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도시_ 경관 ‘도시’: 포스트시대의 풍경(下)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_9회
라펜트l안명준 조경비평가, 나창호 기자l기사입력2013-08-02

정원도시; 선구적 도시 놀이(City Playing)

 

크리스토퍼 알렉산더는 우리 도시 일상의 단면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의 친구들은 옆집에 사는 것이 아니라 아주 먼 곳에 있다.” 이것은 우리 도시의 물리적 거리 또는 간극을 보여주는 언급이지만 한 가지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의미도 보여준다. 그것은 현대 사회가 더 이상 닫힌 집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친족, 혈연 등 전통적 의미의 사회적 관계가 공간적 연계에서 벗어나면서 새로운 공간 재편, 시간 재편이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 도시에서의 사회적 관계들도 이미 개별 주인공들의최대 다수, 최대 행복이라는 기치에 따라 재편되었으며, 물리적 도시와 사회적 행위 사이의 연결고리 또한 그에 따라 재편된 지 오래다.

 

그런 면에서 스피로 코스토프가 도시를어떤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움직이는 과정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과정을 이끄는 주인공들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이해되어 왔는데, 권력자와 집권층이 먼저였던 중세(premodern)를 지나, 근대 도시에서는 보다 실생활에 가까운 도시 주인공들(urban actors)에 점차 가까워져 가는 양상을 보인다. 그렇다고 한 번에 그랬던 것은 아니었고 단계를 거치며 발전하여 이제는 주민참여, 주민주도의 수준으로까지 확대되었다.

 

그러나 제인 제이콥스는 지난 근대 도시계획에 대해주민들의 실생활(real life)을 외면한 채 도시를 하나의 유기체(organism)로 전제하고 전문가들의 활동 영역으로만 간주해 왔다.”고 반성한다. 그 결과로삶의 현장에 있는 주민 공동체로부터 저항을 받게 되었다.”고 말한다. 협력적 의사결정의 과정이 점차 실행되고는 있지만 전문가의 역할, 세부 전문분야의 역할이 아직까지는 모더니즘의 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어쨌든 도시를 유기적 실체로 보면서도 기계적 메커니즘으로 구성하려 했던 근대의 도시 계획이 우리 도시를 지금의 틀로 자리 잡게 한 것은 사실이다. 기능과 효율이 지배하는 근대의 도시는 산업자본과 자본주의, 신자본주의로 대표되는 잉여 가치와 그것에 따라 붙는 인간의 욕망에 의해 형성되고 발전한 셈이다. 즉 지금의 도시는 잉여의 결과이다. 현대 도시는 자본의 결과로 형성되었고, 자본은 다시 잉여를 위해 도시를 적층, 폴딩, 두껍게 하고 있다. 보드리야르가 지적하듯 점차 기호가치에 더 방점을 두며 비대해진 도시로 우리 삶마저 변화시켜온 것이다.

 

기호가치로 재편된 도시는 마르크스가 말한사악하고 비열하고 비양심적이고 똑똑하지 못한 인간일지라도 화폐는 존경 받으며 따라서 화폐의 소유자 또한 존경받는다.”는 지적의 다른 버전일 뿐이다. 그러한 결과 중의 하나가 도시 경관에 투영되어 나타나는데, “도시 공간은 자연 경관을 인간의 의도나 계획에 따라 인공 경관으로 바꾼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확장된 현대 도시 경관은 자본에서 나아가 욕심의 그리드락에 갇혀있는 지도 모른다, 옴짝달싹 못할 만큼.

 

이런 와중, 한계에 달한 것처럼 보이는 포스트(postmodern)시대에 조심스럽게 옛것에서 새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 중 에벤에저 하워드의 정원도시론은 심도 있게 재탐구되어야 할 사례로 중요하다. 우리는정원도시(전원도시)’라는 어휘가 주는 강렬함 때문에 그 안에 담긴 철학과 도시적 가능성을 쉽게 놓치곤 한다. 삶이 있는 도시를 꿈꾸는 모두에게 하워드의 이상을 한번쯤은 깊이 있게 경험해 보았으면 한다.

 

하워드의 정원도시론이 재소환되는 이유는 그것이도시와 전원생활을 건강하고 자연적이며 경제적으로 결합하고 있고, “개인의 취향 및 기호가 최대한 보장되는 것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그가 농촌과 도시를 보는 시각은 독특한데, “도시자석과 농촌자석이라 부른 이것은 자석이 하나의 몸체에 두 개의 극을 가지듯, 또는 각자 극을 가진 자석들이 서로에게 이끌리듯 정원도시 속에서 한데 어우러지기를 표현한 것이다. “인간 사회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함께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워드는 정원도시를 통해농촌의 건강한 활동성과 도시의 지식과 기술을 종합하고자 하였다. 그에게 도시는 부정이나 모정 또는 형제자매이며, 인간과 인간 사이의 폭넓은 관계처럼 상부상조하고친근하게 협동하는 사회의 상징이다. 농촌은신의 사랑과 인류에 대한 보살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농촌은 모든 건강과 부, 지식의 원천이다. 그는 남자와 여자의 다른 재능과 능력이 서로를 보완해 주듯이, 도시와 농촌도 그래야 한다고 보았다.

 

그의 이상적 도시 만들기는 지금 우리 시대에 그대로 적용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고, 현상황에 맞지 않는 부분도 충분히 많다. 그러나 정원도시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으며, 보완할 부분을 충분히 섭렵한 후 새로운 접근으로 근대 도시계획의 한계를 극복하는데 의미 있는 온고지신 사례가 될 수 있어 보인다.

 

특히 각자 우리 도시의 주인공으로 부각되고 있고, 공간과 떼어졌던 삶을 다시 연계하려는 사업들이 많아지고 있으며, 도시재생이 커다란 패러다임으로 부상하는 시대에 정원도시가 담고 있던 삶의 현장성은 다시 보고 또 보아야 할 측면(컨셉)이 아닌가 한다.

 


 

놀이도시(Ludic City)를 위한 조경을 꿈꾸며

 

현대 도시는 재생을 필요로 하고 있다. 지난 시대 도시가 그렇게 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공간과 사람이 맺어왔던 관계, 이야기들을 기계적 효율성 앞에 등한시하였기 때문이다. 가히 국제주의 도시가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때문으로 삶과 공간이 맺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한 번에 지워야 했던 지난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도시가 시간이 쌓이는 장소들로 재편되며 삶의 공간으로 되살아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렇게 지워버린 이야기들을 지금부터라도 다시 만들어가야 한다. 이야기는 장소를 되살리는 근본이자 최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문가들의 줄기찬 지적과는 별개로 도시의 일상 속에서 하나 둘 삶터로서의 이야기들이 하나의 트렌드를 형성하며 성장하고 있다. 공동정원을 가꾸는 아파트 단지의 할머니, 할아버지들 모임이라든지, 공원 해설사로 자원하여 아이들에게 우리 도시의 아름다움을 소개하는 봉사자들이라든지, 하다못해 골목길을 가꾸며 모두를 위한 공공정원으로 키워나가는 시민들의 모습이라든지, 도시 오픈스페이스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야간경관과 밤문화라든지, 우리 주변에는 지난 시대 우리가 쉽게 경험하지 못하였던 숨어 있던 도시 주인공들의 활약이 대단하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주인공들의 활약이 모두의 것이자 내 것이기도 한 도시 공공공간에서 활발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라지다시피 해버린 도시의 이야기들이 하나 둘씩 되살아나고 있다. 현대 조경은 그것에 민감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거대 개발 논리의 큰 흐름도 중요하지만 작지만 일상의 이야기가 풍부한 도시의 재생 요소들에 대해서도 충분히 연구하고 실행하며 지원해야 하는 것이다. 이미 조경의 대상인 도시의 삶터는 그런 변화의 흐름을 이끌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정원도시는 그런 면에서 삶의 공간과 이야기를 도시 속에 먼저 펼쳐가자는 이론으로서 여전히 유의미하다. 또한 이야기 있는 도시를 위해서는 함께 그것을 나눌 공간이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 도시의 공공공간은 도시재생에 있어 중요한 매개체로 중요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슬프고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니라 즐겁고 쉬우며 단순한 우리들의 삶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삼겹살 구워먹을 수 있는 공원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점에서 작은 이야기들을 품을 수 있는 도시공간, 공공공간, 공공정원, 공공장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조경은 그것을 지원하는 분야로서 주목되어야 한다.

 

우리의 사회적 삶은 놀이와 함께일 때 행복하다. 과거의 도시가 즐겁지 못한 물리적 도시에 집중하였다면 이제 거기에 즐거운 놀이와 이야기를 담아야 할 때가 되었다. 도시의 재생은 그렇게 시작될 수 있다. 경제적 재생, 문화적 재생 등 흔히 고민하는 재미없는 재생의 이야기들은 그런 물리적 도시화의 연장일 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삶터를 즐기며 살 줄 아는 우리 모두의 놀이, 재미있는 도시여야 한다는 점이다. 내밀한 삶의 공간을 제외한 도시의 모든 공적 공간은 그래야 한다. 누구는 도시의 일상이 예술이 되게 하라지만, 하루하루 삶터의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공유 자산으로서의 도시는 재미와 놀이의 공간이 되게 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누구나 아는 도시의 켜, 겉으로 보이는 도시와, 쉽게 인식되는 도시의 켜들이 서로 연계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 도시를 활기차게 하고 범죄 없게 하며, 나아가 지속가능하게 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것이 장소성의 핵심이기도 하다. 현대 조경은 이와 같은 사잇길 같은 도시, 산호초 같은 도시를 함께 꿈꿔야 할 때이다. <www.NewtWork.net>

_ 안명준 조경비평가  ·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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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plusgan@gmail.com
사진 _ 나창호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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