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생각_경공환장으로 그리는 ‘생각’ 계단(上)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_15회
라펜트l안명준 조경비평가, 나창호 기자l기사입력2013-11-15

감각이 생각을 앞서는 시대를 지나고 있다. 인터넷 서핑하듯 쉽게 얻은 결론으로 복잡한 상황을 마무리하고 다음 일에 매진하곤 한다. 모두가 그러니 삶의 속도는 계속 빨라지고 성장보다는 확장이 우리 주변에 가득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일상에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전문분야에서도 쉽게 목격되는 모습이다. 그러나 변화맹(change blindness) 속 전문가의 모습이 아니라 느슨하면서도 투철한 자세의 실천은 어려운 것일까?

 

생각 없는, 생각 가득한 도시의 일상

 

바쁜 도시의 일상을 살펴보면 생각할 여유 없이 살아가는 우리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몇 가지의 규칙적인 패턴을 반복하며, 도시민들은 잠깐씩 주어지는 휴식에 만족하며 거대한 삶터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우리 도시는 겉에서는 생각 없는 도시처럼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학교에서조차 우리는 생각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 주어진 교과목 정보들만 주입하듯 읽고 외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유롭게 생각하는 법을 익히지 못하다보니, 일상이란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 버리기 마련이다. 따라서 도시의 모습들도 그에 따라 재편되어 왔다. 그러다보니 지루하고 반복적인 도시의 일상을 탈피하는 방법으로 주된 일상을 벗어난 시간에 일탈 또는 여유를 꿈꾸곤 한다. 느슨하고 정감 있는 도시애()는 초라해지고, 도시의 밤문화, 야간경관이 화려해진 것은 이와 관련된다.

 

생각 없는(담기지 않은) 도시는 엘리베이터들의 도시와 같다. 단계를 거치지 않고, 주변을 읽지 않고 움직이는 엘리베이터와 같다. 그런 기계적 움직임으로 인해 도시는 빠르게 움직일 수 있지만, 그것이 반복되는 규칙이 되어 자유로운 삶터를 제약해 왔다. 지금부터라도 에스컬레이터와 같은 도시로 시야를 먼저 열어야 할 필요가 있다.

 

생각의 묘미는 곱씹고 되뇌며 새로움을 발견하는데 있다. 쥐어주는 생각에는 그러므로 영혼이 없기 마련이다. 철학자가 말하듯고치기와 애쓰기가 없는 세상이 있다면 그것이 파라다이스일 것이다. 우리 도시는 끊임없이 애써가며 고쳐야 하는 생각의 덩어리이자 생각의 현실이다.

 

생각의 묘미 또 한 가지는 생각이 생각으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넓고 깊은 생각은 감성을 포용한다. 그래서 내적 무거움이 있다.” 그러므로 생각이 많으면 마음이 많아지며 공감의 폭도 넓어지게 된다. 우리 도시는 기계가 지원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인간이 어울려 살아가는 삶터이기도 하다.

 

아니다. 그러고 보면 생각 없어 보이는 도시에도 생각이 많다. 자본에 의뢰하여 전문가들이 대신 해주는 생각들이 공간을 이루며 도시를 하나 둘 채워 왔다. 지금도 그 의뢰받은 생각들은 우리 도시의 모습을 꾸준히 생각하며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 봤는가? 생각이라는 것이 누군가 내게 이식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이란 스스로가 주인이 되는 것이며, 타인의 그것을 나와 공유할 때, 그러니까 함께 공감할 때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제 자본이 대리하는 생각들이 우리 도시의 수많은 나들과 얼마나함께 공감한 생각들을 펼쳐놓았는지 생각해보자.

 


 

생각의 계단, 생각 진화의 단계들

 

우리가 흔히 놓치지만 생각에도 단계가 있다. 생각은 계단과 같은 것이어서 하나하나 차곡차곡 밟아나가야 지치지 않고 목적지에 오를 수 있다. 생각은 계단이어서 두 칸, 세 칸 앞서 오를 수도 있지만, 오래도록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다. 생각의 계단이란(단계) 지치지 않고 오래도록 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알맞게 매듭지어진 쌀알과 같다. 그 매듭들이 모여 새로운 계단이 되기도 하고 계단참이 되기도 하면서 새 길을 펼치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생각이 일순간 한 번에 꿰뚫는 무엇이라고 보아서는 곤란하다. 생각은 직관과는 다르다.

 

또 생각은 생각할수록 날카로워지고 깊어지는 속성이 있다. 한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면 같은 물체에서도 다른 것들을 발견할 수 있듯이, 생각도 생각하면 할수록 다양한 얼굴들이 드러나게 된다. 보지 못하던 것들이 나타나면서 그렇게 밟은 생각의 계단들은 또 하나의 길이 되어 다른 생각에서는 쉽게 다른 면을 간파할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이 반복되면 생각의 계단과 그것의 길들이 많아지면서 생각하는 노하우가 다양해지게 된다. 생각에 힘이 생기는 것이다. 힘이 된 생각들은 점차 간결하고 손쉬운 방법들을 체계화하면서 날카롭고 깊은 생각의 향기를 만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생각에는 나도 모르게 나의 진정성이 스며들며 특별한 개성이나 향기를 가지게 된다. 누구의 생각이 어떻고, 누구의 생각이 어떠했는지 생각들을 잘 모아 정리한 것이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책은 생각을 모아놓은 저마다의 길이자 저마다의 향기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생각이 깊고 날카로운 철학자들의 책은 베껴 담을 수도 없는 그만의 개성과 카리스마가 가득하다. 그런 생각들은 책이라는 물리적 존재를 벗어나 오래도록 인류에 전수되기도 한다. 그것은 책에 담긴 생각의 계단을 따라 사람들이 끊임없이 밟고 오르며 인류에 그 길을 기억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란 것은 누가 쥐어주거나 심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남의 생각을 보며 나의 생각을 단련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 생각을 그대로 내게 이식해 내 것으로, 내 것처럼 쓸 수는 없다. 생각이란 그런 것이어서 혹 어렵게 이식에 성공한 생각이 있더라도 면역억제제를 계속 투여하지 않는 한 내 본래 생각에 끊임없이 부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따라서 생각은 내부의 문제와 관련된다. 그것도 아주 직접적이고 밀접하게 관련되는 것이다. 자생적 생각들을 잘 키우고 성장시키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주입식 교육과 암기식 학습은 영혼 없는 지식만을 양산할 뿐이고, 그것이 우리 도시와 삶터를 영혼 없는 전쟁터로 변화시킨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연재필자 _ 안명준 조경비평가  ·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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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plusgan@gmail.com
사진 _ 나창호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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