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큰 ‘도시’와 이야기 없는 ″장소″ - 1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
라펜트l안명준l기사입력2017-09-12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 

Part 2: 10 장소 Ⅰ



이름만 큰 ‘도시’와 이야기 없는 “장소”

 



_안명준 오피니언리더

조경시공연구소 느티 대표│조경비평가




장소Ⅰ:  가드닝을 통한 삶터 장소화의 두 양상...


사는 방식은 여럿이다. 그러나 그 방식의 기저 중 기저에서는 결국 사는 일의 목적이 남는다. 그것에 누구나 집중하며 살지는 않지만 최소한 문화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만의 결론이 있기 마련이다. 장소는 그것을 짐작하게 해주는 하나의 방편이다. 장소 전문가는 우리 모두가 그런 생각을 포용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초월이 아니라 포월이 우리의 과제임을 장소로부터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왜 그럴까? 두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각자의 삶터 이야기, 개별로 유리되는 장소 
첫 번째 장소는 지방의 한 마을이다. 개발이 한창인 주변과는 달리 고즈넉한 농촌마을 풍경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 보조금 사업을 통해 마을정원을 만들고 그와 관련한 정원기술을 전수하는 것이 목적이다. 전문 기관과 연계되어 추진되기 때문에 마을의 상황에 맞추어 진행만 잘 되면 훌륭한 커뮤니티 가든의 사례가 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어려움이 많았는데 승인 받은 사업계획과 참여 주민 등 기본부터가 모두 재설정되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를 지도하고 감독해야 할 담당자의 문제도 있었지만 설명회에 모인 주민들도 그간의 역량강화 사업 정도로 생각한 듯 생각이 제각각이었다. 그 과정에서의 문제 해결은 이 글에서는 생략하고 마을정원 조성 과정에 초점을 두기로 한다. 진행 과정 첫 소개 이후 수차례에 걸쳐 참여 주민과 마을정원 조성 대상지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다.

먼저 강의 수강 주민들의 태도부터 정확하게 해둘 필요가 있었다. 마을정원사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정원을 만들어주는 사업이 아니고 직접 정원과 관련된 교육을 받고 개별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임을 수차례 강조하였다. 그럼에도 수강 주민들은 다른 생각들이었다. 지역 보조금 사업의 현실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교육이 본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이곳이 처음이었고 가장 큰 문제였다. 

여러 회의와 설득을 통해 먼저 마을을 대표하는 공공적인 장소에 정원을 만들고 어떻게 진행되는지 1차적으로 만들어보기로 하였다. 그 후 다음 단계로 의견을 모아 진행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 것이다. 마음이 급하기도 해서 어떻게 만들지, 즉 설계안에 대해서는 진행도 못하고 몇 군데 집중적으로 정원을 직접 만들어보는데 집중해야 했다.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생각은 또 각각 개별적으로 흐트러지는 분위기이기도 하였고 한 편에서는 의욕적으로 참여하며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려는 사례도 있었다. 하여튼 그렇게 정원은 만들어졌고 공터 주차장과 목련 쉼터가 정원으로 되살아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기본이 되는 정원의 모습과 놓일 위치의 변화, 사용할 수 있는 적합한 식물의 재료 등 ‘참여’하며 준비하는(설계하는) 과정을 충분히 거치지 못하였다. 날씨나 갑작스러운 선거, 농번기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러다보니 각자 무슨 이득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오해 아닌 오해가 생기게 되고, 마을정원, 가든 커뮤니티의 형성은 점점 어려워졌다. 교육과 리드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특히나 주민들의 성향은 진행에 가장 큰 방해요소였다. 결과물을 먼저 보여주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겠다는 판단 하에 촉박한 일정에도 정원디자이너를 모셔다가 작지만 꼼꼼하게 정원을 마무리해야 했다. 


공용공간 마을정원 조성 모습

이 과정에서 마을정원은 몇 가지 주민들의 요청사항을 반영하여 가볍게 제작되었는데 아쉽게도 주민들과 함께 설계 내용을 풍부하게 펼쳐놓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저 주어진 여건에 맞추어 플랜터를 만들고 내부 구조와 토양을 단계별로 보여주는 정도에서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1차로 마을정원은 그렇게 만들어졌고 다행히도 폭염에도 특별한 관리 없이 식재 정착이 잘 되었다.

장소는 기본적으로 이야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 방식으로 마을정원을 기반 삼는 것은 아주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정원문화가 이미 자연과 만나고 이웃과 만나는 가드닝을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장소와 사람이 만들고 맺는 이야기는 정원 활동의 활력이 되어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공간과 기능 사이의 단절된 도시공간을 개편해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이러한 과정은 첫 번째 사례에서는 힘들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 것은 삶터를 장소로 변환시키는 데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주민들의 성향이나 교육의 수준, 경제적 상황 등이 먼저 검토되고 프로그램과 지원의 수준이 짜여야 한다는 점이다. 표준 교육 모델도 없이 매칭 보조금만 내려 보내는 식의 중앙지원의 사업은 분명히 보완이 필요하다. 다양한 사례를 포용할 수 있는 마을정원 보조 사업들은 이제 충분히 경험이 쌓인 것으로 생각한다. 가로를 정원문화의 장소로 실행할 방식들을 포월할 수 있고 작지만 큰 가치를 만들어낼 표준 교육 모델도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두 번째 사례는 다른 양상을 띤다.


모여 사는 즐거움, 모두의 이야기가 되는 장소
두 번째 장소는 이미 개발이 끝나 한참 마을을 형성한 주거단지로 공동주택 주민들이 중심이 되는 마을정원 시범사업이었다. 이곳은 다행이 지하주차장이 개발되던 당시 조성된 곳으로 실외 공간에 야외 주차장이 있었지만 녹지 공간도 풍부한 단지였다. 조경도 잘 관리되고 있었고 관리사무소의 운영도 모범적이었다.

마을정원과 텃밭정원이 주제였는데 참여 주민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강의를 듣고 실습하도록 하였다. 목적과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교육 시간과 장소를 정하는 데에도 큰 어려움이 없었다. 문제는 대규모 기반시설을 주최 측에서 준비하는데 시간이 걸릴 사항이어서 아쉽지만 다른 방편으로 교육을 먼저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기존에 만들어져 있던 목재 플랜터 25개 정도가 있었고 바퀴가 달려있어 움직여 공간을 활용할 수도 있었다. 따라서 먼저 기본적인 이론 교육을 마치고 기반이 되는 대형의 텃밭 위치가 정해지고 기반시설이 조성되기 전까지는 이것을 활용한 교육을 진행하였다. 

대부분이 주민이자 가정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주 활동 및 교육 시간을 정하는 것부터 7~8월의 날씨 영향까지 고려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수강 주민들은 전반적인 상황을 잘 이해해 주었고 서로 양보하며 함께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는 것이었다. 모든 시간에 참석이 어려울 수 있으니 서로 양보해가며 정원일의 양을 조정하거나 걱정하는 모습도 보였다. 서로 잘 모르던 사이가 그렇게 가까워지고 친해지는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이론 교육이 진행되었고 실행에 맞추어 플랜터를 보수하는 과정에서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작업이 아직 없었음에도 참여 주민들은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며 어떤 정원이 될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분도 있었다. 역시 시간이 충분치 않아 도면으로 직접 설계를 진행해볼 수는 없었지만 플랜터 일부를 주민들에게 배정하여 직접 준비된 식물들로 설계(식재 배치)하며 작은 정원을 만들 수 있도록 교육하였다. 토양 상태부터 비료 섞기, 식물의 크기별 배치, 식물 심기와 멀칭까지 주어진 플랜터들을 모두 각자의 의지대로 설계해가며 작은 정원을 만들게 하였다. 작은 상자 플랜터였지만 각자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식물을 배치하였고 한정된 재료였음에도 생각에 따라 다양한 정원이 탄생하였다. 각자 만족스러웠고 또 모두 만족하였다. 작은 정원에 담긴 이야기가 그만큼이었던 것이다.

1차 플랜터 작업을 끝내고 아직 남은 플랜터를 활용하여 이번에는 텃밭정원을 만들기로 하였다. 역시 플랜터를 정비하는데 꽤 시간이 소요되었고 이후 모두 모여 작업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위치부터가 달랐다.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길 가운데에 한 줄로 놓는 것이 좋아 보였고 양쪽으로 조금씩 식재를 달리하여 통일감이 있으면서도 다양한 색깔이 보이도록 하되, 기본은 작물을 중심으로 하는 것으로 했다.



공동주택 옥외공간 마을정원 조성 모습

역시나 참여율이 좋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위치를 선정하고 심어보고, 또 바꾸어 보는 등 참여 주민들 스스로가 즐거운 가드닝을 이루었다. 특별히 교육하고 리드하지 않아도 서로들 이야기를 나누며 작은 공간이지만 나름의 이야기들을 심었던 것이다. 그리고 관리 방법까지 고려하기를 조언하였고 작물이다 보니 필요시 웃자라지 않게 수확해서 드시기를 권했다. 이후 아니나 다를까 상주와 같이 적절히 잎을 따주어야 하는 작물은 그렇게 관리되고 있다. 이제 가을로 접어들며 수확과 2차 보식을 기다리고 있다.

그 과정에서 시간에 쫓겨 충분히 설계안을 고민해 볼 수는 없었지만, 다행히도 주민 대표부터 관리사무소, 그 외 직함의 주민들과 관심으로 참여하는 주민들 모두가 서로 자신만의 의견을 강조하기 보다는 서로 듣고 조율하면서, 또 양보하면서 기다리면서 작은 정원이지만 열심히들 협조하였다. 항공사진부터 띄워두고 전문가로서 의견을 개진할 때 보여준 집중과 존중은 또 다른 체험이었다. 그렇게 각자에게 직접적인 이득이 없음에도 삶터와 마을정원에 집중하는 모습에서 우리 식의 커뮤니티 가든의 양상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장소는 이렇게 마음이 모이면 쉽게 변신하게 된다. 그것이 기반 된 모습도 정감이 담기기 마련이다. 작은 목재 플랜터를 이용한 커뮤니티 가든이지만 결코 작은 이야기뿐이지 않다. 또한 참여했던 주민들 간에도, 주민들과 관리사무소 간에도, 그리고 주민들과 옥외공간 간에도 뭔가 새로운 이야기(문화)가 형성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공동주택에서 새로운 장소와 정원문화가 만들어진 셈이다.


장소와 삶터 사이
장소는 공간과 달리 공유한다는 속성을 기본으로 한다. 우리가 사는 삶터의 공공공간들이 장소로서 기능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이제 물질로만 보던 옥외공간을 삶터로 보고 즐기려는 문화를 가지게 되어 공공공간을 대하는 태도가 예전과는 다르다. 공공공간을 개선하려는 공공사업들이 많지만 그 와중에서도 민간이 주인공이 되어 가로를 특화하여 장소성을 형성하는 사례가 많아진 것도 이 때문이다. 특징은 가로에 새로운 이야기를 각자가 주인공이 되어 장소에 불어넣었다는 점이고 그 이야기가 빼앗기면서부터는(흔히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불리는 상황) 공공공간(가로)이 쇠퇴하게 되는 경우까지 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한 가지 변화가 보이는데 장소는 이제 단순히 다양한 주인공들의 이야기로만 만족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꾸고 돌보려는 우리 각자의 본능이 우리 주변에도 그대로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마을정원은 그런 점에서 커뮤니티 가든이라는 측면으로 실행해볼 수 있는 삶터 장소화 주제 중 하나가 된다. 수많은 도시재생의 테마가 이와 관련된다는 점을 반드시 주목해야 한다.

삶터와 장소 사이에서 진화하고 있는 주인공들의 모습과 방향에 주목해야 할 때이다. 그리고 삶터와 장소를 통해 변화 이후 나타나는 모습을 삶으로 다시 주목해 피드백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장소는 그렇게 도시에서의 삶의 힌트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삶의 목적과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교육 프로그램이 종료된 것이 아니고 저작권 상의 특이성으로 인해 본 활동 사진을 메인으로 공개하지 못함을 양해 바랍니다. 정원조성에 헌신적으로 도움을 주신 윤문선, 한수현, 김지영, 성양희 작가에게 이 자리를 빌려 고마움을 전합니다. 모든 사진은 안명준 사진.
글·사진 _ 안명준  ·  조경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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