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으로 즐기는 경공(景空), “생각”으로 그리는 환장(環場) - 2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
라펜트l안명준l기사입력2018-09-21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 

Part 2: 15 생각(think) Ⅱ



“생각”으로 즐기는 경공(景空), “생각”으로 그리는 환장(環場)

 



_안명준 오피니언리더

조경시공연구소 느티 대표│조경비평가





생각Ⅱ: “생각”으로 즐기는 경공(景空), “생각”으로 그리는 환장(環場)...

우리가 흔히 놓치지만 생각은 윤리를 바탕으로 한다. ‘진선미’ 모두가 이성의 총아인 철학의 주제로 모두 다루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은 행동과 제작을 전제로 한다. 그런 면에서 이른바 “이론과 실천의 괴리”는 실상은 잘못된 진단이다. 생각과 그 적용은 필히 연속적일 수밖에 없다. 생각은 그러므로 그 자체로 깊이의 세계일 수밖에 없고 자기 자신만의 사고 체계와 생각의 사다리로 되짚어가고 평가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일회성 작업의 경우에는 작든 크든 관계없이 생각은 깊숙한 자신의 윤리에 기초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생각은 저 깊이에서 윤리에 기반을 두는 것이다.


생각과 윤리의 이중주 
이를 먼저 꺼내는 것은 ‘속도전, 산업전’을 지나온 우리의 ‘생각’들에 반성과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시간과 예산과 기타 등등의 핑계로 깊이 있는 생각을, 윤리에 기반을 둔 생각을 져버린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직업의식, 윤리의식이 지금 우리의 생각들에는 중요하게 필요해졌다. 우리가 지나온 길과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을 얼마나 굳건한 길로써, 후배들과 후학들, 나아가 후손들이 신뢰하며 밟아나가고 성장하기 위한 토대이자 기반으로 자랑스럽게 구축하였는지 반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생각은 기계가 아니고, 반성적 사고는 기계적 사고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될 것이며 객관화 또는 합리화라는 측면에서 단순화하고 유비적으로 치환하여(환유) 접근해서도 안 될 것이다. 정반합이라는 낡은 방법론 또한 여기에서는 무의미하다. 중요한 점은 반성과 성찰에 내포된 진정성이기 때문이며 그것은 쉽게 정량화 될 수 없다.   

전문가 또는 전문분야의 생각이란 그래야 하며 그러할 때 사회적 가치를 지속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도 잊지 않아야 한다. 또한 공공을 대상으로 하는 분야라고 한다면 갑질로 대표되는 권위의식과 자의적 판단을 스스로 되짚어볼 수 있는 안목을 꾸준히 수양하여야 한다. 깊이로만 몰두해온 모든 현대의 생각들에는 푸코 식으로 말해 “자기수양(자기의 테크놀로지)”이 부족하다. 그것은 보편과 상식이 만나는 지점을 사유하라는 것으로 읽어도 좋을 듯하다. 그러할 때 전문분야의 생각은 저절로 보편에 기반을 두게 될 것이다. 작은 생각도 진정성 있는 성찰로 다가올 것이다.


2013년 금호동마을계획단 마을계획안에는 수많은 생각이 담겨있다.


생각에 매몰되지 않기
그러나 생각이란 혼자서 하다보면 길을 잃고 독단으로 매몰되기 쉬운 특성이 있다. 그러니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는 스스로의 생각에 매몰되지 않을 만큼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는 연습이 필요하다. 자기수양은 그래서 중요하다. 일례로 생각이란 글로 쉽게 표현되기 마련인데 “보그병신체”로 대표되는 수사에만 매몰된 쉽게 알아볼 수 없는 극단적 글쓰기는 보편과 거리를 둔 생각 매몰의 결과이다. 지난 시대 말뿐인 조경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있었음을 기억한다면 이런 지적의 진의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은 개념과 어휘로 드러날 수밖에 없으므로 깊이 있는 생각이 현장이나 현실과 괴리를 이룬 말잔치가 되는 것을 꾸준히 경계해야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아직 다행인 것은 생각은 깊어지되 수사가 비현실적인 경우는 흔하지 않은 것 같다.

하나 더, 개인의 사고를 담는 개념과 어휘는 마무리되지 않은 생각 단계의 실천이자 매체일 뿐이라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전달하고(소통하고) 창발(생산)해야 할 기의(생각의 결과)가 어디에 담겨 소통되느냐(chanel)의 문제와 관련 된다. 예를 들어 “생태”와 같은 개념과 지향, 목표하는 의미를 매체라는 수단이자 통로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개념은 매체가 아니다. 생각이 물체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이를 지적하는 것은 우리가 흔히 저만의 생각에 매몰되기 시작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이기 때문이다. 생각을 담은 언어는 함께 나누고 같이 고민하기 위한 방법이므로 생각을 치장하고 생각을 낯설게 하기 위한 레토릭화는 곤란하다.

그렇더라도 생각이 실재하는 실천인 것은 변함없다. ‘저만의 생각’이 되지 않도록 부단한 경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조경 분야에서 아직까지 극단적 고립사고는 흔하지 않다. 자연을 다루고 자연과 함께하는 분야의 속성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깊게 보아 우리는 좀 더 치열하게 자연과 함께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자폐적 사고 매몰’을 극단적 생각 매몰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한다. 그것은 생각을 기계화하지 않고 자연화(생물화)할 수 있을 때를 말한다. 요즈음 우리가 기본으로 생각하는 지속가능성과 회복탄력성은 그러할 때 생각의 뼈대로서 자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이클 폴란이 헨리 데이빗 소로우에게 정원을 가꾼 것일 뿐이라 단정하는 것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생물과 기계의 차이는 드러난 그 모양이 우선 포착된다. 기계의 뼈대는 육체의 뼈대와 역학적 기능은 비슷할지 모르나 생김부터 생화학적 본질까지는 닮지 못한다. 태생적 한계는 이처럼 완전성(전체성)에 입각한 통합성의 구현에서 시작된다. 게다가 최종적으로 생물과 기계의 그 부품 같은 기능들은 미적 차이마저 던져준다. 아름다움은 언캐니 벨리를 넘어선 원본 생물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의 생각은 자연을 따라야 한다.


생각을 생각하기
생각에는 계단이 있다. 그것은 단계라고도 할 수 있다. 생각의 단계는 생각의 갈래와 깊이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한 가지 생각이라도 이를 따르다보면 수많은 선택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선택된 계단들은 그 한 생각만의 길이 되고 생각의 단계들은 저마다의 분명함으로 인해 여러 무늬를 형성한다. 쌓인 길(생각)은 무늬(생각의 묶음, 이론)의 역사가 되고 문화가 된다.

생각은 그렇게 갈래가 되고, 갈래가 된 생각은 무늬가 되며, 무늬가 형성된 생각은 그 자체가 실천이자 삶이 된다. 지난 시대 우리는 계단에만 몰두해 왔다. 다행히 그로써 수많은 종류의 새로운 계단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단계로 바꾸는 데는 실력이 부족하다. 그 해결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자 생각은 분석과 분업으로만 나누어온 그 태도를 종합과 통합의 새 장에서 되새김(rethink)해보는 것이다. 새로운 것은 없다. 그저 있는 생각에 깊이와 네트워크만 더할 뿐이다. 통합이란 그런 것이고 생각의 통합이란 아주 쉬운 실천의 방법이자 현실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모든 일은 생각에서 시작되며 진정한 생각에는 계단이 있고, 계단 같은 그 단계들을 짚어가고 넘어갈 때 그간의 생각은 다시 새로운 일을, 새로운 삶을 우리에게 펼쳐놓는다는 것 말이다. 그리고 경공환장이 우리에게는 그 계단이자 단계의 시작이 된다는 점 말이다.



연재를 마치며:  ‘경공환장’에 살아가기...

경공환장 2부는 현장을 중심으로 하였다. 쉽지 않은 사례들을 돌아보며 지금여기의 모습을 짧게나마 돌아보았다고 자평해본다. 여전히 개념과 생각은 혼란스럽고 실무와 사업은 되새김 없이 바쁘지만, 그래도 한 가지 확인한 것은 점차 체계(system)라 할 만한 흐름이 구체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혼돈 속의 복잡한 발걸음이지만 공유하고 공감하는 가치에 따라 맞물린 전체의 움직임은 공통된 방향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연재를 통해 그것이 독자에게 읽혔다면 좋겠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는 대부분 포스트모던(여전한 모더니즘)에 생각이 묶여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냥 모던을 즐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도처에 여전한 모던을 생활문화로 즐기는 것은 어떨까? 우리 아직 생각이 끝나지 않았음을 인정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경관이든, 공간이든, 환경이든, 장소든 생각이 끝나지 않은, 어쩌면 쉽게 마무리되지 않을 생각의 혼란 시기에 주저하지 말고 각자와 한계를 인정하는 통합적 접근(practice)을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런 것을 모두가 같이 고민한다면 더욱 좋겠다.



경공환장의 삶터는 꿈틀댄다! ⓒ안명준


우리는 모두 각자의 욕구(need)와 요구(demand), 욕망(desire)을 살아간다. 그것이 한 길에 모두 모여 있는 것이 우리 삶터다. 생각이 다르고 행동이 다른 것은 모두 그 때문이다. 그래도 장자가 말했듯 “도행지이성(道行之而成)”, 길은 걸어야 비로소 길이 된다. 함께 가는 길이 모두 같이 걷는 길이 될 수는 없더라도 저마다의 길을 존중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각자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거기에 아주 기본적인 소통의 수단이자 매체로서 경공환장이 오해 없이 공감되기를 다시 한 번 바래본다.

따져보면 결국 우리는 모두 경공환장을 살아가고 경공환장을 만들어간다. 이번 연재는 그것을 다시 확인하는 소중한 기회였다. 부수적으로 얻은 생각과 실천의 실마리들은 예전부터 그대로인 것도 있고 새롭게 드러난 것도 있지만 그 모두가 지금 여기와 다음 여기를 위해 빠짐없이 중요한 주제들이다. 계속 살펴볼 일이다.


현장을 먼저 보자는 이번 기획은 아니나 다를까 시간이 많이 걸렸다. 2부를 마무리하며 드러난 주제들을 어떻게 접근하고 풀어야 할지 한 짐을 다시 받아든 기분이다. 그간의 연재를 보아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2018. 9. 양재시대를 지나며,

- NewtWork.net


_ 안명준  ·  조경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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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plusg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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