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경관_ ‘그리드락 쏘싸이어티’: 카오스모제의 ‘경관’(下)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_5회
라펜트l안명준 조경비평가, 나창호 기자l기사입력2013-03-22

매체가 된 경관, 도시경관의 그리드락

 

무엇보다도 경관은 땅의 개념이란 점을 기억하자. 그리고 주인공들의 시대, ‘미적인 것의 시대가 이야기를 소환하고 있음도 기억하자. 그렇다면 우리시대 경관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고, 어떤 이야기를 담아야 하는 것일까?

 

잘 알겠지만 해답은 한두 가지로 모아지지 않는다. 그것은 경관이 다양한 의미와 국면을 가진 개념이기 때문이다. 경관에 대한 많은 입장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황기원의 구분은 중요한 기준이 되어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는 경관을 세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고 지적하며, 그렇게 보고 실천하는 것이 모두 조경이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하나는 경관을 경치로 보아보기 좋게 꾸미는 것(조경)’이고, 또 하나는 경관을토지로 보아 쓸모 있게 다루는 것(조경)’이며, 마지막 하나는 경관을환경으로 보아 건강하게 가꾸는 것(조경)’이다. 경관의 국면을경치, 토지, 환경으로 보는 것은 우리 시대의 혼란한하이브리드들을 세로지르는 탁월한 구분일 수 있다.

 

그리고 이제 여기에 땅과 경관을 대하는 한 가지 국면이 더 추가된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최근의 경향들이 땅과 경관을 시각적으로 단순화하여 접근하는 것에 그 단서가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근현대를 지나며 성장해온 계획설계의 역사가 담겨있기도 한다. 디자인 대상들은 일단 인간이 다룰 수 있는 매체로 변환되는 과정을 거치는데, 경관 또한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게 된 셈이다. 땅만을 예로 들자면 땅이 가진 측면은 한두 가지로 쉽게 정리되지 않는데, 디자인의 대상이 되면서부터 땅은 몇 개의 선과 색으로 번안되어 다루어지게 된다.

 

즉 경관은 디자인을 대상으로 소통되면서 시각적 측면이 먼저 단순화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이를 통해 건축과 토목 등 유관 분야들과 혼성이 가능하게 되었다. 잘 살펴보면 조경이 가드닝 중심이던 시절에는 쉽지 않았던 일이다. 쉽게 공감되지 않을지도 모르나 한 가지만은 분명한 것 같다. 황기원의 세 가지 경관 국면에경관을 매체로 보아 모두 함께 얘기하는 것(조경)’으로 확장된 것만은 말이다.

 

경관을 이처럼 디자인 대상으로 한정한 것은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가진 근대 경관(연구와 실천) 진화의 과정이었다. 따라서 경관이 도시의 중요한 인프라로까지 논의되고 인접 분야와 경쟁하며 소통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코스그로브의 지적처럼 도시는 자본주의와 경관을 탄생시켰고, 또 성장시키기도 했다. 이 둘이 교호하며 형성한 우리 도시의 브랜드스케이프는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문제는 이것이 경관을 옴짝달싹 못할 만큼 옥죄고 있다는 것이다. 보기 좋은 도시경관을 만드는데 우리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경관이 디자인의 대상이 되면서 한 번에 보기 좋게 바꾸려는 강력한 디자인도 문제이겠지만, 욕심의 그리드락에 갇힌 현대 경관도 문제는 문제인 것이다. 이것을 해결할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 모두의 지혜가 필요한 부분이다. 여기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결국 ‘landscape’는 사실 ‘lifescape’이라는 것이다.

 


"코스그로브의 지적처럼 도시는 자본주의와 경관을 탄생시켰고, 또 성장시키기도 했다. 이 둘이 교호하며 형성한 우리 도시의 브랜드스케이프는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금여기’의 경관, 카오스모제의 풍경

 

다시 말하지만 이제 새로운 경관은 실체가 아니면서 실제적 효력을 가지므로 실효의(virtual) 관점을 추가해야 한다. 따라서 새로운 경관은 인프라 먼저라기보다는 여전히 생성적 자연(또는 자연적 생성)의 일부여야 한다. 또한 경관은 환경의 외피가 아닌 우리 공간의 바깥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경관은, 특히 도시의 경관은 장소들의 마당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쉽게 놓치는 것, 경관은 대상이기는 하나 아직까지는 재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에서 문제와 다툼이 발생한다. 도시의 대상이기도, 장소의 대상이기도 하여 누구나 말하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지만, 무엇으로 직접 만져가며 이야기할 지는 어려운 문제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경관에 대한 수많은 결과들이 있지만, 여전히 경관에는 아직도 연구할 사항이 많다. 게다가 매체로까지 확장하며 개념 자체가 진화하고 있으니 뭐라 쉽게 규정하기 더욱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우리가 경관을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경관은 도전해볼 가치가 있는 젊은 연구 대상이다. 이제 수학처럼 경관에도 어떤 원리가 담겨있다면, 몇 가닥의 세부 분화와 진화가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그것이 또 다른 합리성을 부여하자는 것은 아니다. 지난 시대 생산성에 집중했던 테일러리즘을 도입하자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삶의 가치에 보다 집중하고 아름다움(미적인 것)을 보다 확장하는 측면에서 우리시대 경관의 카오스모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복잡하고 어려운 일일 것이다.

 

수레 위에 공자 없다고 했던가, 욕심의 도시경관은 흐려진 삶과, 희미한 철학 속에 메트로폴리탄을 횡행하고 있다. 도시 구성물들의 복잡한 소유 관계와 그것들 사이의 충돌은 혼란과 어수선함만 계속되게 할 것이다. 하워드가 꿈꾼 도시가 이랬을까? 꼬르뷔제가 꿈꾼 도시가 이랬을까?

 

그래도 우리는 경관 앞에 기죽을 일이 아니다. “폭우에 목욕하고, 강풍에 머리 빗는”(묵자) 호연지기와웃음으로 저항할 수 있는 본능”(베르그송)으로 우리시대 주인공으로 각자 행복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 누구 하늘에 당신 이야기를 담아볼 사람 있는가?? 

연재필자 _ 안명준 조경비평가  ·  환경조경나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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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plusgan@gmail.com
사진 _ 나창호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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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_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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