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공모_디자인 경쟁시대: 신사들의 잔치 ‘공모’(下)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_6회
라펜트l안명준 조경비평가, 이형주 기자l기사입력2013-05-10

두 경쟁의 입장: 문화적 경쟁과 본능적 경쟁

 

생각해보면 경쟁은 두 가지의 입장을 가진다. 하나는 생물학적 본능의 차원에서이고, 다른 하나는 문화의 차원에서이다. 경쟁이 고민되는 우리시대에 이 두 가지로부터 성찰의 기회를 얻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생물학적으로 경쟁은한 군집 내에 같이 살고 있는 다른 종 또는 같은 종 사이에서 자원이 부족할 때, 개체들이 자원을 서로 차지하려고 하는 것을 뜻한다. 한정된 자원과 충분하지 못한 조건들이 생존의 차원을 먼저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본능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경쟁인 것이다. 살기 아니면 죽기가 되는 경쟁이므로 모두를 생각하기 보다는 각자가 우선이고 규칙도 무의미해질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문화적인 차원에서의 경쟁은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모두의 고민이자 노력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공유와 공정한 경쟁을 기반으로 한다. 문화화된 인간 활동으로서의 경쟁은 그러므로 인류를 풍족하게 하고 성장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화적 경쟁의 다른 말은함께 즐기기이다.

 

‘competition’ ‘competere’에서 온 말로대립 관계에 있다(be in rivalry with)’라는 뜻과 동시에함께 추구한다(seek together)’는 의미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경쟁을 즐기지 못하는 시대적 단상은 본능 수준의 경쟁에 모두가 매달려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상황이 당장 우리 주변에서 표절과 같은 논란과 문제들을 양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양심이 먼저 적과 동침해서는 안 될 터이나 이미 생물학적 경쟁이 만연한 분위기 속에서라면 사태는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의료 윤리, 연구 윤리가 우리 사회에서 이슈가 되었듯, 어쩌면 이제디자인 윤리를 가르치고 배우며, 제재해야 할 덕목으로 부각시켜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 만큼 전문가들의 자기 성찰이 남루해진 것은 아닌가 생각해볼 문제이다.

 

디자인은 문제에 대한 위선적 태도가 아닌 진심어린 해결 노력과 과정에 그 가치가 있다. 당선을 먼저 생각하는 경쟁은 그러므로 경쟁이 아닌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싸움이란 규칙이 무의미한 방식으로, 규칙과 윤리, 창의성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며 디자인조차 그렇게 만들어버리는 태도이다.

 

공모는 싸움이 아니다. 내가 얻기 위해 남보다 나아져야 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발견하거나 또는 주어진 문제에 대해 진심으로 고뇌하여 최선의 해결책을 찾고자 고민하고 노력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디자인(설계)이 예술의 하나인 것이고, 조경이 종합과학예술이라 정의되었던 것이다.

 


시민이 투표를 통해 직접 공모전 심사과정에 참여했던 '제3회 신진조경가 대상 설계 공모전'

 

신사들의 잔치, 즐거운 공모()을 위하여

 

공모는 필연적으로 공모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그 성패를 좌우하게 된다. 공모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응모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공모전을 운영하고 공개하며 향후 그 작품을 실현해가는 모든 주체들까지 광범위하다. 이들 모두가 하나의 작품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공모는 잔치를 위한 경쟁이어야 한다. 뒷말 필요 없이 서로의 고뇌와 고통을 공유하며 모두가 성장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러할 때 전문가들의 경쟁은 신사들의 잔치가 될 수 있다. 신사(gentleman)는 그 행실의 친절함에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신사의 행실은모두를 위한 것을 먼저 생각하고, 나를 낮추며 양보할 줄 안다는데 핵심이 있다. 신사가 된 전문가들의 열띤 생각 경쟁과 당선작에 대한 힘 있는 응원이 공모 축제와 우리 도시를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할 것이다. 그러할 때 공모가 모두를 위한 성장의 발판이자 담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공모는 기본적으로 함께 추구하고 고민하여 새로운 방향을 찾는다는 축제와 잔치라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옴스테드와 칼베르 보, 베르나르 츄미와 렘 콜하스 등 유수의 당선작 설계가들이 고민하며 내놓은 우리 도시의 시대적 방향성이 두고두고 재논의 되는 것도 그 때문 아니겠는가.

 

요컨대 싸움을 즐기는 문화는 폭력적이다. 승자와 패자 모두 즐기며 재밌는 싸움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것이 생존과 관련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사활을 걸고 싸우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재미인지 고민하게도 한다. 그렇게 싸워 남는 것이 무엇일지 모두에게 되묻게 되는 상황이 지금의 우리 모습은 아닌가 싶다. 그러므로 여러 공모전이 많은 지금, 문화로서의 공모를 함께 고민할 때이다.

 

하나 더, 이 세상 모든 무늬와 문양, 장식은 그 안에 담긴 노력과 고뇌를 상징하고 표상한다. 장인의 작품일수록 그것은 더욱 그렇다. 어쩌면 우리는 장인이 없는 전문가의 시대를 먼저 반성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연재필자 _ 안명준 조경비평가  ·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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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plusgan@gmail.com
사진 _ 이형주 기자  ·  환경과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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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am@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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