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환경과학으로 본 풍수

『전통생태와 풍수지리』 이도원·박수진·윤홍기·최원석
라펜트l오정학 과장l기사입력2016-04-14

환경과학으로 본 풍수


전통생태와 풍수지리

이도원·박수진·윤홍기·최원석 지음, 지오북(2012)

오정학  박사 경기도시공사(ohjhak@daum.net)



최근 집을 둘러싼 흥미로운 판결이 있었다. 남향으로 소개받은 아파트가 북동향으로 확인되자 낸 손해배상 소송이었다. 법원은 잘못 소개한 공인중개사의 책임을 인정했다. 한국의 엄동설한을 견디기엔 햇볕이 잘 드는 남향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물론 냉난방 시스템이 좋은 요즘의 아파트는 향의 영향을 덜 받는다. 그렇지만 에너지 비용이 커지기 때문에 여전히 남향집이 선호된다.


그래서 옛적부터 ‘배산임수’는 풍수의 기본이었다. 여기에 사신사(四神砂)가 잘 조합되면 햇볕, 바람, 물, 흙과 같은 자연요소가 사람이 살기 좋게 조화를 이루게 된다. 이런 곳은 에너지가 적게 들며 위생적이고 안전할 뿐 아니라 생산까지 잘 되는, 그야말로 복지(福地)의 땅이다. 하늘과 땅(음양)의 조화로 ‘생기’가 그득한 곳이라 여겨졌다.


농경사회에서 무한한 태양 에너지와 땅의 생산력은 산물의 근원이자 생명의 원천이었다. 생명을 담기 어렵고 두려운 존재일 뿐인 중동의 광활한 모래땅에서 일신교가 발전했듯이, 동북아시아에서 땅을 어머니로 비유하는 대지모 사상의 형성은 당연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풍수의 시조 진나라 곽박(276~324)은 “음양의 기가 바람이 되었다가 구름으로 바뀌고, 다시 비가 되어 땅 속에 들어가 생기가 된다.”고 가정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 논리를 현대적으로 보면 생태계의 물순환 사이클과 매우 비슷하다. 이 점에 착안하여 열 두 어명의 다양한 학자가 모였다. 이 중에서 식물학과 지리학을 전공한 네 명의 발제자들은 전통풍수가 가진 생태학적 순기능에 주목했다. 집담회를 이어가며 풍수지리의 원리와 의미를 재조명했고 그 속에서 지속가능성의 단초를 찾고자 했다.



옥룡사! 한국 풍수의 원조이자 선종사상의 대가인 도선 국사의 보금자리였다. 그가 35년간 수도를 했고 마침내 입적까지 했다고 알려져 있다. 두 번이나 불이 나서 소실되었다가 발굴과 복원이 진행 중이다. 그는 왜 이곳에 터를 잡았을까? 큰 못이 있었다고 지역 설화에 전해지고 있어 도선이 ‘득수’를 고려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www.gwangyang.go.kr


이들은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 당시 사람들이 노력을 했던 부분에서 뭔가 교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18쪽)” 하는 생각을 바닥에 깔고 있다. 수명이 긴 것은 대개 나름의 가치가 있기에 오랜 풍수의 역사를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한 생각이다. 반면, 전통마을과 달리 현대 도시공간의 생태적 회복탄력성이 너무 낮다는 점은 분명 한계요인이다. 물 고갈 시대에 대한 경고가 점점 높아지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최초의 풍수적 용어라는 ‘장풍득수(바람을 가두고 물을 얻는다)’는 전통사회에서 물의 중요성을 드러낸다. 특히 한국은 농업기반 사회였음에도 계절별 강수량이 너무 달라 물은 애증의 존재였다. 그래도 물이 부족하지 않았던 이 땅에서 물 부족의 재앙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땅을 파헤치는 개발사업과 식수원으로 지하수위는 빠르게 줄어들지만 아스팔트 포장면은 지금도 빗물을 그냥 흘러 보내다. “아주 결정적인 자원이 고갈되었을 때 지속가능성은 중단될 것”이라는 이도원의 진단에서는 지하수 고갈에 대한 걱정이 가득하다.


박수진은 ‘지형의 전체성에 대한 강조’를 풍수적 지형인식의 독창성으로 인식했다. 전체와 부분이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는 프렉탈 구조와 흡사하고, 최근의 지형발달이론이 내세우는 전체성(holism)과 연결된다는 해석이다. 그러한 입장에서 사신사 지형을 현대의 지형학적 이론으로 풀어나갔다. 이 과정에서 부족한 땅의 전체성을 보완하는 장치가 바로 ‘비보’ 이다. 특히 장승, 솟대, 돌탑, 당숲, 가산 등은 조경 공간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네 학자들은 풍수를 현대적 이론으로 재해석하며 그 가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전근대적 요소는 당연히 가려져야 한다. 다만, 풍수를 ‘풍수신앙’으로 부풀린 뒤 “근본적으로 미신적인 면이 지배적이다”고 다시 흔드는 윤홍기의 말에서는 비과학적 영역과 일정한 선을 그으려는 강단학자적 모습이 언뜻 비쳤다. 어차피 인간의 모든 제의는 신의 행위를 모방한 것이라고 볼 수 있기에(엘리아데), ‘기복’을 모짝 미신으로 분류하는 것은 지극히 현대적인 관점이다. 문제는 ‘미신’으로 낙인찍는 순간 모든 합리적인 공론이 휘발되어 유용한 담론의 생산이 어려워진다는 위험성에 있다.


비과학적 요소는 경계되었지만 다행히 그 문화적 맥락까지 버려지지는 않았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들은 환경과학적 접근이 풍수의 의미를 풍성하게 한다는 공감대를 갖고 있다. 김길중은 여기서 더 나아가 “세계이해에 대한 시적 상상력의 망실이 우려 된다”며 풍수가 가지는 생동감 있는 활물적 상상력에 큰 관심을 나타내어 차별화된 문학자적 발상을 보여주었다. 미래학자 존 나이스 빗은 오늘날의 시대를 일컬어 "기술을 잘 아는 두뇌에 서정적 마음이 필요하다“고 했다. 기술과 예술의 결합, 이성과 감성의 융합에 풍수의 활용을 기대해 보자.

_ 오정학 과장  ·  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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