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인간의 취향

『구별짓기』 삐에르 부르디외
라펜트l오정학 과장l기사입력2016-01-10

인간의 취향


구별짓기

삐에르 부르디외 지음, 최종철 옮김, 새물결 펴냄(2006)

오정학  박사 경기도시공사(ohjhak@daum.net)



조선말의 흥선대원군과 김흥근은 예술적 기질이 뛰어났다. 이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왕족과 권문세가라는 좋은 집안 배경과 예술적 자질, 정치적 보수성 등을 들 수 있다. 대원군의 난 그림은 추사 김정희도 칭송할 만큼 뛰어났고, 김흥근은 수장고까지 둘 정도로 골동서화를 좋아했다. 그러나 김흥근은 안동김씨 집안의 수장 격이었기에 둘의 사이가 좋았을 리는 없다. 매천야록에 따르면 김흥근의 부암동 별서(삼계정)에 매료된 대원군이 몇 번이나 팔라고 간청하였으나 번번이 거절당한다. 마침내 국왕까지 동원하는 수단을 부려 별서를 손에 넣은 대원군은 자신의 아호를 따 석파정이라 이름 붙인다. 둘의 예술적 기질을 감안할 때 아마도 별서에 대한 취향이 비슷하였던 모양이다.



조선 후기의 두 경세가가 아꼈던 부암동의 석파정’ ⓒLafent.com


부르디외(1930~2002)는 이처럼 계급에 따라 특징적인 성향체계나 실천감각이 생긴다고 보고 이를 ‘아비투스(habitus)’라 명명했다. 이 용어는 반복적인 행함에 의해 특정 방향으로 틀 지워진 경향성을 뜻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헥시스(hexis)’를 토마스 아퀴나스가 '아비투스(habitus)'로 대체한 것이 개념사적 기원이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개인의 취향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철저히 후천적으로 습득된다. 이를 테면 단순·심플한 것과 호화·장식적인 것, 먹는 음식과 입는 옷, 신체외모적 아름다움과 세련미 중에서 사람들의 선택 경향은 후천적인 차이에 따라 갈리기 마련이라는 해석이다. 취향은 개인적 배경에 따라 다르게 형성된다. 부르디외는 그러한 배경 자체가 오늘날 사회에서는 일종의 자본으로 기능한다고 보아 경제자본, 사회자본, 문화자본으로 크게 구분한 뒤 다시 상징자본, 학력자본, 언어자본, 정치자본 등을 추가로 제시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지식, 교양, 기술, 교육을 총칭하는 ‘문화자본’이다. 문화자본은 교양, 예의와 같이 체화된 문화자본, 예술품과 같은 객체화된 문화자본, 학력 등의 제도화된 문화자본으로 다시 나눠진다. 그 습득경로는 가정과 학교로 대별된다. 가정은 체험적 습득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문화자본을 상속시킨다. 반면 학교는 체계적 학습을 의식적으로 진행하여 문화자본을 획득할 수 있게 해 준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둘 다 경제자본의 영향권 안에 있다. 학교 역시 의무교육기간을 벗어나면 경제력이 따라야 하고, 유학 혹은 학력검정이나 자격취득시험에 반복 응시하려면 일정한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경제자본은 문화자본을 거쳐 다시 새로운 경제자본을 재생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경제자본이 곧바로 문화자본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문화적 행위에는 비용이 수반되지만 이를 체화하고 습관화하기 위해서는 반복적인 경험이 필요하다. 즉 시간이 요구된다. 이러한 현상은 자수성가자 혹은 졸부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경제력과 문화역량의 괴리현상에서 종종 확인된다. 울산의 정주영 기념관에 가면 낡은 구두 세 켤레가 전시되어 있다. 그가 평생을 신던 구두였다. 재벌답지 않은 절약, 검소, 소박한 정신을 기리기 위한 것이지만, 부르디외 식으로 해석한다면 자수성가자가 흔히 보여주는 실용적인 소비취향이다. 이러한 현상 때문에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이 비슷하더라도 저마다의 취향은 차별적이며 개성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개인이나 집단의 취향 파악에는 생각보다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구별짓기>는 설문조사와 같은 실증 자료에 많이 기대고 있으며 이를 다시 계층별 개인 인터뷰로 재확인하고 있다. 


<구별짓기>의 학문적 성과에 힘입어 부르디외는 사회학자로 이름을 떨쳤다. 하지만, 이 책에서 나타나듯이 그는 정치학, 언어학, 매스미디어, 문학, 젠더관계, 미학비평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노년에는 세계화의 흐름에 반기를 들어 직접 현장에 뛰어든 행동가이기도 하다. 그러한 점에서 사르트르, 알튀세르, 푸코를 이어가는 프랑스의 행동파 지식인으로 꼽을 수 있다. <구별짓기>는 출간된 지 30년이 훨씬 지났음에도 많은 공감과 함께 한국사회에도 유효함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프랑스와 한국의 자본주의 역사가 다른 탓도 있겠지만, 그만큼 계급의 의미와 차이를 적확히 꿰뚫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미술, 음악, 스포츠, 여가활동 등 그가 분석한 계급과 문화활동의 연관성은 조경이나 건축 등의 공간계획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공공간은 평균적 취향을 따르고 상업적 공간은 수요자의 취향을 고려하게 된다. 최근의 공공공간은 도시 이미지를 위해 갈수록 예술성을 중시한다. 그러나 부르디외에 따르면 예술성은 취향에 따라 그 선호하는 양식이 크게 엇갈린다. 따라서 다양성이 높아지는 현대 도시에서는 의사결정이 갈수록 힘들 수 있음을 말해준다. 반면 정원과 같은 사적 공간은 지배문화의 틀 속에서 개인적인 욕구와 욕망의 충족을 추구한다. 당연히 소유자 취향에 따라 그 기능과 용도, 표현이 차별화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설계자 입장에서 이러한 작업이 쉽지 않은 이유로 취향의 이중성을 들 수 있다. 즉 개인의 자연스런 취향과 열망하는 취향이 얼마든지 다를 수 있는데 이때 한쪽만을 취하면 절반의 성공이 된다. 두 취향의 사잇길에서 중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그것은 단순한 절충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이쪽과 저쪽을 적절히 오고가야 하기에 취향의 파악과 적용은 생각 외로 쉽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_ 오정학 과장  ·  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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