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할만한 조경가 12인_패트릭 블랑
인공벽면에 원시의 자연을 창조하는 버티컬 가드너지난해 10월 새로 문을 연 서울시청 신청사 입구 로비에 들어서면 1층에서부터 7층까지의 벽면에 조성된 수직정원을 볼 수 있다. 신청사 에코 플라자의
수직정원은 현재 세계 최대 면적의 수직정원으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되었다고 한다.
장안의 화제가 된 이 실내 수직정원 설치로, 실내 유해물질 제거와 공기 정화 효과는 물론 시청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심리적 쾌적함을 주는데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최근 도시녹화를 위한 사업들이 서울시를 비롯하여 많은 지자체에서도 활발히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특히 도심지 내에 녹화할만한 부지를 찾기 어려운 대도시의 경우 옥상녹화나 벽면녹화 같은 인공지반녹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실제 서울시의 경우에도 도시 내에 생활권 공원면적을 1인당 1㎡를 늘리기 위해서는 약 10㎢(서울시 면적의 약 1.7%)의 녹지가 필요한데, 높은 지가로 인해 100조 원이 넘는 돈이 들게 되어 서울시 재정으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실정이다((사)한국인공지반녹화협회 자료참조).
인공지반녹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우선 경제적으로 건축물의 임대료 수입이 늘고 에너지 비용의 절감효과도 거둘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도시경관이 향상되고 도시민들에게 쾌적한 휴식공간을 제공한다. 환경적으로도 환경교육의 기능은 물론이고 도시 생태계 복원이나 기후조절 같은 효과를 통해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드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다양한 기술이 보급되고 비교적 대중화가 되어 있는 옥상녹화에 비해, 우리나라의 벽면녹화기술은 관수문제나 식물의 활착과 생장의 어려움 등 여전히 많은 난제를 안고 있다.
이번 연재에서는 프랑스를 기반으로 유럽은 물론이고 아메리카와 아시아 그리고 열사의 땅 중동의 모래사막에까지 전 세계를 누비며 도심지 인공벽면에
원시의 자연을 창조해 가고 있는 버티컬 가든(Vertical Garden)의 예술가 패트릭 블랑(Patrick Blanc)을 소개하고자 한다.
패트릭 블랑 Patrick Blanc
French National Centre for Scientific Research의 연구원,
식물학자,『The Vertical Garden』저자
인공벽면에 원시의 자연을 창조하는 버티컬 가드너
세계에서 가장 높은 버티컬 가든(One Central Park, Sydney),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버티컬 가든(Alpha Park 2, Paris)… 패트릭 블랑에게 붙는 ‘세계 최고’의 수식은 다양하다. 그러나 정작 그를 주목하는 이유는, 누구나 이미 한 번 보았음직한 이 식물학자 겸 아티스트의 작품들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버티컬 가든’이라는 탄식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이다.
그의 작업은 단순히 ‘입면녹화’ 혹은 ‘그린월’ 등으로 표현하기엔 부족하다. 그 풍부함과 다양성은 실로 열대우림의 한 부분을 벽 위에 걸어놓은 듯한 느낌을 주기에 그야말로 ‘버티컬 가든’이 적절한 표현이겠다.
패트릭 블랑은 프랑스 국립과학원(French National Centre for Scientific Research)의 연구원이며, 그는 버티컬 가든 때문에 본인이 ‘약간 더’ 유명해졌다고 표현한 바 있다.
좁은 새장에 갇힌 새들을 곧장 하늘로 풀어주곤 하던 순수한 소년이, 19살 때 처음 여행했던 말레이시아와 태국의 숲 속, 폭포나 바위 위에서 자라는 식물들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고 프랑스에 와서 이것을 재현해보기로 한 것이, 이제는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간 버티컬 가든의 소박한 시작이었다.
이제 어른이 된 소년의 사무실 겸 자택에는 거대한 버티컬 가든과 유리바닥 아래 대형 열대어 수족관이 자리 잡고 있으며, 마다가스카르 도마뱀과 말레이시아 개구리가 기어 다니고, 색색의 새들이 함께 둥지를 틀고 날아다니며 살고 있다. 그는 하늘이 트인 중정에 샤워꼭지를 매어놓고, 눈이 오는 한겨울에도 항상 바깥에서 목욕을 한다고 한다.
스무 살의 첫 실험 이후 40년이 지난 지금, 파리 케브랑리박물관의 외벽에서 자라고 있는 온대 식물들은 패트릭 블랑 마냥 강하고도 경쾌하게, 계절에 상관없이 아름다운 야생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파리 케브랑리박술관, 2005년 완공(2012년 촬영)
©Vertical Garden Patrick Blanc
패트릭 블랑의 작업들은 대개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는 가장 인공적이고 척박한 환경에 등장한다. 주변의 인조 환경과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작은 우주로서의 생태계는 철저히 인위적 작업임을 더욱 강조한다. 동시에 그는 주어진 공간 내에서 놀라운 정도의 다양성과 풍부함을 보여줌으로써, 마치 원시림의 일부를 그대로 떼어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만든다.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신비하고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은 도면에 그려진 평면적 패턴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수백 수천의 잎과 줄기, 뿌리, 꽃들이 만들어내는 합창이기 때문이다. 합창단에 도열한 하나하나의 식물들이 모두 가장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라야 함은 필수조건이다. 각각의 식물은 그 생리적 요구사항이나 물리적 형태에 있어서 제각각이지만, 마치 무작위로 배열된 듯한 패트릭 블랑의 팔레트는 알고 보면, 각 식물에 따라 수분, 바람, 광량, 온도의 변화, 인간의 간섭 등 환경요소들을 최적화시킨 철저히 계산된 수직 정원이다. 상부에서 각종 영양소가 가득한 물이 관수되면, 펠트를 적시며 흐르던 물은 하부의 홈통에 모아져 재활용된다. 수분의 공급을 미세하게 조정함으로써 식물의 뿌리가 과도하게 성장하지 않고, 후면 구조물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이 중요한 노하우의 하나이다. 내음성을 가진 종과 내건성을 가진 종을 교묘하게 배열하며 외기의 혹독한 환경 변화에서도 스스로 회복성을 가지게 했기 때문에, 일 년에 두 번 정도 간단한 관리만을 요한다는 고도의 원예학적 설계 기술이 놀랍다.
발리의 천연 버티컬 가든 앞에서 패트릭 블랑
©Vertical Garden Patrick Blanc
자연 생태계에 대한 철저한 관찰이 담긴 패트릭 블랑의 저서 『The Vertical Garden』과 그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그가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온갖 진귀한 기생식물과 수생·건생식물, 그리고 주변의 생태적 조건을 기록하고 정리해 둔 사이버 버티컬 가든이다.
그는 자신을 항상 보타니스트라고만 소개할 뿐, 식재 설계 혹은 원예 예술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에 대한 연구와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그 까닭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론가 비톨드 립친스키는 일전에, 조경가와 조경디자인이 건축이나 예술보다 일반인들에게 인정받기 힘든 이유에 대해 밝힌 바 있는데, 그에 따르면, 조경의 주재료는 살아있는 식물, 즉 자연 자체이기 때문에, 아무리 멋져봐야 원 자연의 심오한 아름다움에 비해서는 아류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영원한 대작인 옴스테드의 센트럴파크가 철저히 인공적인 개선과 계산에 의해 생생한 풍경을 구현해 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것을 하나의 위대한 창작물로 인지하기 보다는 복잡한 자연의 섭리가 만들어낸 결과로 이해하곤 한다. 즉, 옴스테드의 작품으로 시작되었으나 몰(Mall)에 도열한 미국 느릅나무의 장엄함은, 결국 느릅나무가 긴 세월을 견뎌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작품에 대해 100%의 크레딧을 챙기는 건축가나 예술가와 달리, 조경가들은 어디까지나 식물과 3대 7 정도의 기여도를 나누어 가질 수밖에 없다.
패트릭 블랑은 이 점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듯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일찍부터 깨달은 것이 있다. 자유롭게 살려는 존재적 지향과 도시라는 환경에 갇힌 삶의 조건 사이의 대결에서 내 삶이 꾸려져나갈 것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시골의 전원적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정원 따위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사람들로 북적대는 대도시, 혹은 그와 반대로 인간에 의해 전혀 간섭받지 않은 순수한 자연이다. 다행히도 나의 인생에서는 이상과 삶이 맞아떨어졌다. 즉, 나는 도시에서만 머무르면서, 지구상의 가장 원시적인 자연을 여행한다.”
코네티컷의 숲과 들판으로부터 영감과 교육을 받았던 농부 출신의 옴스테드가 미국의 온대림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변화무쌍한 경관을 구현했듯, 패트릭 블랑의 버티컬 가든 또한 단순한 예술적 감흥을 패턴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그 기저에는 식물학에 대한 철저한 훈련과 오랜 기간 축적된 방대한 지식이 있었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단순히 식물의 컬러와 형태에 기반한 식재디자인이 아니라, 식물 하나하나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공간적 연출이며, 언뜻 서로 어울리지 않는 식물들이 부대끼면서도 아름답게 살아가는 공존의 드라마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패트릭 블랑의 도시에 대한 애착을 다시금 이해할 수 있다. 별의 별 사람들이 다 모여있으면서도, 서로에 대한 존중과 질서를 바탕으로 유지해 가는 고밀한 환경, 바로 파리와 맨해튼과 같은 도시가 바로 패트릭 블랑의 메타포이다.
그의 작업을 올려다보는 우리들은 개성적인 식물들의 미묘한 어울림에 감동을 느끼며, 무언중에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며 교감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인간의 도시가 변화하듯 패트릭 블랑의 작품 또한 언제나 소멸과 재생, 그리고 탄력성을 염두에 둔 변화무쌍한 항상성에 관심을 두고 있다.
“자연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식물을 지탱하는 기반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하부에서 분해가 진행되는 동안, 상층에서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재건의 노력이 경주된다. 나의 작업은 이렇게 자연을 관찰해 얻은 깨달음을 재현해내는 과정이며, 그와 동시에 인공환경 내에서 어느 정도의 장기적인 안정성을 구현해내려는 시도이다.”
파리에 위치한 패트릭 블랑의 주택 겸 사무실
©Vertical Garden Patrick Blanc
그는 예술 훈련을 받지도 않았고, 식물과 분리된 예술적 아이디어를 시도하지도 않는다. 거개(擧皆)의 예술이란 것이, 결국 어떠한 시대와 시간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기에, 없어질 위험에 놓여있게 된다. 그러기에 예술품은 항상 보존의 노력을 동반하게 되고, 관람객은 어떤 시간에 얼어붙어버린 작품만을 보게 된다.
이에 반해 패트릭 블랑의 작업은 예술가의 자아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식물이 가진 본래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그것을 가장 선명하고 극적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과정일 뿐이다. 머릿속에 이미 그려진 어떠한 이미지를 통해 작업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것을 보존할 필요가 없다. 죽고 스러져가는 과정이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패트릭 블랑의 작업을 대할 때마다, ‘landscape architect’라는 명칭을 경멸하고, 스스로를 ‘넓은 의미의 아티스트’라고 칭했던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Frederick Law Olmsted)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닌 듯하다.
- 공동글 _ 박명권 대표 · 그룹한어소시에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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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글 _ 최이규 지소장 · 그룹한어소시에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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