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또 다른 경관, 영화 속의 경관

『시네마 스케이프』 서영애 지음, 한숲 펴냄(2017)
라펜트l오정학 과장l기사입력2018-04-08
또 다른 경관, 영화 속의 경관


_오정학 경기도시공사 과장
(ohjhak@daum.net)


시네마 스케이프
서영애 지음, 한숲 펴냄(2017)
“도시는 점점 더 영화를 닮아간다.” 문화평론가 프레드릭 제임슨의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뉴욕이 ‘배트맨’의 고담시가 되진 않겠지만, 파리가 <퐁네프의 연인들>에서 바라본 그 어딘가로 여겨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과거에 영화에서 갱들을 낭만적으로 표현하면 갱들이 다시 영화 속 모습을 모방했다는 재밌는 지적은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이처럼 세상사의 축소판이자 메타포인 영화는 현실세계와 계속 상호작용해 왔다. 영화는 현실을 모방하고 현실은 영화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영화는 대중문화의 강력한 대변자이기에 영화 속 광경은 동시대 대중심리를 잘 드러낼 때가 많았다. 때문에 영화 매체로 자기 분야를 관조해 보려는 시도는 여러 분야에서 종종 있었다.

이런 점에서 <시네마 스케이프>는 흥미로운 책이다. 영화와 경관을 주제로 석·박사 논문을 쓰기도 했던 저자는 왜 영화에 주목했을까?, “영화 속 배경은 글과 책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생생한 사례가 되거나 창작에 영감을 주기도 한다.”는 점을 들었다. “영화는 무거운 이론이나 담론을 쉽게 설명하게 하는 적절한 텍스트”라는 것이 그의 지적인데, 교과서는 재미없지만 만화 학습서는 재미있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글은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지만 흡입력은 영상 이미지를 따라갈 수가 없다. 이러한 사실은 이미지 비중이 빠르게 늘어나는 현대의 사회·문화적 흐름과도 잘 들어맞는다.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영화는 매일 반복되기 때문에 미처 잊고 지내던 일상의 반짝거림을 알아차리게 도와준다”고 했는데, 이는 익숙한 것을 새롭게 인식한다는 점에서 타자성을 일깨워준다는 의미이리라. 

<시네마 스케이프>는 36편 영화 속의 장소, 경관, 도시, 시간, 일상, 유머를 담았다. 공간의 장소성은 역사적 사건에 따라 혼자만의 색채를 갖는다. 그리고 그 사건의 주체는 항상 사람이다. 근대적 경관을 살필 수 있는 <암살(2015)>도 마찬가지이다. 이 영화의 볼거리는 1930년대의 도시풍경, 그 중에서도 “데카당스하다”고 말하는 경성의 도시경관이다. 경성역, 선은전 광장과 같은 공적 공간과 함께 백화점이 대형 소비공간으로 등장한다. 눈요기하기엔 좋지만 사실 이러한 공간의 연출은 어찌 보면 상투적이다. 대중적 현실과 유리된 식민권력의 상징적 공간인 까닭이다. 그 뒤안길에는 비뚤비뚤한 좁은 골목에서 많은 서민들이 살아가고 있다. 수탈적 근대화일수 밖에 없는, 물과 기름처럼 나뉘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공간과 장소임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영화 속 경관이라 해서 모두가 그림처럼 아름답지는 않다. 거주자와 여행자의 풍경이 서로 다르듯이, 아무리 낭만적인 경관도 그 속에 몸담은 이에겐 고단한 삶의 현장일 뿐이다. <와일드(2014)>는 지옥의 트레일 코스 여성참가자를 그렸다. 영화 배경은 미대륙 남서쪽의 캘리포니아에서 북서쪽 워싱턴까지의 4,300km로써, 사막, 눈 덮인 고산지대, 광활한 평원을 담고 있다. 이런 곳을 운동은커녕 마약에 찌들린 여자가 걷고 또 걷는다. “눈에 뒤덮인 평원은 감탄의 대상이 아니라 반바지 위에 옷을 더 입으라는 경고일 뿐이다. 벌레가 모여든 오염된 물을 정수 필터에 담아 강간의 공포 속에서 허둥지둥 도망치던 그녀의 뒷모습에서 한없이 나약한 존재인 인간의 모습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64-65쪽)”는 글은 대자연에 홀로 남겨진 인간의 심리를 대변한다. “신은 무자비한 개자식이야”라는 대사는 특정 공간이 서바이벌의 무대일 때 그곳의 아름다운 자연은 그저 극복해야 할 환경에 불과함을 환기시킨다. 그래도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같은 여성 참가자를 만나 달콤한 휴식을 즐길 때의 석양은 다시 경관이 된다. “내안의 뭔가를 찾아야겠다 싶어서요. 보세요. 보고만 있어도 재충전되는 풍경이에요”라는 말이 저절로 흘러나온다. 

빈약한 근육과 어처구니없이 큰 배낭으로 4,300km에 도전하는 주인공. 4개월 만에 도착한 종착점에서 그는 “그대로 내버려둔 인생, 얼마나 거칠게 살아왔던가?”라고 중얼거렸다.  ⓒwww.nationaltrust.org.uk

저자는 이러한 영화 속 경관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았다. 결코 경관을 평가하지 않고 사람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주관적으로 해석할 따름이다. 조경가의 눈이 아닌 대중적 관점, 특히 작가나 영화감독의 관점에서 바라본 경관 이미지를 고찰했다. 작가나 감독은 실제 경관의 향유자이면서 동시에 영화 속 경관의 창조자이다. 따라서 그들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대중적 관점의 경관과 조경가적 시각의 경관 사이에서 균형을 찾겠다는 의도를 내포한다. 서있는 곳이 다르면 풍경이 달라지기에, 상황과 입장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는 풍경의 다면성을 확인하였다는 것은 충분한 성과이다. 영화 속 경관을 살펴보고 사람의 삶과 장소, 경관을 연계시킨 서영애의 작업은 경관에 대한 새로운 차원에서 조경적 논의의 가능성을 알려준다. 

서영애는 지난 5년간 일관되게 영화 속 경관을 살펴왔다. 이것만으로도 그의 작업은 높이 평가될 만하다. 조경보다 시장이 넓은 분야에서도 이렇게 오랫동안 영화 매체를 탐색한 이는 찾아보기 힘든 까닭이다. 더구나 그의 활동 영역은 치열한 적자생존의 현장이다. 녹음수 우거진 온실도 아니고 철밥통을 끼고 있지도 않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설계사무소에서 이러한 활동에 꾸준히 관심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작업은 그가 사랑하는 조경의 문화적 잠재력을 높임과 동시에 미래의 새로운 정체성 탐구에 큰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_ 오정학 과장  ·  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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