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문화적 상징으로서의 식물 이야기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 고정희 지음
라펜트l오정학 과장l기사입력2017-03-16
문화적 상징으로서의 식물 이야기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
고정희 지음, 나무도시 펴냄(2012)
오정학 경기도시공사 과장 (ohjhak@daum.net)



1634년의 네덜란드는 열기가 넘쳤다.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 ‘동인도 회사’에 투자가 몰려 나라 안에 돈이 넘쳐난 까닭이다. 여유로워진 귀족들은 원예 취미에 관심을 가졌고 특히 외래종인 튤립의 인기가 높았다. 전통적으로 상위계층을 모방해온 중산층은 곧 ‘따라하기’를 시작했고, 급기야 일반 대중에까지 확산되었다. 수요가 늘면서 튤립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올라갔다. 마침내 투자의 대상이 되었는데, 이렇게 시작된 튤립투기는 해가 바뀌어도 식을 줄 몰랐다. 

그렇게 된 데에는 당시 설립된 은행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튤립을 담보로 대출을 해줬기 때문이다. 원예기술상 튤립 구근 생산에 한계가 있어 ‘희소성’이 유지된 탓도 컸다. 1636년이 되자 최고 인기품종은 도시근로자 연소득의 20배에 거래되었는데, 2016년도 한국의 도시근로자(1인가구) 월평균 소득을 대입시키면 무려 5억8천만원이 된다. 그러나 모든 버블이 그렀듯이 붕괴는 급작스럽다. 올라도 너무 올랐다는 생각이 퍼진 1637년 2월, 튤립은 폭락하기 시작했다. 며칠 만에 1/100로 떨어지자 파산자와 자살자가 이어졌고, 은행의 줄도산으로 국가경제마저 휘청거리게 되었다. 


네덜란드 튤립 투기 당시 가장 비쌌던 셈페르 아우스구투스. 황제튤립으로 불렸으며 대저택 한 채와 맞먹는 금액으로까지 거래되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투기는 경제학사에서 유명한 사건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사용가치보다 교환가치를 더 따지는 현대인에겐 귀감이 된다. 튤립투기를 알게 되면 튤립이 조금 색다르게 보일 수 있다. “대체 이 튤립의 무엇이 당시 네덜란드인을 매혹시켰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식물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이나 일화, 신화나 전설 등은 식물을 단지 식물이 아닌 역사적 존재로 격상시켜 더 깊은 의미를 부여한다. 서사를 가진 존재가 되는 까닭이다. 

서구문명의 기반인 로마의 신화에는 많은 식물들이 등장한다. 비너스의 눈물이 변한 양귀비, 아도니스의 붉은 피가 변했다는 아네모네, 아폴로 신의 총애를 받은 히아신스, 아이아스 장군의 투구꽃 등 온갖 식물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이렇게 신화가 식물사(植物史)로 느껴지는 것에 대해 고정희는 ‘나무를 신과 소통하는 통로로 여겼던 북방문화가 유럽으로 건너간 때문(258쪽)’이라는 시각에서 “역사는 고증을 필요로 하지만 신화는 그럴 필요가 없기에(145쪽)”, 식물의 내력을 풍부하게 해 주는 신화의 매력을 강조한다. “부활이라는 종교적 개념이 이미 자연신상시대에 널리 퍼져있었으며 다름 아닌 식물에서 본을 딴 것임을 수많은 신화가 입증하고 있다. 그러므로 다른 곳이 아닌 식물에서 신화의 코드를 찾는 편이 수월한 접근법일 것이다(15쪽)”는 말은 그러한 생각을 드러낸다. 

현대의 가든 쇼가 구대륙인 유럽에서 주로 펼쳐지는 것은 땅의 역사와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크리스트교가 정착하기 이전의 유럽은 여러 토착신앙에서 비롯된 온갖 정령과 요정들의 세계였다. 그 속에서 식물은 종종 신앙이나 무속의 대상이었고, 당연히 인간과 얽힌 일화와 사건들이 많았다. 최근 한국에서도 정원박람회가 연례화 되는 등 대중적 정원문화가 싹트고 있다. 그러한 정원문화 발달이 단순히 식물 육종이나 식재기술 등과 같은 ‘기술’의 문제가 아님을 저자는 에둘러서 말하였다.

양화소록을 쓴 강희안은 “화목(花木)은 군자가 벗 삼아 마땅하며 화목이 지닌 물성을 법도로 하여 덕을 삼아 유익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꽃과 나무를 단지 감각적인 감상 대상이 아니라 정신적인 교감의 대상으로 설정했음을 알 수 있다. 오랜 역사를 통해 이루어진 인간과의 관계가 없다면 식물이 주는 감흥은 한층 줄어들 것이다. 저자는 ‘반지의 제왕’을 쓴 톨킨을 들어, “언어학, 문학이론 교수이며 신비주의자로서 인류문명과 신화와의 관계에 특히 조예가 깊은 사람(175쪽)”이었다고 소개했다. 작가가 문학적 상상력을 토대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내듯이, 조경가는 인문지리학적 소재와 식물의 서사를 활용한 대지적 상상력이 필요함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인간과의 상호작용에 따라 몇 포기의 꽃이 의미 있는 장소일수 있는 반면 아름드리 숲일지라도 평범한 공간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저자인 고정희는 독일에서 조경학 석·박사를 취득한 뒤 20년 이상 현지에서 일하다가 한국에 와서 삼성에버랜드와 개인설계사무실을 통해 조경 활동을 한 이력을 갖고 있다. 현재는 다시 독일에서 활동 중이다, 2004년, 2006년, 2011년에 독일과 유럽정원에 대한 책을 펴낸 뒤 2012년에 이 책을 쓰는 등 왕성한 저술력을 보여주고 있다.  “식물은 내게 학문의 대상이 아니라...언제나 삶의 주인공이었다”는 표지어는 식물에 대한 그의 대단한 집념을 느끼게 한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는 상세한 사진 자료와 스토리텔링식 구조 덕분에 재미있게 읽혀지는 편이다. 그러나 100개 가까이 되는 주석과 70여권의 참고문헌은 정확한 자료에 근거하여 꼼꼼히 저술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알맹이 있는 내용이 수월하게 읽혀짐은 순전히 저자의 글쓰기 역량 때문일 것이다. 그의 글이 논문식 글쓰기에 오염되지 않은 채 입말, 단문, 팩트에 충실한 것이 바로 그 증좌이다. 준비 중이라는 후속작이 기대된다. 
_ 오정학 과장  ·  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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