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정원을 관리하다

손관화 논설위원(연암대학교 화훼디자인계열 교수)
라펜트l손관화 교수l기사입력2016-07-21
정원을 관리하다



글_손관화 교수(연암대학교 화훼디자인계열 가드닝전공)


우리 대학 가드닝 전공 학생들을 위한 실습정원은 1,000평정도 된다. 대략 5m×5m 작은 정원들로 조각내어 학생 1-2명을 배정해 정원을 만들고 1년간 관리하게 한다. 2006년에 가드닝 전공을 만들고 실습정원을 조성해 근 10년간 정원을 관리해 왔다. 

학기 중에는 학생들과 정원을 관리하지만 여름방학에도 엄청난 속도로 자라는 잔디를 깎고 잡초를 제거하는데, 이러한 일들은 정원을 가꾸는 즐거움이라기보다는 고민거리와 노동이 된다. 학교다보니 정원 관리 예산이 배정되지 않아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7월에는 현장실습생을 배정하고, 8월에는 학생들을 하루에 한명씩 나오게 했는데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나오지만 불볕더위에 슬금슬금 시늉만 하고 가버리기 일쑤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교수가 직접 정원을 관리하지 않으면 정원은 유지되지 않는다. 땅이 가물어 스프링클러를 돌릴 때도 마냥 돌리면 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스프링클러의 위치를 바꾸어 주어야 한다. 지척에 있는 버섯공장에서 물을 쓰면 수압이 낮아져 스프링클러가 돌지 않아 물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 적도 있다. 지금은 버섯공장이 문을 닫아 수압 걱정을 안 하니 기분이 좋다. 

잔디 깎고, 제초하고, 퇴비 만들고, 관수하는 것 외에 정원수 전정이나 시든 꽃을 따주거나 병충해 방제를 하는 일까지는 엄두를 내지 못한다. 가끔 학교 정원관리자들이 잔디 깎기 차를 타고 들어와 한 번씩 잔디를 깎아주고 가는데, 작은 정원들의 가장자리 잔디는 예초기로 깎아야 한다. 학생들 다칠까싶어 위험하지 않은 예초기만 이용하다가 작년에는 힘이 센 예초기를 샀다. 부탄가스를 사용해 손잡이에 엔진이 있는 예초기인데 심한 진동에 의해 팔꿈치 근육이 벗겨져 버렸다.

처음 정원을 조성할 땐 정원 가장자리에 서양 잔디인 켄터키블루그래스를 롤로 깔아 초겨울까지 아름다웠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여름이면 더위에 잔디의 소갈머리와 주변머리가 없어진다. 가을에 잔디 새순이 올라오기 전에 정원 전시를 위해 부근에서 잔디를 떠와 메우다보니 섞여 있던 한국잔디가 왕성해지면서 이젠 거의 다 한국잔디로 바뀌어 버렸다. 한국 잔디는 작은 정원들 내부로 계속 침범하고 있다. 경계를 만들어 주어도 뚫고 들어오기 때문에 잔디를 잘라주는 일까지 늘어나 버렸다. 

다년초 위주로 식재하는 정원의 초화류는 매년 세력이 커지면서 옆으로 퍼지고 작은 정원의 경계를 뚫고 가장자리 잔디밭으로 나온다. 초보 학생들은 다년초를 솎아주고 옆을 쳐 내어 파버리는 것을 못마땅해 한다. 불쌍하다는 것이다. 나도 처음엔 그랬지만 이제는 인정사정없이 옆을 쳐 내고 잘라낸다. 잡초를 뽑으면서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연민의 정보다는 내가 살아야 한다는 자연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을 느낀다.

가능한 실습정원만큼은 화학적 작물보호제를 사용하지 않으려는 무모한(?) 시도를 했었다. 그러면 그만큼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대처해주어야 하는데 그러지도 못하는 사이 잔디밭은 클로버가 점령했다. 두더지가 돌아다니면서 벽돌로 만든 파티오는 가라앉고 잔디밭은 두더지 굴로 무늬가 생겼다. 학교 정원관리자들이 작물보호제 살포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나 없는 사이 슬쩍슬쩍 한 번씩 약을 친다. 우리 정원 옆의 온실 기사는 온실 주변에 제초제를 칠 때 우리 잔디의 클로버에도 슬쩍슬쩍 쳐 주고 간다. 그러면 두더지가 옆의 과수원으로 도망가 한동안은 잠잠해지는데 시간이 지나 과수원에서 약을 치면 다시 우리 정원으로 몰려오는 숨바꼭질을 반복하고 있다.

다행히 정원에 말벌은 없으나 꿀벌에 쏘이면 봉침에 감사할 정도이고 모기는 두꺼운 옷으로 극복한다. 



도심의 아파트에서 살던 학생들과 비교해 시골에서 농사짓는 부모님을 돕던 학생들은 정원관리 능력이 뛰어나다. 요즘은 거의 매니저처럼 아이들을 돌보는 부모님의 예쁜 아이들은 힘든 일을 하지 않고 자라기 때문인지 가드닝을 공부하면서 ‘세상에 태어나 해 본 가장 힘든 일이 정원관리’라고 한다. 여름방학 현장실습을 식물원으로 나갔던 학생은 거의 쇼크 상태로 돌아오기도 한다. 

그런데도 이런 상황들을 겪으면서 학생들은 단단해지고 가드닝에 재미를 느껴 처음보다 더 깊이 들어가는 학생들도 있다. 

‘정원의 즐거움’, ‘정원가꾸기’ 이런 말들에 매료되어 정신없이 정원에 힘을 쏟아 부었는데 10년이 지나면서 초보자들과 끝없이 반복되는 정원의 일거리에 지쳐가는 것 같다. 올 1학기에 우리 정원 내에 다른 학과 학생들이 작은 정원을 만들었는데 초보자들이다 보니 관리를 고려하지 않은 디자인을 해 울타리 작은 빈틈에 꽃들을 심어 하루에 한번 물을 주어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고 이를 관리해야 되는 내 입장에서는 화가 났다.

정원을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은 관리가 쉬운 디자인이어야 한다. 물론 관리 때문에 멋없는 디자인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전문 정원사가 없다면 사람의 손길이 적어도 되는 정원 디자인은 매우 중요하다. 아울러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디자인 또한 중요하다. 아마 이런 정원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정원 관리 경험이 많은 디자이너일 것이다.

나는 이제 웬만하면 제초제를 사용하려고 한다. 전 국민의 가드닝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이유는 한국의 아파트 문화와 경제적인 문제 외에도 즐거움과 노동의 양면을 가지고 있는 정원의 일 때문일 수도 있다.

정원 관리 10년 만에, 새로 오신 총장님이 흰머리로 변해가는 노교수의 정원관리에 대한 노고를 이해해 이번 여름 처음으로 잔디 깎기와 제초에 필요한 인력을 제공해주셔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래도 교수보다는 정원사가 되고 싶은데 안타깝게도 이젠 근육이 따라주질 않는다. 교수와 정원사를 병행하기는 힘든 것 같다.















글·사진 _ 손관화 교수  ·  연암대학교 가드닝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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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sohn@yona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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