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조의 도시에 가득한 ‘경관’본성과 생성‘경관’ -2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
라펜트l안명준l기사입력2016-08-12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 

 Part 2: 05 경관(Landscape) Ⅱ



관조의 도시에 가득한 ‘경관’본성과 생성‘경관’...

 



_안명준 오피니언리더

조경시공연구소 느티 대표│조경비평가




경관Ⅱ:  관조의 도시에 가득한 경관본성과 생성경관...

1부에서 천경(天景)이 가능한가를 물었다. 2부에서는 질문을 확장해 보자. 우리시대 경관은 철학이 되었는가? 우리시대 경관은 철학일 수 있는가? 아니 그 전에 경관에 본성이란 있는가? 도시든 농촌이든 경관 실천이 깊이를 달리하고 있는 이 즈음 “20세기 최고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으로부터 경관을 생각해 보자. 그리고 서양 철학을 재정초 했던 그가 “망설여지면 자연에서 배우라.” 강조한 이유를 연장해 보자.



우리는 직선으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경관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개념이다. 땅의 모습으로 요약할 수 있는 이것은 여러 학자들에 의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접근되고 응용된다. 과학적 사고가 지배하면서부터 경관은 일종의 물체(object)로서 먼저 실천에 적용되고 있는데, 자연의 일부이고 환경의 일부인 경관은 그 층위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접근이 오해를 불러오고 문제를 만들게 된다. 


그것은 전문가 이전에 인간인 우리가 사고를 감정적 해석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경관이란 눈에 먼저 다가오는 것으로 “우리가 보는 건 그 자체가 아니라 해석”이 된다. 그리고 그 해석은 자기 안에 생겨난 것이어서 “감정적으로 반응한다.” 이러한 반응이 언어(사고)를 거쳐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소통된다. 그리고 “어떤 말도 생활양상과 함께 기억”되므로 언어로 번안된 경관은 같은 경관을 두고도 사람마다 다른 말의 의미(감정적 해석)로 인해 오해를 점점 키우게 된다. 그것은 사진과 같은 이미지로 번안된 경관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눈이 아니라 감각으로 본다.” 경관 또한 감각으로 보게 된다. 이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경관학자들이 이를 간과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점에 집중했다. 해석의 불특정성 때문에 먼저 경관의 역동성을 물체로 치환해서 사고의 깊이를 더해갔다. 그리고 지난 개발과 채우기의 시대에 확장되는 도시는 이것을 더욱 추동하였고, 경관이란 소통되기 쉬운 결과물(natura naturata)이자 언어(말)로서 개념 전환, 개념 고착, 그리고 실행이 이루어졌다. 



해석이 먼저인 경관 ⓒ안명준


그러나 “말이 아무리 행위라 하더라도 말 이면에 더 많은 것들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말이 된 경관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 면에서 “개념 언어에 속지 마라.”는 비트겐슈타인의 지적은 우리시대 경관 관련 실행의 방향을 함축해 준다. ‘일방향으로 사고하는 버릇’은 그렇게 하나의 시스템이 되어버렸는데, 경관만큼은 최우선으로 그 다의성(ambiguity)을 다시 생각해야 할 때이다.



무의미는 무가치가 아니다.

경관은 풍경이 아니다. 그러나 담지체(잠재태)로서 경관은 그렇게 오해되곤 한다. 경관을 대하는 이러한 이중적 태도를 우리는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지난 시대 물체로 보았던 경관관이 가져온 동반작용 중 하나다.


그것은 경관이 눈에 들어오며(해석되며) 보는 사람(주관)이 가지는 어떤 의미 또는 가치가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경관과 풍경을 구별하는 이러한 태도는 자연관의 본질적 차이가 만들어낸 인간 경계 외부 대하기(인식)의 문화 차이가 만들어낸 것이다. 


중요한 것은 비트겐슈타인의 지적처럼 ‘통증 같은 감각은 얼마든지 실험할 수 있지만 사랑은 실험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경관 같은 외부는 얼마든지 실험할 수 있지만 풍경(내적 감성)은 실험(평가)할 수가 없다. 본질적으로 주관의 내부에 존재하는 것이고 이는 말이 되거나 그림이 되거나 하는 식으로 번안되는 순간 그것의 전부가 담기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연에서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모순 같지만, 자연을 관찰하면 거기서 새로운 가르침이나 지도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잡초 하나도 제 힘으로 만들 수 없다.”고 하더라도, “자연은 자연법칙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경관 앞에서 경관보다는 풍경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것은 법칙과 무관한 자연(경관) 자체를 대하려는 인간(주관)의 태도가 경관을 대하는 순간 이미 인간의 논리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경관이 된 순간 무의미의 경관인 것 같지만 무가치의 경관은 아닌 것이다. 경관은 보려는 주체(인간, 관점)를 상정할 때 가능하므로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담지체인 것이다. 



찾아야 찾아지는 경관 그리고 풍경 ⓒ안명준



선한 것은 아름답다. 아름다운 것은 선하다

풍경은 그 자체로 가치를 이른다. 그리고 그 가치는 경관이 담지하고 주관이 이끌어내는 어떤 것이다. 그 어떤 것은 아름다운 것(감성적인 것)이며 이것을 발견할 때, 또는 이것이 해석(인식)될 때 ‘나’에게 경관은 풍경으로 도약하게 된다. 경관에 살아 담기는 이것이 우리에게는 아름다움이 된다. 경관(자연, 땅의 모습)의 가치는 그렇게 설정되는 것이며 그것들이 모이면 결국 장소가 된다. 삶터(도시)의 얼굴이 된다. 따라서 풍경이 되지 못한 경관은 좋다 나쁘다, 또는 아름답다 그렇지 못하다 가치의 세계에 있지 않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경관이 도시의 얼굴이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은 말한다, “얼굴은 영혼”이라고. 그를 따르지 않더라도 우리는 경관을 도시의 얼굴이자 영혼으로 이해한다. 그 만큼 단순한 땅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 삶의 모습이고 우리의 영혼이라고까지 확장할 수 있는 것이다. 경관에 철학을 요청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까지 경관의 깊이를 해석했다(가치평가)면 우리는 드디어 경관에서 아름다움을 말할 수 있게 된다.


다소 급진적이지만 비트겐슈타인은 “선한 것은 아름답고, 아름다운 것은 선하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이 둘은 나뉠 수 없는 하나인데 그 이유는 선악이 결과가 아니라 행위 그 안에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풍경 이전의 경관은 결과로서가 아니라 행위이자 과정으로 시점이 변화하면서 본격적으로 새로운 의미 생성이 시작된다. 경관은 이때부터 아름다움(가치, 의미)을 논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어야 비로소 이야기와 삶을 담은 경관이 되고 주관(나)이 경관을 타자로서가 아닌 삶의 일부로 이해하게 된다. 


여기서 경관의 본성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은 의미 없는 질문이 아니다. 비트겐슈타인이 이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경관이 삶의 일부이자 얼굴이라면 가치의 측면에서 먼저 소통되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나아가 그러할 때 경관의 변화와 생성에 대해 논할 수 있고, 아름다운 경관이라는 지향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가꾸기 본능은 경관에도 작용한다 ⓒ안명준


우리 주변의 경관은 아름다운가? 좀 거칠지만 얼굴이 되는 삶터의 경관을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들(주인공) 영혼의 모습으로까지 확장하여 본다면, 우리시대 경관은 어떠한가? 아름다운가? 누추하지는 않은가? 우리시대 삶터의 경관은 영혼이라고까지 기꺼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 물체로 보는 경관이 아니라 영혼으로 보는 경관이 서사와 미의 시작이 될 것이다. 우리는 경관을 그렇게 성찰할 위치(시기)에 있다.


비트겐슈타인, 그 낡은 이름을 끌어다 천경과 경관을 생각해본 이유가 무엇인지 눈밝은 이, 눈밝은 조경가, 우리시대 정원사에게 전해졌길 바란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경관(개념)은 가능태가 없는 것일 수도, 가능태가 잠재되어 환경에 따라 달리 발현될 수도, 아니면 그 자체로 어떤 결정된 본성대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이처럼 경관이 어떤 담지체라고 한다면, 경관이 무언가를 기다리는 개념이라고 한다면, 경관은 그 자체로 ‘아름다움(풍경)을 지향하는 느슨한 땅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할 때 우리는 풍수지리와 같은 토착적 옛 이론의 정위치를 지금여기에 맞게 재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 이번 경관 편은 우리시대 경관의 형성 과정을 본 따, ‘요약된’ 비트겐슈타인의 언술에 그 과정을 적용하였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말』(인벤션, 2015) 참조. 매끄럽지 못한 문맥이 보이신다면 이전 원고들처럼 생략된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글·사진 _ 안명준  ·  조경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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