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space-time)의 ‘자연’과 시존재(time-being)의 ″자연″ -1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
라펜트l안명준l기사입력2017-06-23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 

 Part 2: 07 자연(Nature



시공간(space-time)의 ‘자연’과 시존재(time-being)의 “자연”...

 



_안명준 오피니언리더

조경시공연구소 느티 대표│조경비평가




자연Ⅰ:  코지원에서의 3개월, 제주적 자연의 단면...


처음 코지원(the Kozi-won Garden)은 이름이 먼저 왔다. 비바람에 묶여 섬 속의 섬에서 며칠을 갇혀있는 동안 착상처럼 이름이 먼저 온 것이다. 한참 겨울인 제주도는 그래도 포근하고 즐거운 자연이었다. 이름을 얻자 형식(system, style)과 형태(form)는 어렵지 않게 구상(figuration)되었다. 이름을 들고 마주하는 대상지는 여러 감성을 전해왔다. 행복한 현장(gardening)이 될 것임은 처음부터 분명하였다.


거시적 자연, 하늘에서 본 풍경
드론부터 띄웠다. 하늘에서 본 단지는 매우 근대적이었다. 다행히 배치는 그랬어도 각 채들에 조금씩 변화가 배어 있었고 제주의 특성을 담은 경관 요소들도 통일감 있으면서도 변화 있게 들어서고 있었다. 가히 훌륭한 별서 단지로 보였다. 제주가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만한 모습이 또 있을까 싶다.
  

하늘에서 본 단지 ⓒ안명준

문제는 물과 바람이었다. 남서풍을 그대로 몰고 오는 너른 바다가 멀지 않은 곳에 펼쳐져 있고 거센 바람이 넘쳐흘렀다. 제주 남서쪽 끝에 위치한 단지는 대양을 건너온 바람과 한라산을 타고 내려오는 바람이 부딪혀 싸우는 곳이었다. 돌도 많은데, 담으로 세워진 돌도 그렇지만 발 딛고 선 지반이 모두 그랬다. 무엇보다 물이 너무 많았다. 많은데 많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바다는 물로 보이지 않았고 내리는 비와 눈은 바로 스며들어 사라졌기 때문이다. 바람도 한 몫 했다. 그래도 물이 너무 많았다.

주변은 농지였다. 스며드는 물 때문인지 관개 시설이 있었고 마늘 농사가 많았다. 밭을 제외한 토양은 토양이랄 것 없을 정도인데 봄이 되자 유채가 곳곳에서 박히듯 피어올라 특별한 경관을 만들었다. 땅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특징을 가지기 마련인데 이곳도 역시 그러했다. 특히 자연의 큰 흐름(singularity)에 적응한 토착적 형식들이 하늘에서 보니 한눈에도 가득했다.

위성사진과 비교해가며 단지 전체를 읽어 내려가는 작업은 비록 작은 정원을 만들고자 하는 목적이었지만 이곳에서는 주효했다. 큰 흐름을 이해하며 대상지와 친숙해지는 과정이기도 했다. 더군다나 이곳은 육지와는 다른 환경이라 그간의 경험과는 다른 해법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큰 눈으로 본 단지와 대상지는 어렵지 않게 상세 구상으로 이어졌다.


미시적 자연, 인간의 자연
대상지는 단지의 정중앙에 위치하면서 다른 채들과는 차별되는 디자인 및 대지 모양을 갖춘 모델하우스격인 곳이었다. 작은 정원에 제법 큰 나무들이 돌담을 따라 서있었는데 역시 바람을 충분히 이겨낼 만한 크기와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마당을 가득 메운 잔디와 대지를 감싸는 돌담은 답답하게 다가왔다. 한참을 돌아서 들어와야 하는 동선도 그렇지만 사방이 모두 시야를 가리고 있어 더욱 그랬다.


대상지 초기 모습 ⓒ안명준

단지의 틀과 내부의 구성이 그대로 읽혔다. 처음 접하는 사람으로서도 정원을 다채롭게 손보고 싶게 하였다. “일반적 차원의 공간들”로 읽히는 단지의 채들은 어디에 놓아도 좋을 그런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렇더라도 주변과 전체는 여전히 장소를 압도하고 있었다. 하늘과 바람, 돌담 등 경관 요소들은 서울의 그것과는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손길이 가득한 새롭게 만들어진 공간(경관이 아니다, 장소도 아니다!)들이 그렇게 가득했다.




공사 중인 코지원 모습 ⓒ안명준


그리고 생각을 이끄는 자연
그렇게 ‘큰 눈’과 ‘작은 눈’으로 본 자연은 정원을 위한 생각(concept)으로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깊이 있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큰 틀의 통합적 아이디어가(Ecological Urbanism) 펼쳐지게 된 단초가 되었다. 기본 컨셉(통합적 시각)은 장소적 시각, 토착적 시각, 가꾸기의 시각으로 나뉘어 전개되었다. 장소적 시각은 대상지의 물흐름, 생산기반, 식재환경 등을 고려해야 했고, 토착적 시각은 일테면 바람, 물, 돌, 동식물, 식재 배치 등으로, 가꾸기의 시각은 별서 형식, 일상적 쉼, 가드닝, 내외부 연계성 등으로 구체화되었다.




떼어 옮길 수 없는 코지원의 모습들 ⓒ안명준

그 중에서도 본래 있었던 요소들을 활용한 몇 가지만 살펴보면, 우선 돌담은 한쪽 면을 열어 개방감 확보와 순환적 흐름(물, 바람, 동선, 시선 등)을 강화하도록 했다. 돌담은 지역색을 보여주고 정원의 경계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중요했는데 그러한 강한 고정성(이미지, boundary)을 확보하면서도 정원의 기본 틀을 형성하게 하였다. 보강된 세부 요소들(토양, 식물, 물길, 조명과 빛, 새로운 돌 등)은 개방성과 순환성을 지원하는 배경 요소이자 프레임 역할을 한다. 그 중 입구부의 돌담은 사선으로 낮아지게 하면서도 사방에서 경관요소가 되도록 하였다.

두 번째로 직선뿐인 경관에 형태적 요소로서 곡선을 적극 활용하였다. 새로 추가된 식재지의 경우 S자형 곡선을 똑같이 적용하였다. 경계재로 제주 현무암을 활용하였고 그 선의 모양을 건물 쪽 데크와 파고라에도 적용하였다. 직선이 가득한 주변과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다. 이와 같은 평면의 선들은 프레임이 되는 돌담과 건물들에 유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적용된 것이며, 정원을 한층 다채롭게 해준다.

물길의 확장도 중요한 요소였다. 수돗물 하나에 의지해야 했던 정원에 돌아드는 물이 추가된 S자형 연못과 백일홍 동산의 기반이 되게 했다. 처음에는 순환형 수체계를 고려했으나 공사과정에서 맑은 물을 스며들게 하는 방향으로 조정하였다. 물이 많으면서도 물이 없는 모순을 해결하고자 정원 전체에 소극적이지만 관수 방안을 강구하기도 했다.

네 번째로 목재 데크는 마루로 그 용도와 성격을 확장하였다. 마루는 우리 전통에서 그야말로 다용도의 공간이자 마당이다. 현대식 데크가 담을 수 없는 그것을 첫 손님의 첫눈(생각)부터 펼쳐지게 할 요량이었다. 완전한 전통식은 아니지만 이곳에 맞는 건물 앞 너른 마루가 되게 재료부터 달리했다. 거기엔 오후면 드리우는 그늘도 큰 몫을 했다. 생활공간으로 적극 활용되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보석 같은 공간이 될 것이다.

그렇게 코지원은 “장소특정적 정원(Site-Specific Garden / Locational Garden)”으로 존재하게 하고자 했다. 우리에게 가드닝(서양적 정원문화)이 문화로 정착하고 있는 시점에서 코지원이 이정표와 같은 정원이었으면 했다. 우리시대 새로운 토착적 정원(Vernacular Garden)의 한 유형으로 남기를 기대한다. 작은 정원이지만 큰 생각을 담으려 노력한 것은 이 때문이다. 코지원의 소스코드는 그러했지만 대상지 본래의 그것에는 직접적으로 손대지 않으려 했다. 그것이 ‘옮길 수 없게’ 만들어진 정원과 자연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새롭게 쌓인 코지원의 “영적·인격적·정서적 속성” ⓒ안명준


* 코지원은 아직도 작업 중이다. 수차례 변경이 있었고 지금도 더 적합해지도록 보완중이다. 그래도 그 각각이 의미 있는 것이어서 매일이 공사 중인 것 같아도 언제나 즐길 수 있는 정원이다. 이렇게 넉넉하게 생각하며 작업할 수 있게 해준 점 이 자리를 빌려 코지원의 패트런께 감사드린다.

글·사진 _ 안명준  ·  조경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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