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통합_ 삶터 가꾸기의 전술, ‘통합’(上)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_14회
라펜트l안명준 조경비평가l기사입력2013-11-01

우리는 흔히 시작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역사가 길지 않고, 시대의 부침이 많았던 개념과 분야에 대해서는 그러한 경우가 많았다. 직업의 분화가 가히 분열을 지향하며 속력을 더 높이고 있는 이즈음에 전문분야(조경)는 과연 어때야 하는지 궁금하다. 최근에는 그 분화의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였는지, 아니면 그간 익숙해진 속력의 관성을 감당하지 못하였는지 곳곳에서함께가자, 종합하자는 시도들이 많다. 혼합의 시대에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도시에 감도는 혼란스런 개념들

 

우리는 다방면에서 경계가 무너지고 있음을 목도한다. 그것은 물리적인 것이기도 하고 비물리적인 것이기도 하다. 경계가 무너진다는 것은 한계(limits)를 벗어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물리적 또는 비물리적 영역성(liminality)을 벗어나 새로운 영역과의 교호 또는 확장, 구영역과 신영역 사이의 혼성(hybrid)이 이루어짐을 의미한다. 이러한 혼성은 다시 과거의 것과 현재의 것 그리고 미래의 것 사이의 뒤섞임으로 나타나 뜻하지 않은 혼합(synthesis, mix)을 이루어 창발적인 새로움(또는 새것)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gers) “Urban Task Force report”(1999)에 따르면, 도시적 통합의 의미는도시의 오픈 스페이스가 독립된 개체(거리, 공원 혹은 광장)가 아니라 특별한 기능을 가진 도시경관의 생동감 있는 일부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캐서린 톰슨(Catharine Ward Thompson)은 이러한 생각이 하워드의 정원도시 모델, 패트릭 게데스의 ‘Neotechnic’ 정렬에 대한 아이디어, 그리고 크리스탈러의 중심지 이론 등과 아주 유사하다고 지적하며, 마스터플랜을 만드는 방식이 지난 100여 년간 혁신을 이루지 못했다고 강조한다.

 

그렇기는 하다지만 큰 틀의 변화가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며, 수많은 이론적 접근이 해답을 모색하며 논의되고 있다. 이 와중에 주목할 만한 개념적 전환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데, 통합은 그것을 설명해주는 주목되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통합은 무엇인가. 통합(integration)은 그 자체로 주체와 대상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어휘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용하는 양상이 아주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 통합”, “~을 통합”, “~에 통합”, “통합적 ~” 등이 그렇다. 환경설계에 있어 통합에 관한 논의는 대부분의 경우 특정 요소나 소재를 중심으로 통합이라는실천 개념을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선 이와 관련하여 현재 나타나고 있는 관련 단어는 종합, 통합, 통섭, 합작, 협력, 융합, 연합, 복합, 혼성 등이다.

 

통합과 관련하여 나타나는통섭(consilience), 융합(convergence), 통합(integration), 혼합(compound), 연합(association), 복합(complex) 다양한 개념의 진화에는 그 본류라 할 수 있는 공통의 개념이 포합되어 있다. 그것은 관련된 여러 가지를 한 데 모아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는 것이고, 이러한 유사한 개념들의 근본어는혼합(混合, mixture)’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혼합이라는 보다 본질적인 측면이 각 용어의 개념에 깔려있다는 의미이다.

 

통합과 관련하여 사용되고 있는 어휘들은 대체로 어휘가 사용되는 상황에 따라협동, 흡수, 융합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개별 분야 또는 개별 주체와 관련 대상이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고 사용되는 경우도 있고, 개념 자체가 서술적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통합의 필요성만큼 그 정의와 개념이 아직까지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는 상황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이에 관한 보다 포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세분된 직능과 분석적 사고의 반성에서 시작되는 이러한 경향들은 분석적 패러다임에서 종합적 패러다임으로 사고의 전환을 먼저 요청한다. 과학과 엄밀한 이성적 사고에 의해 시작된 학문의 세분화에 대한 반성에서부터 종합에 대한 요청이 시작된 것이며, 이것이 현대 통합 논의의 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통합과 관련되어 나타나는 여러 개념어들은 몇 가지의 묶음이 가능한데, 그 시작은 분석을 탈피한 종합에 있다.

 

혼란을 벗어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근본어가 혼합이라는 점이고, 그것에서 확장된 통합의 태도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또 섞자는 것이 새로운 위계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중요하다. 독일 바우하우스의 교육이념은 모든 예술 영역의 통합에 있었다. 바우하우스의 예술가들이건축, 조각, 회화를 하나의 총체로 함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는 점은 그런 면에서 중요하다.

 


Urban Task Force report

 

통합을 실천하는 방식

 

통합은 세부 분야를 화학적으로 녹여 섞는 것이 아니다. 게쉬탈트 이론의 명제인전체는 언제나 부분들의 합 이상(The whole is more than the sum of parts)”이라는 점을 전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통합은 어떤 방식으로 실천으로 연결되는 것일까? 누구에게나 전인 교육이 필요한 우리 사회에서 통합은 교육 분야에서 그 학문적 접근과 실행이 먼저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다.

 

교육학자인 한나(P. R. Hanna)와 랭(A. D. Lang)이 말하는 통합은모든 교육적 노력이 한점으로 귀결되어야 하는 완전한 통일이 이루어진 상태를 말하는목표로서의 통합’, 생물체 속에서 전개되는 하나의 과정으로서의생리학적 통합’, 생물체가 그의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이나 특히 인간이 그의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그의 행동을 통일하는 과정으로서의행동의 통합’, 사람들의 집단 또는 문화 집단이 하나로 통일되는 과정을 말하는사회적 통합’” 등의 여러 가지로 나뉜다. 이들이 말하는 통합은 교육 방식에 대한 것이지만, 다양한 통합의 가치가 위계적 질서를 드러내지 않은 채 병렬적으로 정리된 모습을 보여준다.

 

큰 틀에서는 일반적으로 통합 방식이 학문 또는 전문 분야 간의 연계 형태에 따라서 세 가지의 통합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첫 번째는 다학문적 통합(multidisciplinary integration)이다. 독립된 각각의 영역이 중심이 될 수 있으며, 타 영역과 관련되는 주제를 통해 통합을 고려하는 것이다. 주제 혹은 문제를 중심으로 관련된 학문의 개념이나 방법, 절차를 활용하여 몇 개 학문이 동시에 주제를 다루어 나가는 방식이다.

 

두 번째는 간학문적 통합(inter-disciplinary integration)이다. 통합적 주제가 중심이 되도록 관련 영역의 내용을 종합하여 구성하는 것이다. 개념 혹은 방법이나 절차를 중심으로 두 개 이상의 학문을 연결하거나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세 번째는 탈학문적 통합(transdisciplinary integration)이다. 개별 전문 영역의 구조를 고려하지 않고, 이용자에게 선택권이 주어지는 사용자 중심의 접근이다. 학문 간의 개념이나 방법상의 관련성에 관심을 두지 않고 이용자의 관심이나 흥미, 또는 경험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통합 방식이다.

 

통합을 개념적으로 이해하는 세 가지 모습은 이와 같다. 여기에서 출발한 학문적 교류 또는 통합의 입장이 실천으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삶터에 관한 이론과 학문적 접근도 향후 이러한 방향성에 대한 고민과 실천 의지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BIM과 같은 기술은 그것을 지원하는 중요한 수단으로서 힘을 얻게도 될 것이다.

 

통합의 학술적 입지 변화뿐만 아니라 실천 영역에서의 변화도 중요하다. 어떤 면에서는 통합의 실천 방법론이 실천 분야에서 먼저 나타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환경설계에서 나타나는 통합의 경향은 대체로 주체와 대상이 뚜렷하게 구분되지는 않는다. 그렇더라도 통합의 실천으로 볼 수 있는 큰 범주의 변화는 읽을 수 있다.

 

첫째는 설계 대상(결과물)의 통합이 있다. 이것은 최종적으로 생산될 환경에 대하여 보다 효과적이고 목적에 부합하는 설계가 되도록 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설계 대상의 통합으로는 토지 개발과 주거 단지, 랜드스케이프와 어바니즘, 랜드스케이프와 건축, 지형과 건물, 사용 소재, 인프라, 조경, 건축 분야별 주요소 등의 주요 생산물이 통합된 모습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보이는 통합은 설계의 결과물 또는 시공의 결과물에서 비교적 쉽고 흔하게 확인할 수 있다. 다양한 요소들이 경계 없이 뒤섞이는 경우가 많다.

 

둘째는 전문 분야의 통합이 있다. 각 분야의 주체들이 하나의 결과물을 위해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모습을 보인다. 여기서는 세분된 개별 분야의 전문적 역할이 하나의 지향에 따라 경계가 무너지면서 종합되는 경향을 보인다. 개별 분야의 의미가 약화되고 중점적으로 강조되는 주요 컨셉트나 방향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것은 의사결정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며, 따라서 때에 따라 피드백과 대표자 선임 등의 부수적 방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셋째는 통합적 설계 접근 방식 및 방법론이 있다. 이는 의사결정 과정과 관련된 통합이다. 환경설계에서 중요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이용자, 관리자, 전문가의 파트너쉽같이 직접적으로 설계와 소비를 연결시켜 준다는 점이 특징이다. 주민 참여의 다양한 방법들이 이러한 과정에서 실천되고 있으며, 설계 단계에서부터 의도와 요구를 반영할 수 있어 의미 있다. 또한, 다양한 이해관계 주체들이 거버넌스를 형성하여 상호 협력적 계획이 실천되기도 한다.

 

통합 개념의 입장과 실천의 방법을 살펴보았지만 아직까지 통합은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정립되지는 않았다. 개별 전문분야의 요청과 요구가 하나의 큰 흐름을 형성한 것도 아니다. 다만 각자의 분야에서 각자의 입장에 따라 혼합과 종합을 실천하는 것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을 하나로 묶어줄(통합할) 하나의 이론, 또는 논리를 개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모두가 함께 그것을 각자의 입장에서 고민하고 교류할 필요는 충분하다.

연재필자 _ 안명준 조경비평가  ·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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