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조경_ 옴스테드와 보의 사잇생각: 테크네 ‘조경’(下)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_3회
라펜트l안명준 조경비평가l기사입력2013-02-15

경공환장(景空環場):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

  

03조경_ 옴스테드와 보의 사잇생각: 테크네 ‘조경’(下)

 

조경, 짓기의 다른 정체성(이름)

근대 조경을 말할 때면 우리는 항상 조경의 본류로서 정원을 이야기하곤 하는데, 살펴보았듯이 사회적 서비스로서 조경이 설정되던 당시에는 근대 정원은 형식(design reference)적 고려 이상의 역사적 연속성을 유지하지 못한다. 도시의 새로운 요청이자 사회적 서비스로 구체화된 조경이 전통적 정원만들기와 대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설정되었다는 점을 상기하면서,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에 담긴 근대 건축(아키텍춰, )은 어떠했는지 살펴보자.

 

먼저 우리는 건축이 학문과 직업에서 다르게 등장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 말하듯 건축가는 노동자가 아니라 노동자의 지배자였고, 기예가 아니라 지식에 기여하는 부류라고 지적한다. 전문업이 세분되기 이전에 건축은 지식과 학문에 더 가까웠던 셈이다.

 

스피로 코스토프(Spiro Kostof, 건축사가)는 건축가의 임무가 예나 지금이나 제안한 건물이 어떠한 것이어야 하며, 어떻게 보일 것인가 소통하는데 있다고 지적한다. 건축가는 건물을 창시하지 않고 또 시공의 육체적 활동에 반드시 참여할 필요도 없다. 건축가(직능인)의 역할은 의뢰인(client) 또는 패트런(patron) 등 짓기를 결정하는 부류와 노동자와 감독자 등 시공자(builder)라 부르는 부류, 이 둘 사이를 중재하는 것이라 강조한다.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전문가 또는 직능인과 가까운 건축가가 등장한 것은 1550년 무렵으로 조르지오 바자리가 당시의 예술가 100인을 나열하며 건축과 관련된 7명을 기술한 것이 지적된다. 그러나 이들이 지금의 독립된 건축가 개념은 아니었고, ‘조각가이자 건축가’, ‘화가이자 건축가또는화가 + 조각가 + 건축가등 여러 분야를 다루는, 해부학까지 통달해야 했던 지식인 그룹에 속했다고 할 수 있다.

 

과학이 발전하고 기술이 다듬어졌던 르네상스 이후 산업혁명 때까지도 건물은 모든 부분이 주문 제작되었는데, 이때 부품처럼 재료들을 시공자에게 정확하게 지시할 필요가 있었다. 모양뿐만 아니라 크기와 조립 방법까지 재료들을 선택하고 배치하면서 건물이 완성되는데, 그 역할을 하던 것이 건축가였던 것이다. 요컨대 건축가 역할의 시작은 수많은 사회, 기술, 경제, 예술의 문제를 통합하는조정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14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왕실 차원에서 건축가를 지원하였는데, 17세기에는 건축 직능이 명확해지자 공적인 교육을 위해 건축아카데미가 창설되는 등 실무와 교육에서 사회적 위상이 분명해졌다.

 

근대적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 최초의 영국 건축가는 17세기 중반에야 나타났으며, 경제가 성장하고 도시가 발달하면서 18세기에는 악보처럼 건축 설계안을 출판하기도 하였다. 이때부터 건축가들끼리 공개적으로 경쟁하며 자신의 설계안을 팔아야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건축가가 사회적 직능으로서 자리 잡아 가면서 단체의 설립과 표준화된 교육이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여러 직능 단체와 서베이어(surveyor) 같은 유사 직종간의 경쟁을 거치며 1834년에는 영국건축가협회가 설립되기에 이른다.

 

산업혁명기를 거치고 신대륙을 개척하는 등 세계사적 격변기를 거치면서 건축가의 역할은 확대되었는데 도제를 뛰어넘을 전문 조직과 교육에 대한 욕구가 날로 커지게 된다. 19세기 중반 일반 교육과 대중의 관심이 커지면서는 건축 저널리즘까지 등장하기에 이른다. 이후 도제식 건축가 교육이 보자르식 교육으로 확대되면서 칼베르 보와 같은 교육받은 아키텍트가 배출되기 시작하고, 교육 방식에 대한 고민과 실행들은 끊임없이 진화하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여기서 재밌는 것은 근대 직능 설정기에 자칭 건축가라 했던 전문가는 존 슈트(1563), 자칭 조경가라 했던 전문가는 칼베르 보(1863)였다는 점이다. 개인의 차원에서 보이는 300년에 가까운 직능 자각의 간극이 직능 단체인 영국건축가협회(1834)와 미국조경가협회(1899) 65년의 차이로 줄어들게 된 것이다. 단체의 설립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이것이 직능의 사회적 위상을 말해주기 때문이며, 건축가와 조경가 단체의 설립이 그리 먼 시차를 보이지 않는 것에서 많은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는 근대적 의미의 건축가가 고전적 의미의 건축가와 분명하게 구별되었다는 점이다. 더 이상 조정자로서 건축 직능이 유지될 수 없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디자인과 경쟁을 중시하는 보자르식 교육이 한몫하였다고 본다. 근대적 전문업 교육 방식은 지식인으로서의 건축가 양성보다는 그들의 전문적 활동을 디자인에 초점을 두게 하고 실천(practice)보다 아이디어와 개념 창조, 그것의 도면화(시뮬레이션)에 집중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지식의 창조와 중개 역할이 아니라 디자인의 창조와 경쟁으로 직능의 깊이로만 흐름을 바꾸게 한 것이다.

 

65년의 시차는 이후 디자인 중심의 교육과 세분화된 분야 발전으로 모더니즘 이후의 건축 직능이 지식과 기술의 통합 역할을 계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독제적 거장(magister operis)이 아닌 민주적 대표자(primus inter pares)”가 될 수 있을지 오늘날 여기저기서 의심스러운 상황과 조우하는 것도 이때부터였던 셈이다.

 


뉴욕 센트럴파크 가이드맵 복원판(1875년)

 

옴스테드 조경의 제 모습, 테크네(techne)

돌이켜 보면, 옴스테드와 보의 충돌은 낭만주의(예술)와 실용주의(기술)의 대립이었고, 조경(어바니즘)에 대한 문제제기였다고 볼 수 있다.

 

옴스테드는 센트럴파크를 통해 벽돌과 몰타르의 사막 속에서 아침저녁으로 행복한 삶이 있는 오아시스와 낙원을 꿈꾸었고, 보가 지적하듯 공원 설계안에는 인간적 요소가 중요한 것이었다.

보는 자신과 옴스테드의 작업이 여타 건축가들이 할 수 없는 특이점이 있다고 보았으며, 경관을 창조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전문가로서의 자부심과 차별성을 인정받고자 했다.

 

이러한 둘의 사잇생각이 근대 조경을 설정하는데 주효했으나 정체성을 분명히 하지는 못한 채 직능과 이론이 시작되게 하는 한계도 있었다.

 

그들의 문제의식은 20세기 초 조경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이론화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그 중 하버드 조경학과 학생들의 활약은 현대 조경의 밑바탕이 되었다. 특히 가렛 에크보는 주목할 만한데, 이때부터 조경이 타분야와 구별되면서 소통할 수 있는 구체화된 이론과 실천 수단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옥외실(outdoor room)’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는데, 이로써 기능적 공간 구분이 가능하게 되었고, 나아가 이것에 입각한 입체적 조경설계 방식도 도입되게 된다.

 

또한 그는 조경을정원, 공원, 근린, 공동사회, 지역 등의 질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디자인 과정이며, 현존하는 모든 힘의 연속, 통합, 연계의 예술이며, 건축과 같은 순수한 독창적인 개념의 예술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개인정원, 공공공지(public grounds), 파크, 전문가의 협업, 이 네 가지를 주로 다루면서 경관의 질을 결정하는 구조물, 오픈스페이스, 자연요소, 비품류(옥외시설) 등 물리적 경관요소간 관계를 중시하는 분야라 설명한다. 이에 대해 로렌스 할프린은당시 조경 분야를 개인정원뿐 아니라 공공영역, 도시설계, 지역계획 등까지 확장시킨 것에 의의가 있다고 평가한다.

 

에크보를 먼저 살펴본 것은 그가 전문업으로서 근현대 조경의 근간을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기술 영역과 사회적 서비스의 범위, 이론화의 방향까지 모두 녹아있으며, 20세기 조경은 그 틀에서 성장하게 된다. 이후 많은 조경가들이 과학과 예술의 두 분야를 오가며 조경 이론을 발전시키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에크보의 설정을 염두에 두고 조경 이론의 세부적인 성장 과정을 건너뛴 채 20세기 말 조경에 대한 평가로 눈을 돌려보자.

 

한 시대를 마감하는 시점에 다이애나 발모리는 그렇게 성장한 조경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전문 분야로서의 조경은 종말을 맞은 것으로 보인다. 조경의 한 가장자리는 이미 건축가와 환경예술가의 차지가 되었다. 생태분야 또한 엔지니어에게 점령당했고, 생태학은 조경설계에 진정한 영향을 끼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조경 분야는 그 핵심을 찾지 못했다. 조경의 중심을 규정하지 못한 것이다.” (1998년 다이애나 발모리, 존 비어즐리와의 대화)

 

마크 트레이브(Marc Treib)는 심지어 20세기 조경이 도시설계와 건축의 매트릭스를 마련하기는커녕건물과 건물 사이에 식물 완충제를 투입하는 것조차 버거워했다고 혹평하기도 한다. 지난 20세기 조경이 괄목하게 성장하였음에도 이런 평가가 내려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나 재밌는 것은 한 시대를 시작하던 시점에 슈마혼(R. Schermerhorn, Jr.)도 비슷한 지적을 한다는 점이다.

 

조경 전문업은 지난 세기 동안 현저한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조경가들은 이러한 발전이 점증하는 사회적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여전히 안개 속을 헤매고 있다. 전문업으로서 확립된 위상을 차지하지 못한 것이다.” (1932년 슈마혼)

 

시차를 두고 같은 평가가 반복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다시 말해 혹평 속에서도 조경이 사회적 직능으로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것은 왜일까? 우리는 이 점에서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다시 옴스테드로 돌아가 보자. 그가 설정한 조경이 어떠했는지, 왜 그토록 건축도 가드닝도 아니라고 강변했는지 다시 살펴보자. 찬찬히 살펴보면, 어쩌면 거기서 잊혀졌던 테크네(techne, --술의 통합)를 꿈꾸는 옴스테드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부활하지 못한 테크네가 끊임없이 조경에 문제제기하며, 조경을 재설정하고, 조경을 성장시키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

 

조원(gardening)과 조경(landscaping)의 통합(integration)을 위하여

그렇게 설정된 조경이었기 때문에 조경가들의 도시에 대한 관심은 옴스테드 조경이 가졌던 낭만주의적 성격을 배경으로 도시사회에 반향을 일으키면서 도시설계, 도시개혁, 도시개량 등으로 확장된다. 1929년에는 도시계획이 조경학에서 분리되며 하바드대에 도시계획학과가 개설되기에 이른다.

 

우리는 다시 현대 조경이 21세기에 들어서며 새로운 전기에 들어섰음을 목도하고 있다.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조경이 사회적 기능(공공성) 면에서 우선권이 있음을 인정한다면, 이제 기술로서의 조경보다 공공 영역과 시민 사이의 사회적 중재자 역할에 보다 집중할 필요가 있다. 다행스럽게도 현대 메트로폴리탄은 그것을 수용할 방법론과 실천 사례들을 충분히 경험하고 있다.

 

하나의 출발점으로 우리는 도시의 건물이 도시의 얼굴을 읽을 수 없게 만들었다는 반성을 곱씹어봐야 한다. 이것이 도시의 표정을 다채롭지 못하게 만들고 장소성을 미루게 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조경은 도시의 미세한 표정을 다루는 중요한 수단이다. 시각에 집중하는 문화를 감각(공감각)을 소통하고 느끼는 도시문화로 바꾸는데 조경의 중요한 임무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니까 여전히 조경()은 도시적 역할을 가진 전문분야로서 혹평 속에서도 끊임없이 의미 있게 고민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앙리 르뻬브르의 말에 주목해보자. 그는일상이 작품이 되게 하라! 모든 기술이 일상의 이러한 변모에 기여하게 하라!”, “자신을 알고, 자신을 이해하고, 자기 자신의 조건들을 재생산하고, 자신의 자연과 조건들(육체·욕망·시간·공간)을 전유하고 스스로 자신의 작품이 되는 그러한 행위를 요청한다. 그것은 스스로를 가꿀 줄 아는 가드너의 자세를 말한다.

 

우리시대 가드닝에 대한 사회적 요청이 충분하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우리시대 조원과 조경은 그렇게 도시의 표정을 가꾸는 통합 직능으로 재설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연재필자 _ 안명준 조경비평가  ·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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