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예술_생각의 에코톤: 테크네의 장소성, ‘예술’(上)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_8회
라펜트l안명준 조경비평가l기사입력2013-06-14

예술하면 순수성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숭고한 예술가들의 작품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하며, 잔잔한 선율과 작은 장식품은 일상을 미적 감성에 빠지게 하기도 한다. 뭔가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해주기 때문인데, 미적 감흥(경험)은 예술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우리시대 예술과 멀리 있지 않은 조경이 어떤 순수성과 예술적 위상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

 

조경은 예술인가? 예술 같은 디자인인가?

 

지난 세기 우리는 예술의 성장과 혼란을 다각도로 경험한 바 있다. 모더니즘 시대에 폭발적으로 성장한 예술과 얼마 지나지 않아 폭발 후 사그라지듯 선언된예술의 종말(the End of Art)”, 해체주의로 정리되곤 하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거쳐 온 것이다.

 

단토의 진단이 잘못 되었던 것일까, 종말이 고해졌음에도 예술은 그 뒤로도 활발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다. 나아가 종말을 고했던 단토 그마저 30여년의 시간이 지난 후 본인이 나서서 예술 종말 이후를 살피며 새로운 예술의 정의를 손수 찾아 나서기도 한다. 아니나 다를까 예술은 종말을 맞은 것이 아니라 사실 새로운 시작이자 새로운 가능성으로 지금까지도 재발견되고 있다.

 

이것은예술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직까지보편적 규정이 존재하지 않음을 강변해 준다. 그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학자들은 예술의 정의를 꾸준히 새롭게 모색하며 시대마다 진화하는 예술작품들을 예술 개념에 포함하려 노력하였다.

 

전통적으로 예술은재현(representation)’으로 이해하는 입장이 먼저였다. 관념 속의 물체나 개념을 그대로 만들어내는 것으로 본 것이다. 다음으로는표현(expression)’으로 이해하는 입장이 뒤따랐다. 예술가의 내면적 감동을 모두에게 보여주려는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재현이나 표현이나 무언가 대상을 두고 예술작품이 그것을 표상한다고 본 점은 동일한 입장이다.

 

추상 미술이 탄생한 근대 이후 예술에 대한 이 두 가지 입장은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칸딘스키와 같은 추상화가 작품은 예술작품인데 무엇을 재현 또는 표현했는지 설명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여기에서 예술에 대한 세 번째 입장이 나타난다. 예술을 미적 경험을 주는 작품 자체의 제작, 형식(form)’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에도 한계는 있어 형식주의(formalism)가 무언가의 모방이라는 전통적 예술관을 벗어나게 했다는 의의는 있지만 모든 예술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이 여전했다. 공산품과 미술관의 작품이 비슷한 재질과 형태를 가지는데 작품으로 따로 구별하는 것은 어딘지 어색하기만 한 일이니까.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예술을 예술로 규정해주는 암묵적인제도(institution, 또는 체제)’를 상정하는 이론까지 전개되었다. 이른바제도로서의 예술이라는 입장으로 예술작품이라는 자격을 주는 사회적, 문화적 조직이나 사람들이 있고, 작품의 가치뿐만 아니라 작품제작, 전시, 작품유통 등까지도 포함되는 암묵적 예술계가 예술을 예술이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20세기 예술론의 변화 속에서 조경은 어떤 입장을 가졌을까? 아쉽게도 모더니즘 시대의 조경은 사회적 서비스로 그 위상이 형성되던 시기여서 예술적 입장으로 하나의 관점을 형성하거나 사회적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였음을 인정하여야 한다. 그러다보니 예술의 한 분야 또는 한 장르로서 조경은 모더니즘 직후에는 자리를 잡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다. 단지 공공 서비스의 하나로서 사회적 위상을 다지는 시기를 한 동안 보내야 했다고는 할 수 있겠다.

 

다행인 것은 1980년대를 지나면서 정원의 가치와 공원의 가능성이 사회적으로 새롭게 부각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후 조경이 사회 서비스로서 분명한 위상을 획득하였다는 점도 주목할 수 있다. 조경가들의 활약이 곳곳에서 중요해지면서 점차 예술에서 멀어졌던 조경이 그 옛날 정원 시대의 예술관과 가까워지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급기야현대 조경의 발전에 조경비평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진단까지 있으니 조경과 예술의 간극을 유의미하고 세심하게 살펴야 할 시점인 것은 분명하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조경예술이 아니라 정원예술이 조경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과연 현대 조경이 앞의 네 가지 예술의 입장을 이해하고(수용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적절한 미적 성취를 이루어낼 수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그간 대지미술, 포토몽타주, 재료의 물성 이용 등 예술에서 사용되는 기법들 또는 결과들을 차용하는 정도의 조경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볼 대목이다. 또 지금 우리가 조경만의 예술적 가치를 이야기할 수 있는지도 함께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닌가도 싶다. 현대 조경 담론의 출발은 여기부터가 아닐까.

 


Spiral Jetty_Robert Smithson(1970)

 

조경가는 아티스트(artist)인가, 아티장(artisan)인가...

 

여기에서 우리가 오해하지 않아야 할 부분이 있다. 예술학의 대상으로서의 예술과, 미학의 대상으로서의 미를 동일하게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이문의 지적대로예술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것이 반드시 미적 존재가 아니며, 미적 존재가 반드시 예술의 범주에 속하지는 않는다.”는 점 말이다.

 

예술의 역사와 진화가 어떻게 전개되었든 예술은끊임없이 인류를 확장시키고, 인류의 내적인 삶에 깊이를 주며, 인류와 세계 모두에 대한 통찰을 풍부하게해왔다. 그리고 예술가는 그러한 활동의 중심으로서 그 고투의 부산물인 위대한 작품, 좋은 미술품을 인류에게 끊임없이 내어놓고 있다. 그러나 살펴보면 예술의 종말 이전에 작가의 종말이 먼저 선언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예술가와 조경가의 구별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어 보인다.

 

예술이 예술가 없이 불가능하듯, 조경 또한 조경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조경가는 예술가인가 기술자인가?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떤 것이 더 나은가? 아니면 둘 사이를 오가며 변화와 진화의 선두에 서려 시시포스처럼 가망 없는 작업(work)에 몰두해야 하는가?

 

윌리엄 모리스는 이 문제에 대해 고민했던 초창기 실천가로 유명하다. 근대 공예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그의 사상은 한동안 기계화(근대화/현대화)의 뒤편에서 잊혀 있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예술의 대중화라는 기치에 동참하는 수많은 기술자(분야별 전문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잊혔던 그가 20세기 말에서야 다시 주목받았는데 이것을 조경가들은 유심히 살폈으면 한다.

 

한 가지 예로 근대 공예운동의 본격적 시발지인 바우하우스에서는 예술과 기술 사이의 어디쯤이 좋을까에 대한 지향과 해답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설립자인 그로피우스는바우하우스의 목표는 공업과 수공예 디자이너, 조각가, 화가, 건축가로서 예술적 자질을 지닌 사람들을 훈련하는 것이라며, “다양한 기술의 통합과 다채로운 개인의 협력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면서인간이 초점이 되어야한다며, “짓는다는 예술은 활동적인 협동자 무리가 조정하는 팀워크에 달려있다.”고 지적한다.

 

그런 지적은 존 컨스터블(영국의 풍경화가, 19세기 초)의 다음과 같은 지적과도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림 그리기는 하나의 과학이며, 자연 법칙에 대한 탐구 활동으로서 추구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풍경화가 자연 철학의 한 갈래로 간주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자연 철학에서 회화는 곧 실험이다.”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무의미하게 한 이와 같은 지적은 이로서 시작되는 기술들의 등장과도 연관된다.

 

이런 점에서 조경가를 이렇게 정리해보면 어떨까,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가와 경계를 공고히 하는 장인(기술자)’, 이 둘 사이의 새로운 경계에서 곡예하며 성장하는 실용주의자(디자이너)라고 말이다. 예술은 정원과 조경을 확대시키고 발전시킨 장본인이지만, 순수함 보다는 쓸모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기술로서의 조경이 지난 시대 우리에겐 먼저 필요한 덕목이었다고 말이다. 아티장으로서의 조경보다는 아티스트로서의 조경이 이제 좀 더 필요해진 시대를 우리가 지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과 함께.(계속)

연재필자 _ 안명준 조경비평가  ·  환경조경나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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