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전통_빌려온 미래, 언제나 지금인 ‘전통’(上)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_13회
라펜트l안명준 조경비평가, 나창호 기자l기사입력2013-10-11

한때 우리는 전통하면 고루한 것, 낡고 오래된 것, 나아가 미개한 것이라고 몰아세우며 새 것과 눈앞의 것에만 집중하던 시절이 있었다. 오랜 것일수록 지겹다는 편견이 만연했고, 쉽게 지우고 새로 쓰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우고 감춘 것들이 많지만 살펴보면 일상에는 여전히 오랜 것들이 다양하게 우리 일상을 구현한다. 삶터에 문화의 단면으로 놓여 끊임없이 스스로를 되묻게 하는 여기 놓인 정자는 지금 우리에게 무엇일까?

 

오래되지 않은 전통, 오래일 수 없는 전통

 

홀대받던 전통이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과학기술 연구의 확장과 도시 환경의 심각성이 널리 알려지면서부터였다. 우리 전통 삶터의 우수성이 하나둘 밝혀지고 친환경적 요소들이 하나둘 제품으로 응용되면서 전통은 더 이상 멀리 놓인 과거가 아니게 되었다. 최근에는 요소별로 접근하던 전통에서 더 나아가 전통 요소를 통합적으로 구현하려는 생각들까지 심도 있게 고민되고 있는 추세다.

 

분석 대상으로서의 전통이 아니라 종합적이며 통합적인 삶의 모습이자 삶터의 모습을 구현하려는 생각들이어서 기대되는 바가 많다. 더욱이 어떤 부분에서는 시류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전통의 본질을 이해하고 재발견하려는 것으로 보여 그 노력을 응원하고 싶을 때도 있다. 고무적인 상황임을 염두에 두고 이쯤에서 몇 가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전통은 우리가 바라보는 것처럼 편견 속의 그것이 아니다. 사실 우리가 지난 시대 편견으로 가지고 있던 전통은 그 자체(prototype)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전통의 판형적 특성(stereotype)에 대한 것이었다. 전통의 원형은 멀리 두고 그것이 조악하게 재현된 것에 가치 두기를 거부했던 것이다.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 일상에서 전통적 요소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현대적 환경이 전체를 지배하기 시작하자 변형되고 조악한 전통이나마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이 불과 얼마 전이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측면이 드러나는데, 전통이 시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통시적으로 살펴야 할 개념이기 때문에 시대를 대하는 관점의 변화와 차이에 민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잊고 있는 측면으로 전통이 그저 먼 과거의 것, 현대적이지 않은 것 정도로 보던 편견에 교정을 요청한다.

 

그렇다면 전통과 관련된 시간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 철학자의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1) 근대까지 우리에게 과거는 신화적 세계관의 근원으로 현재의 지향이거나 2) 합리적 현재 구성의 근거로 작용하며 과거와 현재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3) 미래는 근대 이후에서야 인식의 대상으로 확립되며 이때의 현재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세계관은 과거의 것이지만 현재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 열려 있게 되는 것이다. 4) 현대에는 그러한 세계관에 뚜렷한 변화를 보인다. 현대에는 과거가 탐구의 대상이면서 새로운 재현(회복)의 대상으로 부각되며 끌어당겨진다. 상상으로 열리는 미래가 그런 과거와 현재를 다시 끌어당겨 전체적으로 미래로의 지향을 형성한다. 과거를 당겨 미래를 지향하는 현재인 것이다.

철학자가 강조하는 현재 인식의 중요한 변화는 다음이다. 5) 미래를 지향하는 현재가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끌어당겨 지금에 집중하는현재라는 것이다. 과거와 미래의 접점 또는 혼합이 현재이며, 인간은 그렇게 과거와 미래를 끌어당겨통시적으로 융합된 세계관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전통이 시간과 뗄 수 없다는 점은 여기서 강조된다. 언제나 현재인 지금에 과거를 끌어당겨 오늘을 구성하면서도 새로운 미래를 함께 담는다는 점이 그것이다. 시간을 지금에 두고 지나온 것과 다가올 것을 함께 고민할 때 전통이 의미 있고 중요해지는 것이다.

 


 

문화의 이명(異名), 전통

 

중요한 것은 전통은 이미 현재를 기반으로 놓이는 과거로의 지향이자 섞임이라는 점이다. 지나온 과거와 다가올 미래가 함께하는통시적 혼합의 장이라는 점이다. 여기에 시간의 측면 다음으로 전통에 두 번째로 주목할 부분이라면 그 원형적 가치(originality essentiality)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전통이 품고 있는 우리 삶의 모습과 직결된다.

 

'과거에 대한 무지와 오해'는 우리 스스로를 난감하게 만들며, 우리가 살아온 삶터의 의미를 퇴색시킬 수도 있다. 전통은 그러므로 문화와 그대로 직결되는 개념이며, 문화의 가장 중요한 측면이기도 하다. 요소로만 보는 전통이 아니라 그 의미에서 먼저 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서 또 중요하다.

 

조지훈 선생은 전통을 시간과 문화라는 측면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전통은 역사적으로 생성된 살아 있는 과거이지만, 그것은 과거를 위해서가 아니라 도리어 현실의 가치관과 미래의 전망을 위해서만 의의가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전통은 새로운 창조의 재료요 방법이며, 전통은 새로운 창조의 주체요 가치라며 언제나 현재인 지금에 큰 의의가 됨을 강조한다.

선생은 다시 강조한다. “모방만으로는 계승이 안 되는 것이다. 그 시대에 맞추고 앞서가면서 전통의 맥락을 지니고 어느 한 면이 새로 창조될 때 우리는 그것을 바른 의미의 창조라 하고 동시에 그것을 바른 의미의 전통의 계승이라고 부른다. 이런 뜻에서 본다면, 전통의 계승은 모방에서가 아니라 도리어 전통에 대한 새로운 해석, 정당한 저항으로만 가능하다는 역논리가 성립되는 것이다.”

 

선생의 지적에 우리는 이제 당겨진 미래를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전자 기기의 일상화로 시공의 경계가 갈수록 흐려지는 지금엔 더욱 그러하다. 현장성을 쉽게 기록하고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은 시간관념을 복잡하게 하며 일상 문화마저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은 근거를 품고 있는 문화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도 빛을 발할 수 있다.

 

전통이 시간을 거치며 원형과 변형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생태적 다양성이 현재의 결핍과 미래의 전망이 되어주듯 급변하는 문화적 욕구를 지원하는 중요한 보고(寶庫)이자 원리(frame)가 되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그것을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우리가 2년 넘게 갈고닦은 기술은 이제 화석이 될 겁니다만, 백설공주가 재발매 되었을 때 그것을 산 가정이 수천만이었습니다. ... 앞으로 60년 후에도 매킨토시를 사람들이 좋아하리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산물로서의 전통이 아니라 문화로서의 전통이자 원리로서의 전통은 그렇게 되곱씹어야 한다.



결국 지금으로 수렴되는 전통이란 현재를 드러내주고 구성해주는 지금의 문화와 맞닿을 수밖에 없다. 미래와 교차하는 전통은 문화가 되고 결국 일상 판단의 기준이 되어주기도 한다. 요소로만 보는 전통으로는 쉽게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지만 이렇게 보는 전통으로는 시점을 정좌시키는 장점이 있다. 그러면서도 변화와 전승에는 열려있다는 강점도 있다.

 

인간은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온 현재 속에 살고 있다.” 지금 여기의 시간과 그때 거기의 공간사이를 전통이 가득 채우고 있는 셈이다. 문화로서의 전통(전통성, tradition)은 그렇게 남겨진 것들 사이에서 실체 없이, 현재성(up-to-dateness)과 과거성(pastness)을 부유하며 때가 되면 새로 창조되는 우리시대의 '실효적 현실(virtual reality, 가상)'이다.

연재필자 _ 안명준 조경비평가  ·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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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_ 나창호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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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_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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