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공간, 옥상

글_이훈길 논설주간(ㄱ_studio 대표)
라펜트l이훈길 논설주간l기사입력2014-05-21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공간, 옥상


길 대표(ㄱ_studio)

 

 


드라마 <옥탑방 왕세자>의 옥탑방 세트로 옥상 공간 없는 옥탑방은 상상할 수 없다.


옥상은 영화나 TV 드라마의 좋은 소재가 되기도 한다. TV 드라마로 방영된 <옥탑방 왕세자>에서는 옥상이 이야기가 흘러가는 중심 공간이 된다. 옥상은 사람들을 만나는 기쁨도, 헤어지는 슬픔도, 사랑하는 행복도 느낄 수 있는 낭만으로 가득한 공간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영화나 TV 드라마의 화면으로 등장하는 아름다운 장면의 옥상은 드물다. 사실 현실은 그렇게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여름날 더위를 피할 요량으로 맥주 한 캔씩 들고 옥상으로 올라가 먼 산을 바라보는 것뿐이다. 이 또한 아파트에서는 현실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석양이 지는 어는 저녁에 올라간 옥상은 동네가 얼마나 낙후 되었는지, 허름한 자취방 옥상인지, 다가구 주택의 옥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기억에 남을 만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사랑하는 남녀가 노을을 바라보며 사랑을 속삭이면서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는 장면이 연상될 뿐이다.

 

매일같이 회사라는 공간에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들에게 옥상은 잠깐의 안식을 주는 휴식처이다. 직장 상사에게 한참 혼나고 나서 잠시 대피해 소리 한 번 지르고 다시 전쟁터로 복귀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곳이며, 개인 용무의 전화통화를 할 장소가 마땅하지 않아서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통화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또한 금연건물이 흘러넘치는 현실 속에서 애연가들에게 담배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그만큼 옥상은 고달픈 직장인들에게 조금의 달콤함을 줄 수 있는 아지트가 되는 곳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준 것인지 회사마다 요즘 옥상정원이 유형처럼 번지고 있다. 하루 종일 자리에서 앉아 일하다 보면 회사 근처 식당으로 밥 먹으러 가는 것도 귀찮아져 버려서 그 자리에서 숙식을 해결해 버리는 직장인들에게는 숨구멍과도 같은 공간이다. 하지만, 아직도 여의도의 많은 빌딩들 속에서 옥상이 개방되어있는 곳은 18개뿐이다.

 

사실 건물의 최상부인 옥상은 대개의 경우 기계 설비나 통신 시설을 대충 설치해 둔 창고 같은 꼴이 되어버린 것이 현실이거나 친환경 설계를 이유로 태양열 집열판 설치로 또 다른 구조물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옥상은 구조물이 이제 더 이상 위로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표현한다. 따라서 단순한 직선 형태의 평지붕으로 계획되어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언제부터인가 옥상에 대한 고민은 사라졌고, 스카이라인에 대한 관심 역시 잊혀진지 오래되었다. 어느 순간 하늘은 보기 흉한 건물의 ‘덮개’와 냉각 장치들 그리고 노란 물탱크들로 뒤덮혀 버렸다.

 


영국 런던에 위치한 Hot Tub Cinema의 스파시설 ⒸHottub Cinema


하지만 최근 옥상정원뿐 아니라 실용적인 동시에 심미적 차원에서 옥상을 활용하는 공간들이 등장하고 있다. 도시에서의 토지 수요 증대와 이에 따른 지가 상승이 그 원인이기도 하지만, 옥상 공간의 독특한 성격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바탕에 깔려있다.

 

영국의 동부지역에 위치한 Hot Tub Cinema 건물의 옥상은 스파시설과 함께 스크린과 빔 프로젝터를 이용하여 영화를 상영해주기도 하며, 호주 멜번에 위치한 Rooftop Cinema & Bar는 호주의 유명한 극장 중의 하나로 도시의 야경과 함께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서울의 마포구 서교동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는 ‘텐트올나잇’이라는 개념으로 도심 속의 캠핑장을 마련하여 옥상에서 야영을 하며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 이처럼 옥상은 영화관, 캠핑장, 결혼식, 전시회, 스파, 바, 공원, 심지어 농업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으며, 산업시설 위에 자리잡은 넓은 옥상 공간에는 수많은 농장이 만들어지고 있다. 신축 건물들에서는 새롭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아웃도어 레저 공간과 스포츠 시설물이 옥상에 배치됨으로써, 옥상이 제공하는 기회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또한 개발 이익을 회수하려는 개발업자들과 옥상 공간에서 살고 싶은 입주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건물 꼭대기에 새로운 형태의 주거 공간인 펜트하우스가 나타나기도 하였다.


교예술실험센터에서는 도심 속의 옥상 캠핑장을 마련하였다. Ⓒ서교예술실험센터


르 꼬르뷔제가 계획한 위니테 다비타시옹의 옥상 테라스에는 수영장, 놀이시설, 운동공간, 카페테리아 등을 배치하였다.


경사 지붕이 사라지고 평지붕의 옥상이 나타나는 결정적 계기는 철근콘크리트의 발명과 아스팔트 방수 기법의 등장 때문이다.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옥상에 정원을 두어 생활공간으로 사용한 건축가는 르 꼬르뷔제였다. 그는 옥상공간을 긍정적인 생활공간으로 계획하기는 했지만, 한 개인을 위한 장소가 아닌 공공성을 지닌 공간으로 실현시켰다. 빌라 사보아에서는 건축적 산책로인 경사로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옥상정원에 도달할 수 있도록 계획했으며, 위니테 다비타시옹의 옥상 테라스에는 보육원과 유치원,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시설과 수영장, 운동공간, 일광욕장, 카페테리아 등을 배치하여 공공성을 생각하였다.

 

20세기 초 이미 근대 건축의 대가는 옥상을 새롭게 인식했고, 여러 가지 실험적 실천을 통하여 중요한 디자인 요소로 부각시켰다. 한 세기가 흘렀지만, 아직까지 우리의 현실은 르 꼬르뷔제가 제시한 옥상 디자인 개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다수의 주인이 함께 공유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이용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옥상은 다양한 욕구가 담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어진 공간에 무엇인가를 채우기 보다는 가능성을 위해 비우는 작업이 필요하다. 옥상은 아파트 문화 때문에 사라진 마당과 같은 생활의 변화를 담는 그릇이다. 그릇에는 매일 새로운 음식들이 채워지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비워진 옥상은 가변적 프로그램으로 인해 다채롭고 다양한 이야기로 채워질 수 있다.

 

풍족하고, 여유로운 공간으로서의 옥상의 활용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약자들의 공간적 결핍과 제약을 위한 고려도 필요하다. 새로운 시도가 어려운 것처럼 보이는 쪽방촌이나 고시촌, 외국인 노동자 주거지 등의 고밀도의 낙후된 공간에서 옥상이라는 공간을 통해 변화될 수 있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배려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오래된 고밀도 오피스들의 옥상, 척박한 상가건물들의 옥상, 재건축이나 재개발이 불가능한 오래된 저층 아파트 단지들의 옥상 등을 가꿈으로서 옥상공간의 다각적인 접근을 통하여 재활성화의 가능성을 모색해볼 수도 있다.

 


우리가 바라보는 옥상의 모습은 녹색을 가장한 방수 페인트로 가득하다. Ⓒ이훈길


옥상은 자연이 주는 위안과 다르게 경제 고도성장이 우리에게 준 유휴 공간이다. 가꿈과 돌봄을 통하여 도시에서 작은 숨구멍과도 같은 역할을 해내고 있다. 개별 건물들의 옥상 자체 혹은 옥상과 옥상사이, 상가 건물의 옥상과 주거공간의 옥상 사이 등 다양한 옥상 공간들 사이에서 어쩌면 잃어버린 마당의 향수를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골집 마당에서 언제나 익숙하게 느낄 수 있었던 계절과 놀이의 감수성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진 지금,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어느 날 가지런히 걸려있는 빨래줄에 방금 세탁한 옷과 이불들을 뽀송뽀송하게 잘 마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소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존재하지 않는 곳처럼 무표정하게 버려져 있지만, 바람을 느끼고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옥상은 늘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다.

연재필자 _ 이훈길 논설주간  ·  ㄱ_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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