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영국 정원에는 어떤 길이 있나?
『영국정원에서 길을 찾다』 이준규 지음라펜트l오정학 과장l기사입력2016-09-18
영국 정원에는 어떤 길이 있나?
영국정원에서 길을 찾다이준규 지음, 한숲 펴냄(2014)
오정학 경기도시공사 과장 (ohjhak@daum.net)
영국의 정원문화는 매우 특이하다. 양식 면에서 그곳의 풍경식은 프랑스의 정형식과 함께 유럽의 대표적 정원양식으로 꼽힌다. 그 때문인지 영국은 한 해 동안 수많은 정원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첼시 플라워 쇼의 경우 왕립원예협회(RHS)가 주관하는 190년 전통의 세계최대 정원박람회로 유명하다.
그러나 원래 영국은 유럽에서도 정원문화가 뒤진 나라였다. 수도원 정원 외에는 변변찮은 정원을 보이지 않다가 튜더왕조(1485~1603) 때에 비로소 프랑스식 정원이 나타났다. 그러다가 17세기부터 자연모방의 풍경식 정원을 선보인다. 그 배경으로는 유럽 귀족사회의 유행이었던 ‘그랜드 투어(1660~1840)’를 들 수 있다. 이 여행의 인기 기념품이 그 당시로는 미술사적 혁신이었던 이태리 풍경화였기 때문이다.
풍경화의 신선한 충격과 함께 알렉산더 포프(1688~1744), 윌리엄 셴스톤(1714~1763) 등의 문인들이 풍경식 정원의 아름다움을 적극 예찬했다. 게다가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1729~97)는 <숭고와 미의 기원에 관한 철학적 탐구, 1757>에서 “비례는 미의 원인이 아니다”는 논지로 프랑스식 정원의 기본원리가 되는 대칭과 비례의 미학개념을 비판함으로써 미학적인 뒷받침을 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영국의 정원양식은 데카르트식 합리주의를 따르기보다는 루소의 자연주의를 이행한 것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화가 윌리엄 켄트(1685~1748)가 영국 풍경식 정원의 선구자가 된 것은 역사적 필연일 것이다. 더구나 그는 10여 년간 이태리에서 살았기 때문에 풍경식 정원 조성의 적임자였다.
<이삭과 레베카의 결혼이 있는 풍경> 영국인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대표적 풍경화가 클로드 르 로랭(1600~1682)의 1648년 작.
그 뒤 영국의 정원문화는 제국주의 시대에 활짝 꽃을 피운다. 식민지 경영의 득을 크게 봤음을 알 수 있다. “새로 확장된 영토에서 발견한 새롭고 아름다운 식물들을 부지런히 영국 본토로 실어 나르고 그것을 가꾸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시작했다(63쪽)”는 말은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나타낸다. 산업혁명과 식민지 수탈로 부유해진 영국의 신흥 중산층이 여러 식민지에서 들여온 식물재료를 적극 활용한 것이 오늘날의 영국식 ‘가드닝 문화’ 에 일조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한국에서도 경기정원문화박람회와 순천정원박람회에 이어 2015년부터는 서울에서도 정원박람회가 열리고 있다. 소득상승과 늘어나는 여가시간이 일상의 여유를 만들었고, 그 결과 정원에 대한 관심도 조금씩 커진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제 시작 단계이므로 아직 영국과 비교할 수는 없다. 한국은 영국과 달리 원예 중심의 정원 성행을 예측할 만한 사회·문화적 배경이 충분치 않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정원문화는 우리와 다른 역사적 배경과 기후·환경조건, 산업·문화, 야외활동방식 등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영국에서 눈여겨 본 것은 잘 만들어진 정원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정원을 매일 돌보는 ‘즐거움’이었다. 그것은 보기 좋기만 한 정원이 아니었다. 주인이 직접 매일 몸으로 부딪히는 일상적 공간으로서 정원에 대한 재발견이었다. 그가 유한계급의 ‘과시적 공간’과 이에 대한 중산층의 ‘따라 하기’가 아닌 소박한 정원과 그것이 갖는 일상의 작은 즐거움에 주목한 것은 정원의 대중화를 위해 바람직하다. 다만 한국의 주거시설과 근로여건을 고려한다면 이마저도 부러운 남의 나라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한국에서 어떤 정원문화가 꽃필지는 알 수 없다. 영국의 정원문화는 그 과정에서 하나의 참고사례가 되기에는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 글 _ 오정학 과장 · 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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