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실존주의자의 자연생태관

『하이데거와 자연, 환경, 생명』 한국 하이데거학회
라펜트l오정학 과장l기사입력2016-03-16

실존주의자의 자연생태관


하이데거와 자연, 환경, 생명

한국 하이데거학회 지음, 철학과현실사(2000)

오정학  박사 경기도시공사(ohjhak@daum.net)



하이데거(1889~1976)는 자연주의자적 취향이 있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근처 휴양림에 있었던 그만의 공간이 그것을 말해준다. 야트막한 언덕위의 작은 집이었다. 그는 방학이나 퇴직 이후의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홀로 지냈다. 전기와 수도도 없이 글을 쓰고 사색을 즐겼다. 그곳에서 그의 일상은 매우 엄격하고 단조로웠다고 한다. 베를린 대학의 교수 초빙을 거절할 때에는 <창조적인 자연풍광 : 왜 우리는 시골에 머무르는가?> 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은 흡사 호숫가 오두막에서 <월든>을 쓴 소로(H. D. Thoreau, 1817~1862)의 자연적 생활을 연상시킨다. “한 인간이 개별화되려면 고독화를 겪어야 한다”는 하이데거의 말은 아마도 스스로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지 않았을까. 



파노라믹한 경관과 넓은 조망이 특징적인 하이데거의 오두막. 사람을 왜소하게 만드는 드넓은 초원과 탁 트인 창공으로 밤에 보일 무수한 별들이 세계 속에 내던져진 인간의 존재를 끊임없이 물을 것 같다 ⓒwikipedia


이 책은 20세기 철학의 거장인 하이데거의 자연주의 생태관을 주제로 하고 있다. 하이데거 철학에서 자연ㆍ환경ㆍ생명과 관련된 것을 집중 조명했다. 녹색 프레임으로 하이데거를 바라보려는 시도이다. 물론 하이데거가 실존주의 철학자임을 감안하면 다소 무리한 연결일수 있다. 하지만 자연환경에 대한 논의는 결국 자연과 인간의 관계설정을 다루게 되므로 칸트, 니체, 아도르노 등 철학의 대가들이 줄곧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관여해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하이데거학회에서 발간된 이 책은 하이데거와 자연생태간에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던져주기에 충분하다. 


본래 하이데거 철학은 현상학, 실존철학, 삶의 철학(생철학), 해석학을 아우른다. 따라서 생태주의나 환경철학 및 환경윤리론에 대한 뚜렷한 족적은 없다. 그렇지만 그는 초기의 대표작인 <존재와 시간(1927)>에서 환경·세계의 한 구성 요소들로 사물, 도구, 자연 등을 지적하고 있다. “사물, 도구, 자연(그리고 타자)을 포괄하는 환경·세계와 인간과의 근원적인 연관성은 인간 자신이 바로 그 세계 ‘안에’ 있다고 하는 존재 틀, ‘세계-내-존재’라는 표현 자체에서 드러난다. ‘내’라고 하는 것은 세계와 인간 현존재를 매개한다. 환경, 즉 세계는 이미 보았듯이 인간이 그 안에서 살고 있는 그곳이었다.” 여기에서 ‘안’에 있다고 하는 ‘내-존재’란 거주 혹은 체류의 개념이기에 인간이 환경 세계와 교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하이데거는 인간의 거주 혹은 체류방식에 일찍이 주목했기에 본질적인 생태론자로 평가되기도 한다. <존재와 시간>의 주요 개념인 ‘거주하다’의 그리스어 명사인 oikos는 집과 가정을 뜻하는데, 독일어에서 생태론( Ökologie)은 그리스어 oikos와 logos가 합쳐진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기술의 본질과 근대 형이상학의 관계를 진단했다는 점에서 현대 환경철학의 큰 공로자로 여겨지기도  한다. 


<존재와 시간>에서 그는 자연에 대한 태도를 사물적 존재로서의 자연, 도구적 존재자로서의 자연, 환경으로서의 자연의 세 가지로 구분한다. 식물이나 물이 보여주는 풍경적인 자연은 환경으로서의 자연이다. 그러나 현시대 인간은 자연을 환경으로 보지 않고 도구로서 인식한다. 즉 숲은 목재생산, 산은 채석장, 강과 샘은 수자원, 논두렁의 꽃은 생물자원으로 여긴다. 자연은 고작 에너지 공급원일 뿐이며 인간을 위한 가치만 중시된다. 따라서 삶, 거주, 체류 장소로서의 환경, 세계는 망각된다. 이러한 그의 관점은 오늘날 환경문제의 근원적 문제점으로 인간과 자연의 잘못된 관계설정을 지적하고 있다. 


하이데거는 인간이 땅이라는 환경에 뿌리 내리고 시적(詩的)인 존재로 살아가기를 희망한다. 세계를 건립해야 하는 인간의 존재론적 책임은 막중하며 그것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인간이 된다고 보았다. 그에게 있어 오늘날의 생태위기 극복책은 과학적 신기술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근원을 일깨워주는 생태적 감수성과 지혜(ecosophia)에 있었다. 물론 생태위기 문제에 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인 과학적 진단은 항상 필요하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그러한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조그마한 것이라도 고쳐 생활하는 실천 감각의 중요성을 하이데거는 일깨워주고 있다. 

_ 오정학 과장  ·  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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