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모더니즘의 재인식

『모더니즘』 피터 게이 지음
라펜트l오정학 과장l기사입력2017-01-13
모더니즘의 재인식


모더니즘
피터 게이 지음, 한숲 펴냄(2014)
오정학 경기도시공사 과장 (ohjhak@daum.net)



1. 문화사학자의 모더니즘 소환

서울에는 UFO가 두 대 있다. 1호기는 2012년 서울역 광장 옆에, 2호기는 2014년 동대문에 착륙했다. 금방 관심에서 멀어진 서울역 신청사와 달리 2014년의 동대문 디자인프라자(DDP)는 한창 구경꾼이 몰리고 있다. DDP는 설계자인 자하 하디드가 2016년에 죽는 바람에 졸지에 그의 유작이 되었다. 설계 때부터 건설 과정 내내 얼마나 시끄러웠던 건축물 –혹은 조각물- 이었던가. 배 이상 늘어 난 공사비는 상업적 성공에 묻혀 이제는 설계자의 죽음과 함께 모두 스토리텔링의 소재일 뿐이다. 


서울시청과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 과감한 곡선의 파격적 형태로 도심의 랜드마크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UFO라는 별명이 의미하듯 지역성, 전통성과는 등을 돌렸다. 서울시 신청사는 역사성을 가진 전면의 구청사를 철저히 소외시켰고, DDP 역시 동대문이라는 부지의 장소성을 망각하고 있다. ⓒ서울시

포스트모더니즘이 판을 치는 마당에 역사학자 피터 게이는 ‘모더니즘’을 다시 내세웠다. 건축에 한정해서 본다면, 근대건축운동의 방향을 제시했던 국제건축가연맹(CIAM)이 해체된 1956년을 기점으로 근대건축은 막을 내렸다고 평가된다. 이러한 시점에 모더니즘에 대한 그의 목적은 “문화적 중요성을 탐구하고, 가능하다면 그것들이 하나의 문화적 통일체로 규정될 수 있는지 살펴보는 것(14쪽)”이다. 이를 위해 그는 ‘모더니즘에 이를 수 있었던 예술가 개인의 변화상 및 상호교류’와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에 도움이 되거나 방해가 된 사회·경제·종교적 배경’에 주목했다. 이젠 지구적 현상이 된 젠트리피케이션이 말해주듯이 자본이 문화를 도구화하는 현재를 극복해내는 법고창신의 지혜에 대한 갈구가 모더니즘을 되짚어 보게 만들지 않았을까?


2. 모더니즘의 주체성 

피터 게이는 모더니스트의 뚜렷한 공통점을 두 가지 들었다. ‘이단의 유혹 즉 관습적인 감수성에 저항하려는 충동’과 ‘철저한 자기 탐구’였다. ‘이단의 유혹’은 기성 체제에 대한 반감과 저항정신이다. 이는 변화에 대한 희구이다. 물론 모든 문화의 보편적인 성향일 수 있지만,  기성체제를 거부하고 반발한 정도가 유사 이래 가장 컸다. 차별화된 시대정신을 의미하는 ‘모더니티’라는 용어는 이를 명확히 증명한다. 

역사는 근대와 전근대로 구분된다. 모더니티는 바로 그 구분점에서, 전근대적 사고를 뒤집는 전복적 가치체계였다. 이전 시대의 절대적 존재였던 종교와 정치체계의 권위 상실에 힘입은 바 컸다. 피터 게이는 정교분리주의가 확대되던 19세기에, 대부분의 모더니스트들이 종교를 파괴하고자 애썼다고 평가한다. 이단적인 시를 썼던 랭보, 신(神)을 죽여야 할 대상으로 본 고갱, 신의 죽음을 선언한 니체는 그 대표적 인물이다. 특히 니체는 모더니즘 풍토 마련에 가장 공이 큰 인물이라는 것이 게이의 평가이다. 

이렇게 해서 모더니스트들은 신과 자연을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모더니스트 화가들은 아주 단순하게 그린 스케치를 완성작으로 제시하다가 나중에는 자연적 산물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인간의 내면을 그리기 시작했다. 시인은 전통 운율에 외설적 내용을 넣었고, 건축가는 고전주의적 양식에 흔했던 장식적인 요소를 말끔히 치워버렸다. 이들이 내세운 “새롭게 하라” 혹은 “나를 놀라게 하라”는 슬로건은 그러한 행동의 가장 좋은 설명이다. 

‘철저한 자기탐구’는 자연을 외면하고 전통과 단절한 모더니스트들이 추구한 주관성 및 개인주의와 연결된다. 주관성은 모더니즘이 시작하던 단계에서 그리고 그 이후에도 간헐적으로 사용했던 기법과 언어, 예술매체의 조작을 밝혀주는 데 필요적인 용어로 평가된다. 원래 모더니즘은 객체보다 주체를, 집단적 의식보다는 개인의식을 더 높게 인식했다. 가치와 진리가 오직 ‘나’로부터 나온다고 믿었던 모더니스트들로서는 당연했는지 모른다. ‘관습적인 감수성에 저항하려는 충동’이 차별화를 뜻한다면, 철저한 ‘자기탐구’는 모더니즘의 요체일 것이다.

물론 단순히 신기하거나 기이한 놀라움은 아니다. ‘자기 탐구’가 내재된 새로움과 놀라움이다. 그러기 위해선 전복적 사고와 개인주의, 무조건적인 개성만으로는 부족했다. 그것만으로는 낭만주의자와도 잘 구분되지 않는다. ‘자기탐구’는 인간 본성에 대한 천착과 함께 “동시대적 정신과의 조화”가 필요했다. 그 조화가 부족할 때에 생기는 문제가 컨텐츠의 난해성이었다. 

특히 초현실주의와 비구상 회화에서는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을 때에 작가 외에는 해석이 힘들거나, 장님 코끼리 더듬기 식의 해석이 난무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는 자기탐구의 결과와 동시대적 정신과의 조응 정도에 따른 결과였다. 이러한 요건을 구비하기 위해서는 기성 종교나 이론을 뛰어넘는 새로운 기법이 필요했다. 당시 니체, 프로이드, 융과 같은 철학과 심리학의 발달은 그러한 방법론을 제공해 주었다. 그 결과가 인간심리를 묘사한 문학이나 갈등관계를 다룬 극예술, 인간의 내면을 형상화한 비구상 회화의 시발이었다고 게이는 평가한다. 

이처럼 피터 게이는 모더니즘의 근간이 되는 근대적 주체성 형성이 종교와 정치체계의 압박이 줄어든 틈을 타 발아했고, 그 이후 심리학, 철학, 정신의학 등의 발달에 힘입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그 이전까지의 모든 것을 전근대적인 것으로 평가절하 한 모더니즘의 근원은 결국 역사적으로 파고들면 르네상스 이후 발전한 인본주의와 연결된다. 그러한 토양 위에서 정치체제의 변화와 산업혁명으로 유발된 경제체제의 변화가 모더니즘의 기폭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3. 모더니즘의 한계와 극복

문화대통령으로 불렸던 ‘서태지와 아이들(1992)’, 영상매체비평의 새장을 열었던 ‘씨네21(1995)’ 등의 대중문화지 창간 붐과 함께 한류가 상품화 된 때는 1990년대이다. 이 시기는 정치적으로는 사회전반에 민주화 시스템이 확산되었고 경제적으로는 소득수준이 1만 달러(1995)를 넘어서는 시점이다.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여유가 문화활동을 이끌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문화와 정치체제, 경제여건은 서로 상관관계이다. 때문에 피터게이도 그 사회의 정치적 자유로움과 경제적 발전을 모더니즘의 형성조건으로 꼽았다. 모더니즘은 초기에 물질문화와 산업주의에 대한 비판 정신을 실험적이고 전복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개인의 주관적 가치를 내세웠다. 

그러나 모더니즘도 경제적인 지원은 필요했고 그 공급원은 부르주아였다. 모더니즘 이전의 예술가들이 왕족, 귀족, 성직자 등의 부유한 개인 후견자에 의존했다면, 모더니즘은 부르주아라는 신흥 자본계층의 지원을 받았다. 이전의 권력적 후견자로부터 독립하여 좀 더 자유로워졌지만 대신 부르주아와 일정한 정신적 교감이 필요했다. 모더니즘 예술가의 ‘개인적 주관성’을 폭넓은 시각으로 보면 근대 부르주아의 ‘산책자’와 동류이다. 모더니즘이 ‘동시대성’을 강조하면서도 대중성에서 일정한 한계를 보인 것은 이와 연관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모더니즘은 아방가르드적 혁신성을 가졌다. 당시로서는 일정 수준의 문화적 소양이 있지 않고는 제대로 그 가치를 파악해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것 역시 ‘대중성’과 일정 거리를 가지게 하는 요인이다. 피터 게이는 모더니즘 시대의 계급을 모더니즘을 살찌우는 교양 있는 엘리트, 이해하는 척하는 속물 부르주아, 전혀 도용이 되지 않는 몽매한 대중의 세 계급(762쪽)으로 나누었다. 당대에 교양 있는 엘리트는 극히 소수였을 테고, 경제력을 가진 부르주아 역시 많지 않았다. 결국 우매한 대중이 대다수인 상황에서 비판적으로 본다면 모더니즘의 예술을 위한 예술, 형식적·추상적인 속성은 철저히 비참한 현실세계와 일반인의 삶을 외면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이런 한계가 민중적, 민속적, 국민적 예술을 추구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부른 요인일 것이다. 


4. 모더니즘의 재인식 

피터 게이는 전반적으로 모더니즘에 우호적이다. 그럼에도 부활의 가능성에는 부정적이다. 그 이유로는 “프랑스혁명 뒤에 시작되어 서유럽 문명에 만연한 문화의 평등성”을 들었다. 그의 시각으로는 모더니즘이 결코 평등주의적 이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꼽은 평등화의 가장 두드러진 요소인 문화 향유자의 확연한 구분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모더니즘의 미래를 위태롭게 만든다는 분석이다. 때문에 그는 모더니즘의 부활 가능성에 대해 “오늘날 중산 계급이 관심을 갖는 쉽고 빠른 커뮤니케이션이 타협을 조장하였고, 이는 미래의 아방가르드를 사회 주류에서 배제하는 데 도움이 될 뿐이다”고 비평했다. 물론 이러한 이성적인 판단과는 별개로 “언젠가 엄청난 모더니즘의 부활이 있을지도 모른다(789쪽)”는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이 책은 모더니즘이 근대 이후 인간의 생활방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 영향이 지금도 이어짐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모더니즘의 적확한 이해는 모더니즘 예술을 넘어 근대 이후 인류의 생활방식 변화를 파악하게 해 준다. 특히 모더니즘 예술이 사회의 다양한 현상 중에서도 경제체제와 직결됨을 알 수 있다. 모더니즘을 뒷받침해온 독점자본주의가 후기자본주의로 대체된 시점인 1970년대에 포스트모더니즘이 나타난 것은 이를 잘 뒷받침한다.

<모더니즘>의 지적을 발전시키면, 후기자본주의 이후의 산자유주의가 문화와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한 이해력을 높일 수 있다. 오늘날 신자유주의는 개별 주체의 감성을 자극하는 기호와 담론을 적극 활용하여 겉면을 장식한다. 도시공간에서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는 근대적 합리성과 효율성이 인간마저 관리하고 통제해왔다. 챨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가 보여준 철저한 규율사회는 20세기 내내 행정, 교육, 산업·경제의 모든 공간에서 세련도를 높이며 계속 작동해오지 않았던가. 

이러한 모더니즘의 기능성은 효율성의 확보로 실용성과 같은 경제적 이득을 주었다. 반면, 도시공간 및 건조물의 외형을 결정지은 ‘직선’의 규칙은 공간을 획일화시키고 추상화시켜 무장소성을 초래하는 문제점을 드러냈다. 대안으로 제시된 포스트모더니즘은 역사성과 지역주의와 같은 본연의 정신을 슬며시 저버리고 무조건적인 공간의 융합과 미학성 추구로 인간을 일상 궤도에서 이탈시키려 하고 있다. 명품 물품과 랜드마크 공간으로 일탈을 부추기는 자본의 문법에서 보듯이 대중에겐 ‘소비’가 요구될 뿐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체계와 그에 따른 포스트모더니즘 문화 환경에서, 개인의 주체 확립을 위해서는 자기탐구를 강조한 모더니즘의 초심이 유효함을 피터 게이는 일깨워 주었다.
_ 오정학 과장  ·  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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