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공모_디자인 경쟁시대: 신사들의 잔치 ‘공모’(上)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_6회
라펜트l안명준 조경비평가l기사입력2013-05-03

공모(公募)란 간단히공개적인 모집 또는 모음을 의미한다. 공모는 크게 일반과 전문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전문 분야에서 공모는 대체로 조건에 얼마나 잘 부합하는지 경쟁과 평가를 통해 우열을 정한다는 개념이 앞선다. 그러다보니 전문 분야에서 우리는 보통설계경기라는 형태로 공모를 맛보곤 하는데 과열된 경쟁으로 치닫는 것을 쉽게 보기도 한다. 가히 공모의 시대랄 수 있는 우리시대에 공모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일까 생각해 볼 때이다.

 

근대공모의 배후: 보자르와 바우하우스

 

언젠가부터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이 우리 주변에서 많다. 공모의 형태로 시작하여 심사의 단계가 많아질수록 점차 시청자와 참가자가 서로 성장하며 그 과정을 즐기는 대중문화로 자리 잡기까지 하였다. 경쟁을 즐기고 향유하는 문화가 우리 삶의 하나로 자리한 것이다.

 

반면에 기획되고 느슨한 일반 공모와는 달리 전문가들 사이의 공모와 경쟁은 다른 양상을 띤다. 아마도 전문분야에서 공모가 경쟁의 양상을 띠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직업으로서 디자이너(산업, 도시, 건축, 조경, 토목 등 포괄적 의미의 설계자)가 사회적 역할을 공고히 하면서부터가 아닐까 싶다. 전문가 교육 시스템이 고민되고 전문가 양성 기관이 만들어지면서 디자인 결과물에 대한 평가가 기본 덕목으로 요청되었기 때문이다. 도제식 교육이 아니라 객관적 전문가 양성 시스템이 가져온 분야 내적 경쟁인 셈이다.

 

그러다보니 결과물에 대한 디자인의 역할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경쟁을 대하는 전문가들의 입장도 다르게 나타난다. 세부 전문 분야마다 공모의 형식이나 내용, 호응과 결과 등이 천차만별인 것도 이 때문이며, 이것만으로도 디자인이라는 측면이 공모와 경쟁에 어떠한 작용을 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개발이 가속화되던 20세기 초반부터 디자인은 경쟁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게 하였고, 이와 더불어 디자이너의 사회적 영향력도 함께 성장하였다고 할 수 있다.

 

즉 전문 분야에서의 공모는 좀 거칠지만 현대 사회 발전과 성장의 한 가지 방식으로 작용하였고, 이를 토대로 전문가의 역량이 사회적으로 자리 잡게 된 셈이다. 우리가 주요 설계공모마다 그 당선작이 보여준 새로운 생각의 결과들을 곱씹고 모방하는 것도 이런 점에서 의미 있다. 여기서 혁신적 생각에 대한 전문가의 목소리를 들어보며 거친 가정의 근거를 발견해 보자.

 

옴스테드는 센트럴파크를 통해 도시의 자연이 주는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면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입장을 말한다. “전원적 경관은 모든 도시공원에 보편적인 즐거움을 제공한다. 도시인들은 공원에서 위안을 느끼고 제한된 도시 생활로부터 탈출하게 된다. 이는 공원이 모든 이에게 제공하는 가장 확실하고 가치 있는 자유이다.”

 

라빌레뜨공원으로 새로운 충격을 주었던 베르나르 츄미는 강조한다. “계획안은 특별한 목적이 있었는데 이는 구성, 위계 그리고 질서와 같은 전통적인 규범에 의존하지 않고 복잡한 건축적 조직을 건설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 , 면으로 이루어진 세 개의 자율적 체계를 중첩시키는 원리는 대부분의 대규모 프로젝트들에서 보여지는 실제적인 조건들의 전체적 통합을 거부함으로써 발전되었다. 만일 건축이 역사적으로 항상 비용, 구조, 용도, 그리고 형태적 요구조건(심미성, 견고성, 유용성)들의조화로운 통합으로 정의되어 왔다면, 사실 라빌레뜨공원은 그 스스로에게 거스르는 건축 즉, -통합이 되었다.”

 

터렌스 라일리(Terence Riley)는 다운스뷰파크 설계공모 당선자인 브루스 마우에 대하여 조경설계의 새 패러다임을 개척하였다며 그의 말을 전한다. “우리의 안은 결과물을 만든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알고리즘이나 벡터를 디자인한 것에 가깝다. 벡터를 결정하는 경계를 만든 것이다. 우리는 진화하는 프로세스를 일련의 연관된 점들에 결합시켰다. 그러한 결합을 이용하여 결과물을 조직할 수 있다. 이것은 디자인이라기보다는 레시피(Recipe)이다.”

 

아드리안 구즈는 용산공원 설계공모를 통해서지난 시대의 공원이 도시의 화장술로서 수동적인 역할을 했다면 현재의 공원은 다양한 시민 문화를 소화하는 한 단계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다음 세대를 위한 공원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라며, 기본적인 디자인 컨셉은 유지한 채 상세한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통해 유동적인 디자인으로 불확실한 미래의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것을 강조한다.

 

앞의 사례들은 공모의 절차, 진행 과정, 비평과 실행 추진 등 세부 내용별로 비교할수록 재미있을 것 같다. 그것은 공모를 대하는 전문가와 공모 진행자, 그것을 지켜본 그 외의 전문가들의 태도 모두에서 출발할 수 있다. 적어도 공개된 문건만으로도 남루해진 우리 공모의 지금 풍경을 반성하게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최근 들어 윌리엄 모리스가 소환되는 이유를 전문가라면 찬찬히 살펴야 할 것이다.

 


아드리안 구즈는 용산공원 설계공모를 통해서지난 시대의 공원이 도시의 화장술로서 수동적인 역할을 했다면 현재의 공원은 다양한 시민 문화를 소화하는 한 단계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다음 세대를 위한 공원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라며, 기본적인 디자인 컨셉은 유지한 채 상세한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통해 유동적인 디자인으로 불확실한 미래의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것을 강조한다.

 

“경쟁의 향유?” 공모() 시대의 자화상

 

공모의 대표적 형태인 설계공모를 살펴보자. 설계공모란요구 조건에 얼마나 잘 부합하는가를 기준으로우열을 가리거나 순위를 정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첫 번째의 요구 조건에 따라 공모의 방식이 달라지는데, 공모 결과물, 공모 목적, 선정 단계, 응모 방식, 공모 범위 등 공모 주최측의 사정에 따라 세부 실행이 정해지게 된다. 두 번째의 선정 과정에서는 대체로 요구 조건을 갖추었는가를 기본으로 사전에 준비된 심사기준과 심사위원회를 통해 우열이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건조하게 나열했지만 경쟁으로 살피는 설계공모에는 사실 쉽지 않은 생각거리들이 담겨있다.

 

우리나라 설계공모의 모습은 최정민 교수를 통해 엿볼 수 있다. 그는 우리 조경설계가 대체로 하도급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이며, 그러다보니 잉여 가치를 생산하지 못하는 경우 디자인 발전의 토대가 되는 담론을 만들지 못한 채 가격과 자격에만 매달리게 된다고 지적한다. 그것은 결국 종속성을 심화하고, 스스로를 주변화하며, 좋은 설계와 참신한 설계자를 제한하고, 시대 흐름을 보여주거나 선도한 수준 높은 작품을 만들지 못하게 되어 자생적 발전이 어렵게 된다고 지적한다.

 

그는설계 경쟁이 작품과 설계자를 고르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동시대 조경의 문제나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의 과정이라며, ‘말잔치, 광고 같은 조경, 과잉 디자인, 짜깁기 설계, 장식화, 무난한 조경같은 어휘들로 그려지는형태적 제스처와 화려한 수사의 한국 조경에 일침하는 듯하다. 특히 현상공모가도판을 디자인하는 것 이상이고, 일을 수주하는 것 이상이며, 설계자를 선택하는 것 이상이라며,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는 수주전이 아닌 경쟁을 즐기고 당선자를 축하하는 축제가 되길 넌지시 기대하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이다 보니 심화된 경쟁의 시대는 전문가의 위상을 남루하게 만들도록 강요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전문가와 전문 분야 공모가 담론을 형성하고 주도하는 주역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전문가는 모방의 단계를 뛰어넘는 자들이기 때문이며, 그들은 카피캣(copycat) 이상이고, 그들이 단순히 모방하거나 흉내 내어 결과를 만든다면 전문가로서의 자격이 의심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리지널리티를 품고 있는 결과물은 그러므로 진정한 전문가의 결과물이자 장인정신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우리시대 향유하지 못하는 경쟁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모두에게 축제의 장을 제공하는 것과는 반대로, 전문가들의 사활을 건 싸움터로 공모를 전락시키기도 한다. 그것은 함께 고민하며 즐기는 문화적 경쟁의 영역을 넘어선지 오래임을 알려주며, 뭔가 구조적인 문제가 농축되어 있음을 강변해준다. 우리시대 생존 경쟁으로 전락한 공모는 그러므로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며 결과에만 집중하는 담론과 지향 없는 이기주의를 대변하는지도 모른다.(계속)

연재필자 _ 안명준 조경비평가  ·  환경조경나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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