원은 116곳이다.

2018년 5월 정부는 일몰제 도시공원 부지 397㎢ 중 116㎢를 오는 8월까지 우선관리지역으로 지정해 지자체의 부지매입을 유도하기로 했다. 14조원대로 추산되는 부지매입비 마련을 위해 지자체가 지방채를 발행할 경우 정부가 5년간 이자의 50%를 최대 7200억원 범위에서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지자체와 시민단체들은 재정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부정적이다. 


국가의 선택 : 일몰제 도시공원 vs. 화장장 증설?

최근 국가적 문제로 급부상한 미집행 도시공원은 여름이면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폭염과 가을과 봄 사이 일상 스트레스인 미세먼지 대책에 긍정적 역할을 한 점은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미집행 도시계획시설로서 도시공원이 존치되지 않았다면 개발 압력에 밀려 벌써 도시화되어 폭염을 가중시켰을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도시계획 시설의 장기 미집행과 사유 재산의 침해를 들어 헌법 불합치를 결정하던 1999년에는 2018년 폭염 해법으로 태풍을 기대하는 국민들의 염원을 상상 조차하지 못 했을 것이다. 아침마다 기상예보를 확인하는 미세먼지라는 초유의 환경적 재앙 또한 고려하지 못 했을 것이다.

헌재가 1999년 판결을 내리던 순간을 돌이켜 지금 다시 판단한다면 과연 폭염과 미세먼지의 고통을 가중시킬 이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이제 지자체에 일임한 도시공원 일몰제 문제는 국가가 전면에 나서서 대응책을 수립하고 제도를 정비하여 숲과 그늘을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정책을 주도해야 할 시점이다. 그동안 지자체가 2만개가 넘는 공원을 조성한 노력을 인정하고 국가가 국가도시공원을 조성하여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때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5조에는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제 국가가 폭염과 미세먼지 대책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확고한 중심을 잡아야 할 때이다.

2020년 7월까지 이제 2년이 채 남지 않았고 여름은 점점 덥고 길어지고 있다. 

어떤 강력한 이론이나 판단도 결정되는 순간의 상황과 통계적 추세를 근거로 설명할 수 있다. 미래 시점의 전개 상황은 현재의 예측이 맞을 수도, 전혀 다른 방향에서 전개될 수도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제트 기류가 흐려지고 약해져 미세먼지 발생 빈도가 높아질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 했던 것처럼 말이다. 뉴욕타임스(NYT)는 과학자들이 미래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던 일들이 올 여름 벌어지고 있다며 이번 여름은 그동안 인류가 얼마나 기후 변화에 대해 준비하지 못 했는지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올 여름을 겪으며 폭염은 인류가 생존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일임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지금 우리는 현실을 직시하는 냉철한 이성과 현실적 고통의 소용돌이 속으로 뛰어들어 원칙을 수정할 수 있는 유연함과 결단이 필요한 때이다. 우리 시대의 문제는 미래 세대가 아닌 우리가 해결해야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_ 안승홍 교수  ·  한경대학교 조경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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