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공간_ 사유의 실로(失路), 근본없는 거주: ‘공간’(下)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_11회
라펜트l안명준 조경비평가l기사입력2013-08-30

생각의 길잃음, 거주 없는 소재공간

공간이 물체가 되면서 공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게다가 철근-콘크리트와 같은 신기술의 보급은 여기에 날개를 달아주게 된다. 행태를 담아내는 그릇의 역할이 점차 중요해지면서는 현대 도시의 물리적 상황마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지구 곳곳에 지금과 같은 대도시권이 만들어지게 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이처럼 근대적 공간은 역사가 길지 않은 발명된 개념이다. 공간이 언어가 되면서는 수많은 공간 연구자, 제작자들이 저마다의 철학을 담으면서 공간 개념의 확장과 진화를 이끌기도 하였다. 수많은 이론이 있겠지만 물리적 공간을 설명하는 견해는 몇 가지로 정리되는 듯하다. 첫째는명확한 윤곽에 의해 완전히 한정된 것(Raum)”이라는 설명, 둘째는꽉찬 솔리드(solid)를 파낸 내부(void)”라는 설명, 그리고 셋째는표면(surface)의 안쪽 또는 표면으로 만들어지는 내외부라는 설명 등이 그것이다.

 

근대 공간 개념을 살펴보면서 가졌던 “‘공간이 언제부터 사고의 매체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잠시 놓아두면 다음으로 중요한 “‘공간은 소통 매체로 충분한가?”라는 의문이 뒤따르게 된다. 공간으로 상상되는 수많은 실천의 결과들이 과연 적당한가 우리 스스로 되묻게 되는 것이다. 공간을 소재로 이루어지는 생각은 과연 잘 해왔는가?

 

르꼬르뷔제는우수한 학생들을 고작 로마로 유학 보내는 짓거리는 때려치워야 한다.”건축은 양식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강변한다. 그는 사고와 기술의 과정으로서 건축을 정좌하려 노력하였다. 그러다보니 그는속도를 낼 수 있는 도시가 성공한다.”며 기술에 기반한 빠른 교통을 옹호했다.

 

반면에 루이스 멈포드는정신이 도시의 형태를 이루고, 도시는 정신을 형성한다.”고 말한다. “앞으로의 도시계획은 사람들과 거주공간의 유기적 관계를 회복하는 쪽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생각은 계속되어 본엘프(Woonerf, 살아있는 마당) 개념을 탄생시킨 넥 데 보어 교수(Nick De Boor) 같은 학자는 가로의 중요 기능을 보행과 놀이에 두기도 한다. 

 

거대한 정신들이 우리 도시의 미래를 점치고 거기에 적당한 방향을 내놓았지만 정작 우리 도시의 공간들은 그들의 상상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화해 왔다. 기술에 방점을 두었던 건축가(넓은 의미에서 공간을 만드는 자)와 삶에 방점을 두었던 건축가 사이에서 벌어져온 현대 도시의 모습을 우리는 지금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공간이 매체가 되면서 나타나는 이러한 큰 차이를 단순히 사고의 시행착오, 생각의 스펙트럼이라 위안할 수 있을까?

 

그것은 결국 공간이 매체화되면서 그들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사적 사유의 전유물로, 일종의 예술적 실험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되묻게 한다. 수많은 개인적, 개별적 사고들이 한데 뭉쳐 사유의 길을 잃고 공통된 공간의 상을 함께 만드는데 실패한 결과는 아닌지 자문해야 한다. 개별자들로서의 그들이 근대적 공간을 탄생시킨 이후로 얼마나 그것을 함부로 대하였는지, 그 사유들의 길잃음을 그저 순수 실험으로 인정하며 용인할 수 있을지를 따져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런 점에서 다음과 같은 지적은 단비와 같다. “포스트모던의 입장에 있는 도시 이론가들은 단순하고 평범한 관찰 결과들을 자신만의 특수한 언어로 번역하지만, 이는 기껏해야 실없는 신조어이거나 때로는 맥락에 맞지도 않는 특정 포스트모던 개념의 인용에 불과하다.” 사유를 위한 사유이자 길 잃은 사고의 추동이 난무하였던 지난 세기는 그렇게 신랄한 반성으로 역사의 디딤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때부터 다시 우리는 거주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공간이라는 물리적 실체를 거기에서 이루어지던 행태를 중심으로 하는 거주의 본성으로 되돌리게 할 것이다. 근대 이후의 공간이 수동적이었다면 이때부터의 공간은 능동적으로 피어나게 된다. 스페이스가 오픈스페이스로, 모든 이들이 공유하는 거주 공간이 되는 것이다.

 


 

과체중의 도시, ‘공간을 버리기 위하여...

오랜 옛날과거 시골에는 교양이 있었다. 사람들이 일찍 일어나고, 근면하고, 시간을 잘 지키고, 취하지 않고, 말을 가려하며, 차림을 깨끗이 하고, 충직함을 중요하게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산업화 이후 도시는괴물 같은 대도시 런던, 걸신들린 듯하고 타락한 대도시는 전원의 생기를 착취하고”, 나아가작은 시장 도시와 마을들을 집어삼키고 있으며, 도시의 상점들은 시골의 시장들을 집어삼키고 있다.”며 무시무시한 폭거의 대상으로 비난받는다. 하지만 지금의 도시는 그러한 지적이 무색할 만큼 다채롭고 복잡하며 자유로운 공간들로 가득 차 있다.

 

그 런던에에로틱 오이(erotic gherkin)”가 떴다. 그것은 노만 포스터 경(Sir. Norman Foster)이 설계한 유명 현대 건축물의 별칭이다. 오이는 분명 우중충한 도시에 활력과 생기를 불어넣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어떤 면에서는 로트레아몽이 데페이즈망(dépaysement)재봉틀과 우산이 해부대 위에서 우연히 만나는 것과 같은 아름다움이라며 친숙한 낯섦(uncanny)에 의의를 두는 것만큼이나 초현실주의적이다.

 

이처럼 공간을 다루는 대표적 전문가가 사유의 결과로서 내놓는 건물들이 도시를 바꾸고 주거를 풍요롭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충분한 사유의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복잡한 사로(思)에서 길을 잃거나, 지나치게 개인적 고집에 매몰되어 공동의 가치에 반하는 결과로 귀착하곤 한다. 우리는 그런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아왔고 그 때문에 우리 도시가 이렇게 정체성 없는 풍경 속의 삶터로 전락하게 되었음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현대 공간이 매체로서의 오리지널리티를 지키지 못하고 과거 건축물로부터의 리버스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 분해공학) 대상으로 고착되었음을 보여주지 않나 싶다. 삶터와 주거를 고민하기 위한 매체가 아니라 몇몇이 만든 고유한 사유의 결과를 흉내내기 위한 분석의 대상으로 자리바꿈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전문업의 발달이 가져온 결과일 수 있으며, 계획설계 일변도의 업무 프로세스가 만들어낸 공간 꼴라주의 부작용일 수 있다.

 

이런 평가는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이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 삶터에 가득하게 된 도시의 수많은 정크 스페이스들(junk spaces)을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단정이 과도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현장을 정확하게 볼 수 있게 도와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또 과체중의 우리 삶터를 재편하는 시작으로서 중요한 측면이라고도 생각한다.

 

공간에서 길 잃는 사유는 잊어버렸던 기억을 떠올리면서부터 다시 시작될 수 있다. 그것은 트라우마 저편으로 밀려나 있던 컴플렉스를 직시하는데서부터이다. 공간을 통해 자연을 다시 직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행태를 매개하던 공간의 본성(nature)을 자연(Nature)으로부터 재사유(re-thinking)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소재로서의 공간을 소재로서의 식물과 병치시켜 보자.

 

인간에게 식물이 그 영양소뿐만 아니라 섬유질로 장을 깨끗하게 하며 건강을 지원하듯이 식물은 도시를 깨끗하게 하며, 과중한 공간을 줄이는데 효과적이다. 우리 삶터에는 그러므로 이러한 역할의 자연인공(naturartificial)을 일부러라도 도입해야 한다. 수많은 정크 스페이스들을 청소하는데 식물(자연)을 이용해야 한다. 그러할 때 공간에 쌓아놓은 노폐물들이 씻겨나가 명징한 실체(주거)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우리 도시(주거)가 건강해지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비유를 들어 설명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러하다는 의미가 함께 내포되어 있다. <www.NewtWork.net>

 

_ 안명준 조경비평가  ·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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