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도시_ 경관 ‘도시’: 포스트시대의 풍경(上)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_9회
라펜트l안명준 조경비평가, 나창호 기자l기사입력2013-07-26

도시는 한 번에 정의되지 않는 다의적 개념이다. 따라서 아직도 생성중이고 창조중인 개념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생산(productivity)의 개념을 다각화하면서 문명의 산물로서의 도시를 재설정하려는 고민까지 볼 수 있다. 이러한 때에 조경이 감당해야 할 도시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도시는 무엇인가? 어떻게 보는가?

 

수많은 도시이론이 근대 이후 발달하였지만 흔히 우리가 놓치는 것은 도시이론들이 도시라는 물리적 실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도시를 이루는 사회적 실체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산물로서의 도시가 결국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생성되는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지난 세기 근대적 도시이론을 촉발시켰던 학자들은 소위 인간생태학(Human Ecology)의 입장을 기반으로 도시를 이해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들은경제적 경쟁을 보편적인 생존 투쟁의 하나로 이해했기 때문에 여기에서 시작된 경쟁이 도시라는 공간적 경쟁으로 귀착된다고 보았다. 이것이 도시를 성장시키고 발전시키는 기본 원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도시에 대한 생태적 접근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는데, 도시를 일종의 환경결정의 부산물 정도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측면에서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요인들이 가지는 역할에는 먼저 눈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생태적 경쟁으로 도시를 보는 것에 한계가 있음은 오래 가지 않아 널리 이해되었는데, 자본주의 경제하에서의 기업이나 도시의 입지 상황들이 너무도 다양하게 펼쳐졌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달과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도시들로 인해 쉽게 보편적 도시이론을 정립하기 어려웠던 시기였다고 이해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러다보니 변화에 맞춘 도시를 보는 새로운 시도들이 나타났는데, 자본과 문화, 사회라는 새로운 기본 틀이 도입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여기서 루이스 워스(Lewiss Wirth)와 루이스 멈포드(Lewis Mumford), 도시를 보는 두 사람의 시각은 각자 한계가 있음에도 아직까지 도시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먼저 워스는 도시를삶의 방식(a way of life)”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였다. 그는 도시를인구의 규모(population size), 밀도(population density), 다양성(heterogeneity)”이라는 세 가지 변수들로 이해하고자 하였다. 그는 각 변수들의 강도에 따라 도시성이 강해지거나 약해질 것으로 보았다. 워스의 도시이론은 사람과 그들 사이의 상호소통으로 도시를 이해한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멈포드의 경우는 도시를사회적 행위의 극장이라며수 세기에 걸쳐 혁신을 이룬 문명의 터전(the site of civilization)”으로 이해했다. 그는 도시 사람들 간의 사회적 상호성이 도시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라고 이해했으며, 그러다보니 도시의 공공공간(공공장소)에 먼저 눈을 두게 된다. 도시를 위한 필수적인 것으로 그가고정된 장소와 안정적인 주거지, 모임과 교환, 보관을 위한 영구적인 시설을 지적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그는 비정한 도시를 비판하며 사람과 도시 공간 사이의 유기적 관계 회복을 역설하였으며, 좋은 삶을 위해 내면과 외면의 통합을 주장하며 도시와 정신 사이의 관계를 강조하기도 하였다. 즉 그는 도시를 일상의 문화가 있는 삶의 터전으로 먼저 본 것이다.

 

워스와 멈포드가 도시이론에 열어준 지평은 그간 물리적이거나 대상적으로만 보아왔던 도시를 사람들의 사회생활, 사회활동으로 볼 수 있게 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우리가 도시를 물리적 실체라기보다는 사람들 사이의 문제이자 정치적인 문제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저 그리스 시대, “집이 모이면 마을이 되지만, 도시를 만드는 건 시민이라는 폴리스에서의 격언을 현대적으로 해석했던 셈이다.

 

이로서 우리는도시(개념)’가 지구과학적 용어라기보다는 사회학적 용어라는 점을 이해하게 된다. 그것은 도시가 자연과학적이라기보다는 사회과학적으로 설명되어야 할 대상이라는 것 또한 보여준다. 이는 도시가 사람들 사이에서 먼저 피어나는 것임을 보게 해주며, 도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안의 사람에 집중하여야 함을 알려준다.

 


 

도시 편견의 재배치: 생산적 도시의 새로운 지평

 

도시, 대도시, 대도시군 등 많은 도시가 지구를 뒤덮고 있지만 아직까지 도시이론들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명쾌하게 설명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것은 스머그(SMUG; smart, mobile, upward, global) 같은 일상 환경의 변화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 시대에 제시된 도시이론들이 기술의 발달과 그것의 급속한 일상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들이 하나의 거대한 이론으로 아주 작은 일상까지를 꿰뚫으려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다원화되고 다변화하면서, 다차원적인 현대 도시와 그 안의 사람과 사람들 사이를 포함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를 위해서는 구조화된 도시이론보다 도시의 사람들에 초점을 둔 도시의 역사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권력과 거대 구조로 이해하는 도시가 아니라 뒷골목과 일상적 삶으로 먼저 접근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늘날의 조경을 편견 속 개발시대의 유물이 아니라 일상을 지원하는 공적 서비스 분야로 제자리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시각이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존 리더(John Reader)의 도시 역사 연구는 이러한 입장에 가깝게 읽을 수 있다. 그는도시 생활의 기틀을 닦은 것은 농부들이 아니라 비교적 평등한 위계를 가진 장인, 상인, 관리자 조직이었다. 도시라는 개념을 만든 것도 그들이고 도시라는 물리적 공간을 건설한 것도 그들이었다. 지속적으로 잉여 식량을 만들어내는 복잡한 농촌 사회와 집약 농업은 그 후에 왔으며, 도시의 원인이라기보다 그 결과였다.”라며 도시 탄생의 핵심을 요약한다.

 

도시의 기틀이 지구의 각 에쿠멘에서부터 확장되면서 저마다 풍토에 따른 도시 성장이 시작된 것도 그렇게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 문화도시, 생태도시 등 저마다의 차별화 방안을 고민하는 것도 토착 생활양식의 확장과 진화의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거기에 작은 삶의 실상들이 숨어있고 그것이 여전히 우리 도시를 변화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도시는 그 위치나 주어진 자원만으로 간단히설명되는존재가 아니다. 도시의 존재와 성장의 동력은 도시 내부에 있다.”고 강조하며, “도시는 외부로부터 주어진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실존을 위해 노력하는 존재라고 설명하는 바를 잘 읽어야 한다. 또한 그러면서도 18세기의 장자크 루소(Jenan-Jacques Rousseau, 스위스의 사상가)도시의 벽돌은 시골의 집들을 부순 잔해로 짓는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했던 점을 기억하며 도시가 그 홀로 존재할 수 없음도 이해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편견을 걷어내고지속가능한(그리고 지속가능했던) 일상적 삶을 들여다본다면 도시와 농촌이라는 구별은 의미 없어진다. 그러면 현대 도시의 새로운 생산성(창의성)이 여기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다만 관성적으로 남아있는 우리의 편견들이 생각과 실천에 다소의 제약이 될 수는 있겠다. 그렇더라도오래된 일상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실천들은 작지만 꾸준하게 도시를 전환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지난 시대 존재를 규정하며 각자를 공고히 해오던 실천들은 이제 그것들의 간극과 그 사이 사이에 집중할 때가 되었다. 현대 조경은 그렇게 중요하게 재도약할 것이다.
_ 안명준 조경비평가  ·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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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_ 나창호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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