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together)하는 ‘공모’, 생각(thinking)하는 ″공모″ -2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
라펜트l안명준l기사입력2017-04-26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 

 Part 2: 06 공모(Competition) 



함께(together)하는 ‘공모’, 생각(thinking)하는 “공모”...

 



_안명준 오피니언리더

조경시공연구소 느티 대표│조경비평가




공모Ⅱ:  함께(together)하는 ‘공모’, 생각(thinking)하는 “공모”

공모는 기본적으로 ‘모두의 앞’에 놓일 수 있는 것을 묻는 작업이다. 그래서 모두가 함께 생각하는 행위인 셈이다. 따라서 정원 공모는 그것에 값하는 정원(작품)을, 또는 정원가(작가)를 찾는 일에 다름 아니다. 여러 분야에서 공모가 많아지고 있는 요즈음, 우리에게 공모는 무엇인지, 무엇이어야 하는지, 나아가 우리 시대 공모는 그에 걸맞는 질문을 던지며 작가와 작품을 기다리고 있는지 되물어 보자.



‘함께하기’는 누가 하는가?

공모는 기본적으로 “함께하는 생각하기”이다. 여기서 생각하기에 앞서 함께하기는 누가 해당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간단히 ‘함께할 수 있는 자’일 것이다. 전문가들이 주가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겠고, 일반인들과 함께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 여기서 우리는 전문 분야 내에서의 공모에 대한 부분은 논외로 하기로 하였으므로 일반 공모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이는 특히 근래의 정원 공모전들이 가진 위상과 그대로 연결된다.


정원 공모전에서 함께하기는 정원문화, 정원산업이 성장의 과도기에 있는 우리의 실정을 살펴볼 때 관련 전문가, 아마추어, 애호가, 단체, 재야 학자, 행정 등 여러 주체가 특성에 따라 관여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체계적인 ‘함께 생각하기’보다는 행사의 원활한 진행과 성공적인 개최 중심으로 논의의 초점이 옮겨가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생각된다. 주제가 제시되는 공모전의 경우에도 이는 다르지 않으며, 형식적인 문제 토의와 전망 모색이 대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정원과 같은 표현의 대상을 주제로 다룰 때는 그 접근의 주체가 그에 대한 충분한 사전 지식과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 시대 정원 공모전이 이러한 모습으로 출발하고 있는지부터가 고민의 숙제가 아닌가 싶다. 주어진 주제에 좀 더 치열하게 다가가는지, 그 과정과 결과는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는 투명한 진행이 필요하다. 그러한 고민과 진행을 염두에 준 주최 측의 입장이라면 공모에서 함께하기는 우선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주제를 선정하는 과정과 공모를 진행하는 과정, 심사와 시공 그리고 전시하는 모든 과정에서 함께하는 주인공들이 주어진 주제에 집중할 수 있는 조건과 배경이 있어야 할 것이다. 공모의 주제는 단순히 정원의 프로토타입을 요청하는 방향설정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적 위상과 문화적 방향을 묻는 섬세한 작업이다. 좋은 질문에 좋은 답이 따르기 마련이고 집요한 질문과 천착한 해답이 모두에게 감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할 때 함께한다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고 그러한 과정을 모두가 함께 즐긴다는 기본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공모는, 특히 정원과 같이 실물의 조성과 일반 전시를 목적으로 하는 공모는 각 단계마다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여러 형식과 방식의 통로(channel)와 소통(communication)이 필요하다. 각자가 생활을 통해 접할 수 있는 문화의 하나로서 정원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커다란 공동의 실험이라는 태도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함께하기는 그러할 때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생각하기로 이어질 것이다.



주인공들이 함께하는 정원 생각하기 모습 ⓒ안명준



‘생각하기’는 누가 하는가? 어떻게 하는가?

주어진 주제에 대해 각자의 위치를 확인한 후에는 저마다의 입장에서 생각을 전개해 볼 수 있다. 주어진 주제에 대한 창의적인 생각의 과정을 중심으로 평가의 방법을 고민하게 될 심사위원 부터, 안전한 조성과 독창적인 작품 전시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잔치가 되도록 지원해야 하는 주최 측 또는 주관 측의 담당자들, 제한된 조건 하에서 작품으로 생각을 표현해야 하는 참여 작가들과 탈락했지만 애정을 가지고 이 시대 작가들의 해결책 찾기를 고대하는 예비 작가들, 그리고 전시를 고대하며 어떤 결과를 보게 될지 기대하고 있을 관람객까지 모두가 저마다의 입장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제시된 주제라는 통일되고 공통된 한 가지의 주제로 서로 엮이며 모르는 새에 함께 생각의 장에 포함되게 된다.


당연하겠지만, 생각하기는 누가 하는가, 생각할 수 있는 자가 할 것이다. 주제와 관련된 모든 주인공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저마다의 생각을 가지게 되며, 이것은 전시가 시작됨과 동시에 모르는 사이 ‘소통을 기다리는 먼저 가있는 의미’가 된다, 감성이 된다. 


생각의 충돌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각자의 함께하기가 각자의 생각으로 구체화되고 그것이 표현된 작품을 통해 비교되고 진화하게 된다. 전시의 관람은 그러한 행위가 이루어지는 기본적인 행위이자 새로움을 발견하는 미적 장이 된다. 각자의 입장에 따라 평가의 방식과 결과가 나타나게 되고 그것이 소통되거나 개인적 감상으로 남거나 하는 등 여러 미적 교류를 이루게 된다. 여기서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되는 것은 심사위원과 작가들이다. 그들은 단순히 주어진 주제에 대한 표현의 가치를 평가하는 수준을 넘어 그것이 가진 시대적 가치와 저변에 놓인 심층적 의미를 정원이라는 결과를 통해 재발견하게 된다. 당연히 여기에서 피곤한 작업 과정도 잊은 채 다른 작가들의 표현과 심사위원들의 평에서 새로운 생각의 방향과 생각의 장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생각하기는 따라서 거기에 참여하는 각자의 입장에 따라 각자의 위치만큼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이러한 다양함은 각자의 생각의 차이를 단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소통 또는 교류하게 되면서 전반적인 정원 문화를 향상시키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전시와 여러 행사를 통해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심사자들의 평가를 통해 그 일차적인 방향성이 드러나게 된다. 일반 공모의 심사는 따라서 생각을 교류하게 하는 매개체 역할을 해야 한다. 


일반 공모에서 심사는 결과의 교류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 이때 심사의 공정성은 목표의 명확함을 전제로 한다. 주제를 발굴하고 제시하는 과정부터 심도 있는 생각하기가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 분야에서의 공모와 구별되는 이러한 생각하기의 입장차는 아직 우리에게 보편화 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진행을 추진하는 여러 주체가 우리 식의 정원문화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깊이 있게 고민하지 못하고 기존의 방식을 답습하는 모양은 그간 주어진 주제만 살펴보아도 충분히 이해할만 하다. 만약 그러지 않다고 한다면 그에 합당한 교류의 방안이 고민되고 설명되고 널리 알려져야만 한다. 공모 요강에 표현되는 몇 줄의 주제 선정 사유 정도로는 부족한 셈이다.

  


공모전 심사모습 ⓒ안명준



그래서 ‘공모’는 누가 하는가?

그렇다면 공모는 누가 하는가? 공모할 수 있는 자가 해야 한다. 공모는 ‘함께하기’와 ‘생각하기’를 기본으로 하는 자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고, 공모는 그들을 아우르며 앞을 조망하는 준비하는 자여야 한다. 그래서 공모는 할 수 있는 자만이 해야 한다. 그러할 때 공모는 문화가 되고 역사가 된다. 공모는 모두의 것이다. 특히 우리시대 정원 공모는 정원문화의 성장을 그려가는 과도기의 시점이므로 더욱이 그러하다. 또한 디자인 과정과 결과는 문제에 대한 위선적 태도가 아닌 진심어린 해결 노력과 과정에 그 가치가 있음을 공유해야 한다. 장인정신이 기본인 경쟁인 것이다.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모여서 함께하는 것도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공모는 그것과는 다른 차원을 가진다. 공모는 주제와 조건을 가지며, 일정한 지위를 가진다. 공모는, 공모를 이끄는 주인공은 함께 하기도 누구나 하기도 하지만, 공모 자체는 하나의 독창성을 논할 수 있어야 한다. 일회성 작품을 다루는 경우는 특히 그러하다. 작품만 뽑을 것이 아니라 개별 공모가 스스로 항상 독창적인 ‘공모(시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공모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우리 시대 공모는, 공모를 이끄는 주인공은 분명히 ‘자신 스스로를 교육’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공모에서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찾으면 찾는 만큼 그 스스로도 “나는 나만의 방식에 있어서 시초”라는 기반이 있어야 할 것이다. 브루스 마우가 시대를 꿰뚫으며 “벡터를 결정하는 경계”, “이것은 디자인이기보다는 레서피”라며 새로운 장을 열어준 것처럼.


지금의 우리 공모 형태는 역사와 뿌리가 얕다. 한 가지 힌트는 사람을 뽑는 공모는 깊은 역사와 뿌리가 있다는 점이다. 생각해 볼 일이다.

_ 안명준  ·  조경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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